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 되고 싶어 시작했는데..결국엔 도박중독에 빚더미

김완 2020. 5. 2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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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과 불법도박 범죄의 공생] ③불법에 물든 청소년들
판돈 마련하려 성착취 범죄까지..교실로 파고든 '한탕의 유혹'
10대들, 휴대폰으로 손쉽게 베팅..판돈 마련하려 성착취 범죄까지
친구 부추김·성착취물 자극에 빠져 크고 빠른 '슈퍼 전파자' 매개로 확산
수천만원 빚져도 "한번만 터지면.." 하루 수십만원 벌이 미련 못 버리고
지인 사채·휴대폰깡으로 자금 마련..엄마 촬영 영상·딥페이크물 판매도
인천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도박중독 환자가 창밖을 보고 있다. 인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신호영(가명·24)은 지금도 6년 전 그날의 선택을 후회한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다녔던 18살 신호영은 교실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만 되면 반 친구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함께 환호하거나 탄식하길 반복하는 장면이 궁금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 친구가 자리에 앉아 불법도박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 베팅만으로 저렇게 쉽게 돈을 따는구나’ 생각하는 찰나, 옆에 있던 친구가 “너 통장에 돈 있지 않아? 내가 ‘먹튀’ 없는 사이트 총판 코드 알려줄게”라고 권해왔다. 그때 그 말을 듣지 않았어야 한다고, 신호영은 6년째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불법도박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어요. 시작하면 헤어날 방법이 없죠. 그런데 결과는 누구에게나 똑같아요. 빚지고 대인관계 흐려지고 가족과의 믿음과 신뢰가 깨지고요.” 지난 13일 인천의 한 병원에서 <한겨레>와 만난 신호영은 일그러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생이던 신호영의 통장에 돈이 있었던 건 고깃집 아르바이트(알바)를 해서 월 80만원 정도를 벌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중에 30만원만 베팅하자고 맘먹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곧 무너졌다. 단지 베팅 중독 때문만은 아니었다. 반 친구들이 함께 환호하거나 탄식했던 그 장면처럼, 교실에서 휴대전화로 도박하면 그 순간만큼은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었다. 그럴 땐 “으쓱한 기분”도 들었다. 어느 날엔 50만원을 따서 반 친구들 전체에게 매점 간식을 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알바로 번 돈이 탕진되어 갔다. 곧 닥치는 대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게 됐다. 빚을 지더라도 한 방만 제대로 터지면 된다는 생각에 5분에 한 번씩, 손가락 베팅을 계속했다. 5분에 1만~2만원씩 계속 사라졌다.

신호영은 돈을 구하기 위해 써보지 않은 방법이 없다. 처음엔 ‘지인 사채’를 썼다. 학교에는 불법도박을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친구가 있었다. ‘주급 나오면 갚겠다’, ‘용돈 받아서 주겠다’ 온갖 핑계를 대고 돈을 빌렸다. 그러나 원금을 갚기는커녕 이자만 불어갔다. 부모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고가의 휴대전화를 할부로 사서 바로 되파는 ‘깡’을 했다. 친구들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깡’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어느덧, 신호영이 진 빚은 5천만원에 이르게 됐다. “끊어도 끊은 게 아니에요. 도박 앱을 지워버리고 ‘꽁돈’ 넣어주겠다는 문자가 오면 흔들리고, 성착취 사이트에 번쩍번쩍 돌아가는 불법도박 사이트 배너만 봐도 막 두근거리고….”

이계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10대의 불법도박은 충동에서 시작된다. 충동은 주변 친구들의 부추김에 따라서 오기도 하고, ‘인싸’가 되고 싶은 욕망에서 발생하기도 하며, 성착취 사이트에서 받은 자극을 통해 생기기도 한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2018년) 결과를 보면, 신호영처럼 주변 사람을 보고 도박에 입문하는 비율은 79.1%에 달한다. ‘중독’ 문제 전문가인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이계성 교수는 “특히 청소년기의 도박은 한 명이 ‘슈퍼전파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주위에 끼치는 전염성이 대단히 빠르고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주변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도박에 입문했다’는 답에는 허수가 꽤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음주운전자들이 늘 술 몇 잔 안 마셨다고 답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상담이나 수사에서 술 마시다가 혹은 성착취물 보다가 도박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도박은 이성이 마비되는 감정적인 순간 시작됩니다. 성착취 사이트나 게임 사이트에 도박 광고가 활발한 이유지요. 자극으로 충동적인 상황일 때 중독을 시키는 메커니즘입니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_________ 무료 충전금에 속아 빚더미로

