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는 왜 땅주인 몰래 베었나..아름드리 10그루 벌채 사건

박진호 2020. 5. 2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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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충렬탑 앞 20~25m 전나무 10그루 잘려나가
나무 주변 잔디 죽어 매년 식재 반복에 따른 조치
충렬탑있는 우두산 A문중 소유인데 협의도 안 해
지난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충렬탑 인근에 있는 전나무가 베어진 채 쓰러져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땅 주인 허락도 없이 60년이 넘은 아름드리나무를 막 베어내도 되는 겁니까.”

지난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충렬탑. 전나무 10그루가 베어진 채 방치되고 있었다. 베어진 나무는 지름 50~60㎝, 길이 20~25m로 수령이 60~70년이나 되는 것들이다.

나무는 지난 21일 오전에 잘려나갔다. 산을 찾은 한 주민으로부터 충렬탑 주변 나무가 잘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A문중(소유주) 관계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10그루가 잘린 상태였다. 충렬탑 주변에는 18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10그루가 잘려나가면서 현재 8그루만 남았다. 해당 나무는 춘천시로부터 위탁을 받은 업체에서 베어냈다.

A문중 관계자는 “1억 그루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춘천시에서 땅 주인 허락도 없이 멀쩡한 나무를 이렇게 베어내는 게 말이 되느냐”며 “관련법을 검토해 그에 맞는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6조(입목벌채 등의 허가 및 신고 등)에 따르면 산림 안에서 입목의 벌채, 임산물의 굴취·채취를 하려는 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나 지방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와 별도로 사유지의 경우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나무 벌채하려면 시장의 허가 받아야

지난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충렬탑 인근에 있는 전나무가 베어진 채 쓰러져 있는 모습. A문중 관계자가 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6·25전쟁 당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순국한 호국영령의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을 영구히 추모하고자 1955년 7월에 세워진 충렬탑 부지의 경우 A문중 소유다. 또 충렬탑이 있는 우두산 역시 A문중의 조상 묘가 모여 있는 곳으로 500여년에 걸쳐 문중에서 관리해왔다. 춘천시에서 설치한 안내문에도 충렬탑이 있는 우두산은 A문중 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A문중 관계자는 “우두산은 500년 이상 된 사유지이지만 국가가 충렬탑 부지를 강제로 무상 사용했고 문중에서도 언제든지 시민들이 휴식처로 사용하도록 제한과 조건 없이 개방해 왔다”며 “충렬탑의 경우도 엄밀히 따지면 불법 조형물”이라고 주장했다.

A문중은 오랜 기간 무상으로 충렬탑 부지를 제공해오다 1996년부터 춘천시로부터 임대료를 받기 시작했다. 춘천시는 임대한 충렬탑 부지와 주차장, 주변 도로 등 8212㎡ 부지에 있는 나무와 창고 등 관련 시설을 관리해왔다.


춘천시, “수목 복원 방안 마련하겠다”

지난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충렬탑 인근에 있는 전나무가 베어진 채 쓰러져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A문중 관계자들은 지난 26일 춘천시청을 방문, 이재수 시장에게 벌채한 산림을 복구해달라고 요구했다. 문중의 의견을 들은 이 시장은 공문을 통해 “사전 협의 없이 조경사업이 진행된 건에 대해서는 시정을 총괄하는 시장의 책임을 통감하며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수목 복원 방안을 마련해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춘천시 관계자는 “충렬탑 앞에서 매년 현충일 행사를 하는데 나무 주변에 해가 들지 않아 잔디가 오래 살지 못해 잔디를 다시 심는 상황이 반복돼왔다”며 “사전에 (문중 측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했는데 업무상 착오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충렬탑에서는 매년 6월 6일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해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다. 추념식에는 강원도 내 기관 단체장과 국가보훈대상자 및 시민 등 1000명이 넘는 이들이 참석하고 있다.

한편 A문중 소유의 우두산 일대 15만2848㎡ 토지는 도시공원일몰제 대상이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설립을 위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공원 조성을 하지 않았을 경우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제도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20년 7월 1일부터 해당 부지에 대해서는 공원 지정 시효가 해제(일몰)된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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