'쓰레기 혹'을 아시나요..100L짜리 봉투의 공포

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입력 2020. 5. 24.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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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 제한 어긴 쓰레기 배출, 미화원 부상 위험
경기도 '100L→75L'로 최대 용량 하향 확대 추진
일부 시군, 상인 등 민원에 하향 조정 쉽지 않아
전문가 "축소 취지 홍보하고 대책도 병행해야"

"쓰레기봉투에 이렇게 큰 혹이 붙으면 혼자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요."

17년차 베테랑인 환경미화원 양준모(58)씨가 100ℓ 종량제봉투를 가리켰다. 이미 터질듯 한 봉투 위에 또 한 무더기의 쓰레기 봉투가 '혹'처럼 덧붙여진 상태였다. 말 그대로 '쓰레기 혹'이다.

100ℓ짜리 종량제봉투에 규정을 어기고 쓰레기를 덧붙인 이른바 '쓰레기 혹' 때문에 환경미화원들이 수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사진=박창주 기자)
◇ '혹' 붙은 100ℓ 봉투, 미화원 "겁난다"

지난 19일 오전 6시쯤 수원역 로데오거리 일대는 곳곳에 이처럼 최대한 많은 쓰레기를 눌러 담기 위해 '혹' 붙은 100ℓ 종량제봉투들로 넘쳐났다.

양씨는 동료와 함께 봉투를 가까스로 들어 올렸지만, 이내 주저앉거나 미끄러져 넘어졌다.

양씨는 "부탄가스나 철근, 음식물까지 봉투에 담겨 100ℓ 무게 기준인 25kg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이날은 비까지 내렸지만,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양씨의 몸에서는 금세 김이 피어올랐다.

그는 "큰 쓰레기봉투를 무리하게 들다가 유리나 못에 찔리기도 하고, 허리를 삐끗해 다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공장지역이나 외곽에 가면 과도하게 폐기물을 눌러 담은 100ℓ 봉투가 즐비하다"며 대형봉투로 인한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5년차로 환경미화원 중 젊은 축인 양진태(36)씨 역시 "100ℓ 종량제봉투만 보면 공포를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혹 달린 100ℓ 봉투'는 그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다.

수원역 인근 로데오거리와 모텔촌 일대에 무리하게 눌러 담은 100ℓ 종량제봉투가 놓여있다.(사진=박창주 기자)
◇ 경기도, '100ℓ→75ℓ' 생활폐기물 최대 용량 하향 추진

23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3년 동안 환경미화원 재해 부상자 1800여 명 가운데, 낙상을 당한 경우가 35%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주로 쓰레기를 옮기다 넘어져 다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무거운 쓰레기 봉투를 직접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최근 경기도를 비롯한 경기지역 내 일부 지자체들 사이에선 쓰레기봉투의 최대 용량을 낮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광역자치단체 중에는 처음으로 경기도가 종량제봉투 최대 용량을 75L로 제한하기 위한 권역별 간담회를 시작으로 시·군간 협의에 나섰다.

경기도는 "지난 12일부터 22일까지 4개 권역별 간담회를 가졌다"며 "간담회는 시·군 청소부서 담당 과장과 권역별 환경미화원 등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간담회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의 부상을 막기 위해 종량제 봉투의 용량을 하향 조정하는 것에 대한 협의가 진행됐다. 현재 100ℓ 종량제 봉투는 규정 상한 무게가 25kg이지만, 압축해 버릴 경우 최대 45kg까지 무게가 늘어나 지속해서 환경미화원의 신체 손상, 안전사고 위험이 제기돼 왔다.

이미 경기도 의정부와 용인, 부천, 성남(7월1일부터) 4곳은 종량제봉투 최대용량을 75ℓ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고양과 안양, 평택, 화성 등 4곳은 하향 조정 적용을 앞두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현행 종량제 봉투의 용량은 시·군 조례로 규정된 사항으로 시·군 의견을 듣고 조례 제정을 권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실제로 100ℓ 종량제 봉투를 없앤 지자체의 경우 우려했던 것만큼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100ℓ 종량제봉투에 쓰레기를 덧붙여 규정 용량의 2배가량 부피가 커진 모습이다.(사진=박창주 기자)
◇ 전문가 "미화원 안전 위해 공론화 과정 필요"

하지만 상당수 시·군은 쓰레기 배출이 많은 상가 주민 등이 100ℓ 종량제 봉투를 유지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어 쉽게 변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쓰레기 배출이 많은 업소나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 봉투 최대 용량을 줄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기준으로 경기도 내에서는 모두 1억7034만장의 종량제 봉투가 판매됐고, 이 중 100ℓ짜리 봉투는 12.6%인 2147만여장이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환경미화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작업환경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더좋은지방자치연구소 이동영 소장은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만큼 봉투 용량을 낮춰 미화원들의 수거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같은 취지를 대형 쓰레기 봉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 협조를 구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폐기물협회 성낙근 기획관리실장은 "미화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쓰레기 용량 하향 조정은 전국적으로 안착될 필요가 있다"며 "다만 갑자기 없애기 보다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주민센터 등 정해진 장소에서 별도 판매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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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pc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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