서울 영등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재우(가명·19)도 비슷한 경우다. 중학생이 되면서 스마트폰이 생긴 이재우는 성인 인증 없이 가입할 수 있는 성착취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그 사이트에 걸린 배너 광고를 무심코 클릭했다. 그리고 이재우의 눈앞에 사행성 게임과 도박의 경계에 있는 게임들이 펼쳐졌다. ‘첫충’(처음 하는 충전)은 무료였다. 그 충전금으로 ‘사이버머니’를 사서 하는 게임이었다. 돈이 떨어지자 사이트에서 바로 대출을 해줬다. 이재우는 소액결제인 줄 알고 문제의식 없이 돈을 빌렸다. 하지만 곧 이자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50만원이 넘어서자 빚을 갚으라는 전화가 수시로 왔다. 압박감에 시달리던 이재우는 당시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품평놀이’(인터넷에 셀카나 몸매 사진을 올리고 타인에게 평가받는 놀이) 사진을 내려받아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얼굴과 몸 등을 합성하는 기술) 사진으로 합성해 팔기 시작했다. 이재우를 상담했던 한 상담센터 상담사는 “도박에 빠진 10대들이 돈을 만들기 위해 엄마를 촬영한 영상을 팔고 딥페이크물을 만든다. 고등학생들은 알바라도 할 수 있지만 그럴 방법이 없는 어린 학생들은 범죄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이 상담사는 “실제로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는 불법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친구들 사진으로 딥페이크물을 만들어 팔다가 적발되어 강제전학을 간 학생이 있었고,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선 도박 자금을 구하려고 여자친구 딥페이크물을 만들어 팔다가 구속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 시점으로부터 최근 3개월 동안 도박중독 위험군과 문제군으로 분류되는 비율은 6.4%에 이른다.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2학년 전체 재학생이 225만여명이니 15만여명은 도박에 관한 중증도 수준 이상의 조절 실패를 경험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_________ 13살 어린이에게 ‘총판’ 제안까지…

강승호(가명·28)의 사례는 청소년기에 불법도박에 중독되면 인생이 어떤 상황으로 치닫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강승호는 피시(PC)로 도박하던 아버지 어깨너머로 도박을 배워 13살에 처음 불법도박을 접했다. 1등 말을 맞히는 온라인 사설 경마였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는 어린 강승호가 새로운 층의 고객을 모집해올 수 있으리라고 보고 “‘총판’을 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냥 사이트 홍보만 하면 된다. 유치해온 회원이 잃는 금액의 일정 비율을 떼주겠다”고 했다. 불법도박 사이트 세계에선 이런 제안을 ‘죽장’이라고 부른다. 13살 어린이는 자신의 인생이 파괴되는지도 몰랐고, 주변의 많은 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죄의식도 없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사설 경마 사이트의 ‘총판’으로 일했다.

인천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도박중독 환자. 인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강승호는 쉽게 돈을 벌었다. 하루에 30만~40만원을 벌어 엄마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엄마는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되물었다. 그날 이후엔 엄마에게 주지 않고 번 돈으로 족족 다시 도박을 했다. 술과 유흥에도 손을 댔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서는 아예 ‘홀덤바’라고 불리는 사설 도박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강승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 도박에 빠졌다. 1분 단위로 베팅할 수 있는 ‘바카라’였다. 하루에 50만~60만원씩 베팅했다. 많이 잃은 날은 하루에 500만원도 잃었다. 강승호도 필사적으로 도박 자금을 마련했다. “카드깡을 하고, 휴대폰깡을 하고, 동생 명의로 1천만원 넘게 사채를 끌어썼죠. 어느 날엔 10만원 베팅해서 390만원을 딴 적이 있었어요. 그때 빚을 갚자는 생각도 들었는데, 10만원만 더 따서 400만원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했다가 결국 다 날려버렸죠. 이후에 어머니가 한 달 내내 일해서 받은 월급 통장을 훔쳐 도박을 했습니다.” 강씨는 이런 상황에 대해 “쾌락을 느끼기 위해 도박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총판 할 때도 보면, 성착취물 사이트나 성인 웹툰 사이트에서 도박 홍보가 잘됐어요. 결국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이 같기 때문이죠.” 13살에 시작해 28살이 될 때까지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도박을 끊지 못했던 강승호는 한 달 전쯤 세 군데에서 사채를 쓰고 ‘올인 도박’을 했다. 모두 잃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는데, 친구의 신고로 경찰에 발견돼 현재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한번 도박에 빠지면 다른 자극은 시시해질 정도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디지털상에서 불법도박이라는 자극을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래도 저래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틈새를 불법도박이 공략한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10대와 20대 남성들이 왜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불법도박에 빠져드는지를 보면, 그 두 가지가 서로 미끼로 엮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상대하고 소통할 필요 없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다. 자극적인 범죄를 함께 모여 저지르다 보니 정서적인 불안도 없다”고 말했다. 이계성 교수는 “성착취와 불법도박 카르텔은 사회적 환경이 낳은 괴물이다. 반사회성의 핵심은 ‘착취’와 ‘기생’이다. 불법도박이 대표적”이라며 “박사나 갓갓, 성매매 포주도 그렇게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김완 박준용 김민제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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