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나랏돈 못 써 안달 난 분들②

이정재 2020. 5. 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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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팔이 뜨거운 가슴도 좋지만
임기 내 상환, 제대로 쓰는 지혜
차가운 머리 없으면 나라 거덜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 사 먹었단 소식을 듣고 뭉클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가슴이 뜨거운 것은 흉이 아니다. 대신 차가운 머리와 같이 가야 한다. 국난 수준의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려면 특히 그렇다. 단군 이래 최대의 나랏돈을 퍼붓는 중이다. 대통령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돈을 써야 한다. 자칫 머리마저 뜨거웠다간 나라가 거덜 나고 미래 세대가 쪽박을 찰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과 같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첫 번째 요령은 ‘물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주변의 줄이나 호스, 구명 튜브를 찾아 던지라고 119안전센터는 조언한다. 덮어놓고 뛰어들었다간 구조는커녕 같이 익사할 수 있다. 물론 구조 전문가라면 직접 뛰어들 수도 있다. 이때도 뒤로 돌아가 구조해야 한다. 물에 빠진 이에게 붙들리지 않기 위해서다.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서로의 목숨을 구한다.

물론 대통령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한다. 여당 원내대표의 말마따나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살리고 봐야 한다”. 요즘 같은 위기에 빚을 내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일본·유럽도 빚을 내 펑펑 돈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는 나라 곳간이 아직은 든든한 편이다. 대통령이 “재정 역량 총동원”을 말할 만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돈의 양이 아니다. 어떻게 쓰느냐다. 돈을 쓰되 다음 세 가지만 꼭 지켜 달라.

첫째, 할 수 있는 것부터 다해 보고 최후의 수단으로 빚을 내야 한다. 가계도 빚을 내기 전에 적금 털고 보험 헐고 여행 삼가고 허리띠 졸라맨다. 애들 학비까지 줄여야 할 판이면 그때야 빚을 낸다.

단군 이래 최대의 나랏빚을 내려면 단군 이래 최대의 규제 개혁과 혁신, 정책 리모델링이 받쳐줘야 한다. 그래야 아귀가 맞는다. 하지만 지난주 국회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선정한 ‘코로나19발 경제난을 이겨내기 위한 11개 법안’ 중 달랑 전자서명법 개정안 1건만 통과시켰다. 탄력근로 확대 관련 근로기준법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나머지 10개 법안은 폐기됐다. 은산 분리, 원격 진료를 여전히 당론으로 반대하는 여당 탓이 컸다. 빈부 격차만 더 늘린 소득주도성장은 공식 폐기하고, 탈원전 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사상 최대, 100조원이 넘는 적자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정부가 빚 늘리는 엉터리 정책은 계속 밀어붙이겠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나.

둘째, 결자해지. 빚을 냈으면 언제, 어떻게 갚겠다는 청사진도 함께 내놔야 한다. 외환위기 시절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공적자금을 쓰면 쓴 정부가 임기 내에 갚아야 한다”고 했다. 그다음 정부부터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자기가 낸 빚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공적자금이 들어간 우리금융이 20년이 넘도록 민영화를 못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금 정부가 빚만 잔뜩 늘려놓고 나가면 다음 정부부터는 “문재인 정부가 늘린 빚”이라며 전 정부 탓만 할 것이다. 빚을 진 사람이 갚을 책임도 있다. 임기 내가 어렵다면 3~5년 뒤 계획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25일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선 어떤 상환 계획도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셋째, 돈을 쓰는 순서도 중요하다. 선후가 바뀌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부를 수 있다. 역시 좋은 비유가 있다. 비행기의 비상 대처 요령이다. 위기 때 내려오는 산소호흡기는 부모 먼저, 노약자와 아이 나중이다. 허둥대는 아이에게 먼저 씌우려다 본인이 질식하면 둘 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에 굳이 비유하자면 부모는 일자리, 노약자와 아이는 실업자·취약계층쯤 될 것이다. 안타깝다며 당장 전 국민에게 돈을 계속 퍼주다간 정작 지켜야 할 일자리를 잃고, 결국 실업자·취약계층도 잃게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이치를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요, 알고도 안 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입으론 경제를 말하지만 사실은 정치를 하는 리더가 그렇게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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