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도청 지켰던 17살 시민군 '끝나지 않은 싸움'
[앵커]
약 두시간 전 옛 전남도청 앞의 민주광장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 기념행사의 마지막 날 부활제가 열리는 모습입니다. 40년 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선 최후의 항쟁이 있었습니다.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앞에서도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의지는 결코 식지도 꺾이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일곱 나이의 시민군은 지금도 그날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신아람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외신 기자에 포착된 사진 한 장.
복면을 쓴 채 무장까지 했지만, 임성택 씨는 양복 재단 기술을 익히던 17살 평범한 청년일 뿐이었습니다.
[임성택/5·18 당시 마지막으로 체포된 시민군 : 죽으라는 식으로 학생, 시민들을 그렇게 구타하더라고요. 과연 이게 대한민국의 군인인가? 어리지만 스스로 깨달은 거예요. 이렇게 방치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동네 형들과 함께 기동타격대에 합류한 임씨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에 남았습니다.
[임성택/5·18 당시 마지막으로 체포된 시민군 : 누가 간다, 안 간다, 그런 말도 없었어요. 서로 눈이 마주쳐서 눈빛을 자연스럽게. 여기서 오늘 밤을 최후에 맞이해야 된다는 그런 흐름이 흘러서.]
하지만 결국 새벽 5시 반, 체포됩니다.
[임성택/5·18 당시 마지막으로 체포된 시민군 : 불탄 지프들, 군용 트럭들, 실탄들 나돌았고. 이 정도 상태에서 제가 잡혔거든요. 여기서 포승줄을 묶고 자기들이 (제 등에) 쓰고 '극렬분자'라고 했는데.]
이후 40년의 세월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내란에 참여했다는 죄로 옥살이와 고문이 이어졌고 출소할 때는 그간 겪은 일을 밖에 말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습니다.
재심을 거쳐 무죄를 얻어냈지만, 사진 속 자신이 '북한군'이란 왜곡된 주장은 임씨를 또다시 괴롭게 했습니다.
[임성택/5·18 당시 마지막으로 체포된 시민군 : 어떠한 목적을 갖고 그렇게 5·18을 매도하고 정말 그 사람의 진실을 알고 싶어요.]
임씨는 지금도 가끔 군복을 입고 거리로 나섭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5·18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중입니다.
[임성택/5·18 당시 마지막으로 체포된 시민군 : 어떠한 마음으로 내가 그때 총을 들었는가…정말로…여기 와 보면 참 서글프고 지금도 눈물이 나오는데. 그래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영상그래픽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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