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진다던 회사, 장례식 끝나자 돌변"..유족들 외로운 싸움

이수진 기자 입력 2020. 5. 27. 21:30 수정 2020. 5. 2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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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죽음에 '책임' 묻기까지..길고 긴 시간

[앵커]

지난주에 현대중공업 작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고 김성인 씨는 '조공'으로 불렸습니다. '배관 보조공'을 줄인 말이라고 합니다. JTBC는 고 김성인 씨의 사례를 통해서, 왜 일터에서 사망 사고가 반복되는지 추적했습니다. 이번엔 사망 그 후입니다. 김씨 이전인 6년 전에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산업 재해를 인정받기까지 5년 넘게 걸렸습니다. JTBC는 자살이란 주장을 뒤집기 위해 힘겹게 싸운 유족을 만났습니다.

이수진 기자입니다.

[기자]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사고 전날이 저희 결혼기념일이었어요. 다음 날 10시쯤 넘어서 전화가 온 거예요. '남편이 사고가 났다'라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정범식 씨는 2014년 4월 목숨을 잃었습니다.

선박의 녹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 호스에 목이 감겨 숨진 겁니다.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장례식장 첫날 들어갔을 때 회사 사장님이 찾아오셨어요. 와서는 '모든 것을 내가 책임을 다 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하시고.]

남편이 없는 텅 빈 집에 한 통의 우편물이 도착합니다.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와 있는데 울산동부경찰서에서 저한테 우편물이 한 장 왔어요. 뭐라고 적혀 있었냐면 '사고사 가능성보다 스스로 목맴이 적합해서 자살로 종결을 낸다']

경찰이 '자살'로 결론 내자, 근로복지공단도 남편의 죽음은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결론냈습니다.

회사의 태도도 돌변합니다.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회사 측에서 보이는 태도는 너무한 거예요. 현장에서 사망사고 되게 많이 일어나잖아요. 근데 회사 측에서 하는 거는 그냥 늘 있던 일인 것처럼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씨는 남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소송을 시작하고 1인 시위에 나섭니다.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하얀 소복을 입고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어요. 1인 시위를 할 때 그 많은 직원분들이 작업복을 입고 안전화를 신고 출근을 하는데 진짜 그 모습을 볼때 제 남편도 이 길로 이렇게 출근을 했겠구나.]

산재 소송에선 산업재해였다고 입증할 책임은 유가족에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도, 수사기관도 전혀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료 한 장 손에 쥐기도 어려웠습니다.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정보)공개 요청 하면서 '어떻게 자살로 종결 냈는지 확인하고 싶다. 수사기록을 모두 보여달라'고 얘기를 했을 때, 동부경찰서에선 저한테 불리한 진술과 내용들만 추려서 그런 것만 저한테 보낸 거예요.]

하지만 1심 판결은 "경찰의 수사 결과에 오류가 없다" 패소였습니다.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제가 변호사님께 말씀드렸어요. 제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항소하고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저희 애들 위해서라도 끝까지 남편 억울함 밝히고 싶었어요.]

인권변호사와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사고 재현 실험을 하고,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모든 수사기록을 받아냈습니다.

길고 긴 싸움 끝에 지난해 8월 항소심 판결이 나옵니다.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너무 가슴이 아파서 핸드폰을 꺼놓고 한 시간 후에 핸드폰을 딱 켜니까 울산에서 보낸 '고생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문자 글이 딱 보인 거예요.]

남편의 억울함을 풀고 산업재해를 인정받기까지 만 5년 4개월, 1937일이 걸렸습니다.

[김모 씨/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고 정범식 씨 부인 : 우리처럼 힘없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분들한테 산재 문턱이 너무 높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포기하지 말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라도 이런 거를 꼭 밝혔으면 좋겠어요.]

(영상그래픽 : 김정은·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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