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좀 하자"더니 2주만에..與 김태년 씁쓸한 '한명숙 구하기'

심새롬 2020. 5. 2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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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br〉〈br〉이날 한 전 총리는 과거 유죄 판결을 받은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가 무리했다'는 취지로 자신의 결백을 재차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재단 제공. [뉴스1]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에서 주목받은 참석자 중 한 사람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였다. 이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모인 사람들은 그가 최근 불거진 ‘한명숙 사건 재조사론’을 두고 어떤 말을 할지 적잖이 궁금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이날 공개 발언 없이 자리를 떴다. 측근(김현 전 의원)을 통해 “결백하다.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추가 보도를 보고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내겠다”는 전언(傳言)만 흘러나왔다.

주변의 말을 종합하면 한 전 총리는 ‘신중’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과거 국무총리 시절 참모는 2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금 당장 심란하지만 10년을 견딘 일인데 급할 게 뭐 있냐”며 “내용이 어디까지 갈지 차분하게 두고 볼 것”이라고 했다. 전날 추도식에서 20여분 간 얘기를 나눴다는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한 전 총리가)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굉장히 신중히, 섬세하게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한 것과 같은 뉘앙스다.

반면 한 전 총리보다 관련 사안을 증폭시킨 건 민주당 지도부다. 특히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공개회의에서 “법무부·검찰·법원은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라”고 강조했다. 이후 연일(21, 2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심은 법률적으로 어렵지만, 사법농단·강압수사 여부를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의 강압 수사 비리 의혹이 제기된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광온 최고위원.[연합뉴스]


정작 당내에선 ‘재조사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24일 “한 전 총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친노(친노무현)들의 주장일 뿐인데, 한 전 총리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당이 더는 대신해 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21대 국회 원구성 협상을 앞두고 장외 논쟁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다”고 했다.

비판의 출발점은 김 원내대표가 “감정적 반응을 앞세웠다”는 데 있다. 10년 전 1심 재판에 제출된 ‘한만호 비망록’은 현행법상 재심 사유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인 출신 민주당 의원은 “우린 시민단체가 아니고 집권여당이다. 법과 제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심 사유가 되는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 법치주의를 지켜야 할 여당의 자세”라고 꼬집었다. 지난 21일 라디오에서 “재판 과정을 다 알지는 못한다”, “(재심) 그거는 법률가들께서 판단하실 문제”라고 한 김 원내대표를 두고 “무슨 계획을 가지고 저러는지 난감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명숙 판결 뒤집기"라는 비판 속에 야당은 당장 “삼권 분립을 정면으로 위배하려는 억지”라며 역공에 나서고 있다. 미래통합당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177석을 무기로 사법적 영역을 벗어나 정치적으로 접근해서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거여(巨與)의 지위를 거머쥔 민주당이 이제 와 한 전 총리 사건을 해묵은 ‘정치탄압 프레임'에 가두려 한다는 공세다. 김 의원은 “판결문에 수표·영수증 등 물증이 분명히 있는데 한만호 진술만 조작됐다고 유죄가 무죄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7년 8월 23일 경기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는 모습. [연합뉴스]


실제 과거 수사·재판 과정에선 한신건영 대표였던 한만호 씨가 건넨 수표 1억원이 한 전 총리 동생의 계좌로 흘러가 전세자금으로 쓰인 금융거래 내역이 나왔다. 당시 진보 성향 주심(이상훈 대법관)이 이끈 대법원 전원합의체(9인)가 이를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보고 ‘돈이 오간 사실’에 대해 만장일치 결론을 내린 이유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린 지점은 정치자금 수수 여부가 아닌 규모(3억원 또는 9억원)였다.

때문에 한 전 총리 측 변호인단에서도 재심 청구를 주장하는 민주당 안팎의 목소리에 대해 "재심은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달 초 김 원내대표는 코로나 경제위기를 강조하며 “일 좀 하고 싶다”고 호소해 당선됐다. 취임 일성으로 “일하는 여당”을 내세운 그가 과거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왜일까. 초심을 잃기에 2주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심새롬·김기정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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