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군대의 상징, 테크니컬을 아시나요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0. 5. 2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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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특수부대와 소말리아 반군간에 벌어진 모가디슈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 블랙호크다운(2001)에서 반군은 민간 트럭에 중기관총이나 무반동포를 장착, 미군을 공격한다. 기동력을 이용한 반군의 ‘치고 빠지기’에 휘말린 미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은 채 모가디슈 시내를 빠져나간다. 이 영화에서 등장한 트럭이 ‘테크니컬’이다. 

예멘 남부과도위원회(STC) 소속 무장조직원들이 테크니컬에 탄 채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민간 트럭에 중화기를 장착한 테크니컬은 1980년대 아프리카 차드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탈냉전과 테러와의 전쟁 시기를 거치며 빠르게 확산됐다. 값싸고 튼튼하며 운영유지가 쉬운 민간 트럭에 중화기 1~2개만 설치하면 강력한 화력과 기동력을 갖춘 전투차량으로 바꿀 수 있어 내전중인 나라의 반군과 정부군 모두 테크니컬을 즐겨 사용한다. 뜻하지 않게 유명세를 얻은 자동차 회사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자동차 기술 발달과 분쟁 증가가 ‘촉매제’

기동성이 뛰어난 차량을 이용한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있었다. 미군은 지프, 영국군은 랜드로버를 이용해 사하라 사막과 유럽 삼림지대를 누볐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베트콩으로부터 보급부대를 지키기 위해 5t트럭에 기관총을 설치한 ‘건 트럭’을 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서방 국가의 자동차 업체들은 험지에서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사륜구동차와 트럭을 지속적으로 출시했다. 군용차량보다 더 많은 생산량과 수요가 보장되는 민간 차량들은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성능을 앞세워 개발도상국에 대량 판매됐다. 군용차량을 따로 구입할 여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의 군대나 무장조직들이 민간 차량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리비아 국민군 소속 테크니컬들이 수도 트리폴리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은 테크니컬이라는 개념을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소말리아에서 활동하던 국제 구호단체들은 경호를 위해 현지 무장단체에 현금을 줬다. ‘공격하지 말아달라’는 뇌물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회계자료에 이 돈을 ‘뇌물’이라고 기록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등장한 표현이 기술 지원비(technical assistance grants)다. 이를 풍자하는 의미로 이 돈을 받고 무장단체들이 만든 무장트럭을 테크니컬이라고 부르게 됐다.

테크니컬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차량은 토요타 픽업트럭이다. 튼튼하고 고장이 적은데다 워낙 많은 수량이 판매돼 운영유지가 쉽다. 무장조직이 제3자를 내세워 대리점을 통해 주문하거나 중고차 시장에서 저가에 매입해도 추적이 어렵다. 토요타 픽업트럭을 무장조직들이 애용하는 이유다. 

1986~1987년 차드와 리비아간의 전쟁에서 차드군은 토요타 픽업트럭을 이용한 ‘치고 빠지기’식 작전을 통해 구소련제 전차와 장갑차로 구성된 리비아 기계화부대를 격파했다. 토요타 픽업트럭에 대전차화기, 중기관총, 로켓과 병력을 싣고 신속하게 움직이며 리비아군을 괴롭힌 차드군의 모습은 민간 트럭의 유용성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다.

리비아 정부군 소속 테크니컬이 와티야 공군기지 인근에서 경비활동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토요타 픽업트럭으로 만든 테크니컬을 전투와 선전활동에 투입했다. 선전영상에 토요타 차량이 대거 등장하자 미국 대테러당국이 토요타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을 정도다.

실제로 2015년 10월 미국 언론들은 미 재무부가 토요타에 IS가 왜 이렇게 많은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IS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에서 촬영한 선전 영상에는 토요타 하이럭스 픽업트럭과 랜드크루저가 등장했다. 중고 차량을 개조하는 것을 넘어 신형 차량을 대량 입수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토요타측은 “IS에 차량을 판매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예멘 내전에서도 토요타 픽업트럭으로 만들어진 테크니컬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후티 반군과 정부군은 물론 남부 분리주의 단체인 남부과도위원회(STC) 병력도 애용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예멘 임시수도인 아덴에서 STC와 예멘 정부를 지지하는 무장조직이 전투를 벌였을 때, 양측은 테크니컬을 동원해 상대방을 공격했다. 

