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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통의 감수성 마비..노동하기 나쁜 나라 돼선 안 돼"

서복현 기자 입력 2020.05.28. 21:20 수정 2020.05.2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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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죽음에 대하여..|김훈 작가 인터뷰

■ 인용보도 시 프로그램명 'JTBC <뉴스룸>'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JTBC에 있습니다.
■ 방송 : JTBC 뉴스룸 (19:55~21:20) / 진행 : 서복현

[앵커]

그의 방엔 여러 권의 법전이 꽂혀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법전인가.

"형법을 좋아한다. 명료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안전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 역시 그에겐 너무나도 명료했습니다. 글로 말하던 그가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로 나섰습니다. 스스로 보수 취향이라 말하면서 진보의 어젠다로 불리던 노동자의 죽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작가 김훈입니다.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왜 뻔히 보이는 길을 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

반대로, 그에게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제가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김훈/작가 : 노동의 문제나 지금 생명 안전의 문제나 상당한 부분이 겹쳐 있는 것이거든요. 매일매일 하루에 1명씩 죽어서 1년에 재난 노동 현장에서 450여 명이 죽고 고층에서 추락해 죽는 노동자가 250명입니다. 그런데 이걸 물량으로만 따져봐도 소소한 사고가 더 큰 사고가 된 거예요. 이것이 일상화되고 만성화되니까 그것이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을 느끼는 감수성이 이제 마비돼가는 것이죠. 이것은 정말 무슨 이런 재난 참사의 문제보다도 인간성에 관한 문제가 되는 것이죠. 강남역 7번 출구, 8번 출구 쪽에 가면 돈이 많고 고급 외제 승용차가 많이 돌아다니고. 우리나라 최고의 성형수술하는 병의원들이 있고. 거기 가면 또 삼성전자의 백혈병 피해자들 반올림들, 해고 노동자들 다 거기 와서 그 앞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거기는 보면 거리가 크게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도 늘 평온해. 질서 있고 매일매일 일상이 규칙적이고 평화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게 여러 가지 아우성이 섞여 있으면서도 그 거리가 적막해. 여러 가지 표정이 막 인간의 표정들이 뒤엉켜 있는데도 그 거리가 무표정해 보였어요, 그 거리가. 내가 거기 가보니까.]

[앵커]

노동 문제는 사실 지금까지 진보의 어젠다라는 시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보수 성향의 작가님이 직접 이 노동 문제에 집중하신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훈/작가 : 내가 보수 취향으로 분류되는 것은 내 본의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에요. 특히 내가 아니라고 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보수 취향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령 보수 취향의 사람들이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면 마땅히 우리 보수의 어젠다가 돼야 마땅하잖아요. 이런 문제를 가지고 무슨 그렇게 이것이 뭐 이쪽이냐 저쪽이냐 말하는 것은 참 무의미하고 앞으로는 점점 더 무의미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것이 계급 간의 문제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이것을 학술적이나 사회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거듭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부유층이나 권세 높은 집의 도련님이나 아가씨들이 그렇게 계속 떨어져 죽고 깔려 죽었다 하면, 수십 년 동안. 그러면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진작 해결할 수 있었을 거예요.]

[앵커]

왜 넘어진 곳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왜 뻔히 보이는 길을 가지 않는가. 왜 우리는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왜 우리는 그런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왜 그럴까요?

[김훈/작가 : 우리는 이게 글쎄요, 그건 참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고 있을 텐데. 가령 노동과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거론을 하잖아요. 그러면 또 한쪽에서는 거기에 대한 대항 담론을 만드는 거예요, 대항 담론. 그 대항 담론의 골자는 뭐냐 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생명과 노동자의 생명, 안전에 관한 문제는 그런 대항 담론의 틀에 가둬놓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럼 담론들끼리 서로 장애물이 돼서 우리는 아무 데도 못 가거든요, 아무 데도. 아무 데도. 담론으로 담론을 막아버리니까. 서로 부닥쳐서 그냥 혼돈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못 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죠, 물론. 그러면 그게 노동하기 나쁜 나라가 되면 그러면 그게 무슨 인간에 무슨 의미가 있어요? 내가 지금 나이가 73살인데 내가 그런, 이런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게 한 7~8년 전이었어요. 굉장히 늦은 거죠. 늦게나마 내가 그렇게 된 것을 내 생애에서 큰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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