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학교]④ "학원 다닐 형편 아닌데 성적 떨어지면 낙오자 취급"
고교 자퇴생들 "학교는 건강한 어른 될 수 있게 도와야"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한해 6천명 이상의 고교생들이 성적, 교우관계 부적응 등을 이유로 스스로 학교를 떠난다.
고교 자퇴생 대부분은 학교 폭력을 참다못해 학교 밖 생활을 택하기도 하고, 상위권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한 학교 교육 프로그램에서 소외된 것이 자퇴의 이유였다고 털어놓았다.
연합뉴스는 최근 2∼3년 사이 학교생활을 중도에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거나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이 겪었던 일을 고충 유형별로 재구성했다.
◇ 성적 떨어지면 학교 교육에서 소외…'등급'에 따라 대우도 달라
김선호(18·가명) 군은 2018년 서울 소재 모 자율형사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된 그해 9월 학교를 그만뒀다.
학생들의 성적 경쟁이 치열한 학교였는데 그는 집안 형편상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의 성적은 계속 떨어졌는데, 성적이 떨어지면서 선생님 친구와의 관계도 꼬였다.
김 군은 "성적이 좋지 않은 데다 수행평가도 잘 못 하니까 친구들이 피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성적 좋은 친구들만 챙기고 안 좋은 친구들에게는 신경도 안 써줬던 것 같다. 낙오자 취급을 하거나 차별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성적을 중심으로 평가되고 결정되는 상황에 낙담했고 학교생활에 회의감도 들기 시작했다.
그는 "입학 후 첫 배치 고사를 보고 '몇 등급은 어느 대학에 갔다' 이런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 자퇴를 생각하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해 보니 미래가 안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채수호(19·가명) 군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7년 5월 학교를 그만뒀다. 게임 개발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특성화고에 가려 했던 그는 일반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고 자연스레 공부와도 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는 이런 수호 씨에 대해 시종일관 무관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만 해도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던 그는 그렇게 고등학교 진학 후 자의 반 타의 반 외톨이가 됐다. 학교는 그런 그를 다독이지 않았다.
그는 "중간고사를 볼 무렵엔 이미 자퇴를 결심하고 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 선생님도 별말씀이 없었다. 자퇴를 만류하지도 않았고, 자퇴 직전 다시 생각해보라는 (형식적인) 권유가 전부였다"고 했다.
그는 자퇴 후 오히려 활기 넘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서울 시내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중 한 곳인 은평 꿈드림센터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월∼금요일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공부했다. 학교에 다닐 때보다 더 열심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학진학도 생각하게 됐다. 김 군은 "아르바이트 도중 만난 누나가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해줬다. 대학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수호 군은 모 대학 게임전공 학과 신입생이다.
그는 자퇴 결정의 만족도를 묻자 "10점 만점에 9점 정도로 만족한다"고 답했다.
서울 강남의 한 공립고등학교에 다녔던 김형준(19) 군은 2학년이 된 날 학교를 그만뒀다. 자퇴를 후회하지 않지만 그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겪은 학교생활에 대해서는 서운함과 아쉬움이 많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부였는데 선생님들은 운동부를 안 좋게 봤다. 그냥 안 건드리고 잠을 자도 놔두고…"라며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나를 보는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성적이 올라도 마찬가지였다. 중3 때는 공부에 집중해서 전교 석차를 217등에서 2등까지 올렸지만, 부정행위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교장실에 가서 7개 전 과목 시험문제를 다시 풀어야 했다. 재시험 문제를 다 풀고서야 선생님은 '잘했어. 난 또 베낀 줄 알았지'라고 말했고 사과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선생님은 '네가 자사고를 가? 가면 거기 학생들 물 다 흐려. 넌 못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학교 시절을 보낸 김형준 군은 마음을 잡고 공부하기 위해 일부러 집에서 먼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러나 성적을 이유로 한 차별은 계속됐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성적 우수자에겐 봉사활동 점수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학교 밖으로 '밀려 나온' 김형준 군은 꿈드림 서울 송파 센터에서 연락을 받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됐다. 센터에서는 형준 군을 '문제아'로 보지 않고 공부와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을 해줬다. 학교에 다닐 때는 결석이 잦았던 그는 센터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다. 그는 자퇴 1년 만에 검정고시와 대입 수능을 거쳐 20학번으로 한 지방대학의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내가 생각한 교육이란 더 나은 어른이 되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었는데, 학교는 완전히 '인 서울' 대학에 갈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을 갈라놓고 있었다"며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라고 미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나도 친구들과 만나면 '뭐 해먹고 살지' 고민을 한다. 학교가 좀 더 건강하고 완벽한 어른이 되도록 도와주고 지원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놓았다.
◇ "자퇴 상담에 '유행이냐' 조롱"…생활·심리 지도에도 실패
고교 자퇴생들은 집안 형편 등에 관한 개인 정보도 보호해주지 않는 학교에 불만을 표했다.
김선호 군은 "제가 복지 혜택을 신청했는데 담임 선생님은 수업 도중 나를 불러내 결과를 알려줬다. 선생님이 갑자기 불러냈으니 다른 친구들이 궁금해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친구들도 어느 정도 (가정형편을) 눈치챘다. 나중엔 담임 선생님도 친구들에게 내 가정형편을 말해줬다"고 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고, 성적이 떨어져 학교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그는 숨기고 싶었던 가정형편까지 공개되자 결국 부모님을 설득해 자퇴서를 냈다.
특성화고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한 김서윤(19) 양도 비밀보장이 되지 않는 어설픈 학교의 상담 시스템에 분노를 표출했다.
심각한 고민 끝에 어렵사리 자퇴를 결정한 그는 '요즘은 자퇴가 유행'이라고 조롱했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김서윤 양은 "너무 속상했다. 응원이라도 좀 해줬으면 '내가 올곧은 길로 가길 바라시는구나'라고 생각했을 텐데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하니까 그것도 속상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중학교 때도 상담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기억을 떠올렸다. 매일 밤 울면서 극단적인 생각을 할 만큼 심각한 상태였지만 학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서윤 양는 "상담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열심히 하면 될 거야' 같은 말만 한다.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는 게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한 친구는 담임 선생님에게 어렵사리 비밀을 털어놓았는데, 담임 선생님은 다른 학생을 상담하면서 그 친구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대요. 그 뒤로는 친구들이 심각한 고민이 있어도 선생님께 못 털어놓죠. 만천하에 고민을 알리고 싶으면 상담하는 겁니다"고 덧붙였다.
oh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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