미국도 우방국 군사원조에 픽업트럭을 포함하고 있다. 군용 험비보다 운영유지가 쉽고 별도의 사용훈련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미 아프리카사령부는 최근 모로코 특수부대에 100만달러 상당의 토요타 랜드크루저를 제공했다. 미 중부사령부도 이라크와 아프간에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이 생산한 픽업트럭을 현지 경찰과 군에 공급한 바 있다. 이라크 이슬람 무장세력과 아프간 탈레반은 토요타 픽업트럭을 이용해 미군과 싸웠다. 미군 특수부대와 민간군사기업(PMC) 요원들도 이 트럭을 타고 다녔다.

예멘 남부과도위원회 소속 무장조직원들이 휴식 도중 테크니컬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대형화 경향 뚜렷해…국산 차량도 등장

2010년대 중동에서 IS가 등장하고 시리아, 리비아 내전이 격화되면서 테크니컬도 다양화, 대형화 경향이 두드러진다. 기관총과 무반동총을 탑재했던 과거의 사례에서 벗어나 대구경 화포나 기관포 등 중화기를 탑재하면서 과적을 해도 고장이 발생하지 않는 대형 민간 트럭이 테크니컬로 개조되고 있다.

리비아 내전에서는 카다피의 정부군이 운용하다 파괴된 중화기를 재활용한 테크니컬이 등장했다. 반군은 파괴된 BMP-1 보병전투차에서 73㎜ 포탑을 떼어내 픽업트럭에 탑재, 화력지원용으로 사용했다. 이 테크니컬은 프라모델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슬람국가(IS)의 다연장로켓 탑재 테크니컬이 지상 표적을 향해 로켓을 쏘고 있다. 위키피디아
반군은 공격헬기에 장착됐던 로켓발사기를 탑재하거나 반군이 자체적으로 만든 다연장로켓을 장착하기도 했다. 기관총보다 화력이 더 강한 23㎜기관포나 대구경 대공기관포를 사용하는 픽업트럭도 등장했다. 탑재 무기의 크기가 커지면서 적재 공간이 넓은 현대 포터나 기아 봉고 트럭 등도 쓰였다.

시리아 내전은 테크니컬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전장으로 평가된다. 내전에 참가한 주요 무장조직들은 정규군이 쓰는 중화기를 입수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따라 민수용 트럭을 개조해 자주포나 장갑차 대용품으로 사용했다.

IS는 현대 마이티 덤프트럭을 다연장로켓 발사기로 개조해 실전투입했다. 화물 적재함에 로켓발사기를 설치해 122㎜ 로켓 3발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같은 방식은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감행하던 하마스가 처음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눈을 속이면서 은밀히 이동한 뒤 로켓을 쏘고 신속히 철수했다. 기아 봉고 트럭에 107㎜ 다연장로켓을 장착한 형태도 등장했다. IS가 하마스의 전술을 모방한 셈이다.

시리아 정부군이 쓰던 T-62 전차의 115㎜포를 떼어내 6륜 트럭에 설치한 테크니컬과 85㎜ 대공포를 덤프트럭에 탑재한 테크니컬도 있다. 서방측의 차륜형 자주포나 전차와 유사한 것으로, 포를 360도 회전시키는 등의 기능은 없지만 벙커나 건물 등을 파괴하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어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슬람국가 소속 115㎜ 전차포 탑재 테크니컬이 지상 표적을 겨누고 있다. 위키피디아
민간 트럭을 강철판으로 감싸 장갑차로 개조한 것도 있다. 쿠르드 무장세력 등에 노획된 IS의 테크니컬 중에는 운전석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장갑을 설치했으며, 포탑을 만들어 사수가 적의 총격을 걱정하지 않고도 기관총을 쏠 수 있도록 했다.

우크라이나 내전에서도 정부군과 반군은 테크니컬을 전투에 투입했다. 다만 양측은 화력을 강화하기보다는 병력을 보호하는데 중점을 뒀다. 그 결과 장갑판을 두른 테크니컬이 많이 등장했다.

분쟁지역에서 테크니컬은 일반 민수용 차량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구하기 쉽고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높다는 장점이 있다. 중화기를 합법적으로 도입할 수 없는 무장조직에게 유용한 장비다. 반면 세계 각지의 분쟁을 격화시키는 부작용도 적지 않아 테크니컬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복잡하게 뒤얽힌 자동차 유통망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어서 테크니컬은 앞으로도 주요 분쟁지역에서 변함없이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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