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신라 금동신발 출토..무덤 주인은 누구였을까

김나한 기자 입력 2020. 5. 27. 21:44 수정 2020. 5. 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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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500년 세월이 묻어있는 이런 '금동 신발'이 경주 고분에서 나온 건 43년 만입니다. 유물이 묻힌 곳은 왕들의 고분군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서 그동안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앞으로의 얘기가 더 기대됩니다.

김나한 기자가 발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기자]

발등을 감싸는 윗면에 섬세하게 무늬를 뚫었고, 바닥까지 빼곡하게 장식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 경주 황남대총에서 나온, 금동 신발을 복원한 모습입니다.

신고 다니긴 쉽지 않아 보이는 이 신발은 망자를 장사지내는 의례용으로 추정됩니다.

5세기 무렵 신라 왕이 세상을 떠나자 이 신을 신겨 묻었습니다.

그런데 왕들의 묘인 황남대총, 천마총과는 멀찍이 떨어진 변두리에서 이 신과 꼭 닮은 금동신발이 나왔습니다.

일제강점기 120호라고 번호가 매겨진 고분 옆에 두 개의 작은 무덤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1950년대에는 그 위로 초가집이 어지럽게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세 개의 고분이 붙어 있어 왕족이나 귀족 가문의 묘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금동 신발을 이렇게 흙에 파묻힌 채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라의 고분에서 의례용 금동 신발이 나온 것은 1977년 경주 일원동 발굴 이래 43년 만입니다.

발굴 초기 단계인 120-2호 고분에서는 금동신발 뿐 아니라 머리에 쓰는 관에 달렸을 걸로 보이는 금동 장식, 청동 다리미도 나왔습니다.

변두리에 있는 만큼 왕의 먼 친척 묘가 아닐까 추정하는데, 연구자들의 눈은 이번 고분보다 규모가 크지만 아직 열지 않은 120호분에 쏠려 있습니다.

[박방룡/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 : 한가운데에 있는 그야말로 (핵심인) 120호분에서는 우월한 그런 유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영상그래픽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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