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직격인터뷰] "정권과 시민단체의 권력·이권 나눠먹기가 윤미향 사태 낳았다"

안혜리 입력 2020. 5. 29. 00:42 수정 2020. 5.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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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정권의 이해관계 일치
반대 용납않고 적폐·친일로 몰아
돈·권력 누리며 핍박받는다 생각
이권에 혈안..재벌 비판이 무색


윤미향 사퇴 촉구한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안혜리 논설위원

만사참통(모든 인사는 참여연대로 통한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재인 정부 들어 참여연대와 이 정권과의 유착은 노골적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는 시민단체와 권력과의 그런 비정상적 밀월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시민단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사모펀드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조국 수호에 나섰으니 하는 말이다. 그때 딱 한 사람만 제 목소리를 냈다.

바로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21 대표)다. 그는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시절 조국을 옹호하는 시민사회 교수·변호사 등을 비판하며 페이스북에 “위선자 놈들아 주둥이만 열면 개혁 (외치지만) 권력 주변 맴돈 거 말고 뭐 한 거 있느냐”고 비난한 후 참여연대를 탈퇴했다. 말이 탈퇴지 사실상 ‘파문’이었다. 조국 사태에 이어 이용수 위안부 할머니의 폭로로 불거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 관련 각종 회계 부정 의혹에도 참여연대는 윤미향 수호를 택했고, 김 대표는 반대로 조목조목 횡령·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6일엔 ‘위안부 운동의 사유화’를 비판하며 윤 당선인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김 대표를 만나 윤 당선인이 운영했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등 시민단체의 불투명한 회계 문제, 그리고 어용으로 전락한 시민단체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김경율 대표는 20년 넘게 몸담았던 참여연대에 맞서 권력화한 시민 단체를 날카롭게 비판했다가 사실상 ‘파문’당했다. 그를 배신자 프레임에 가둔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Q : 그쪽 동네는 물론 권력으로부터 배신자로 찍힌 셈인데, 후회하지 않나.
A : “청와대에 있는 한 인사가 경고하더라. ‘당신 이름만 나오면 안색 변하는 사람이 여기(청와대) 수두룩하니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내 코멘트가 담긴 기사가 나가는 날엔 ‘적폐 세력과 손잡지 마라’는 비난 메시지가 쏟아진다. 하지만 난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국 사태 당시 내 문제 제기가 맞는지 틀리는지만 고민했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 이번 윤미향 당선인 의혹도 마찬가지다.”

Q : 가족도 그 선택을 지지하나.
A : “아내가 이른바 ‘대깨문’(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이다. 조국 사태 때도, 또 이번에도 ‘아무 말 말라’고 말린다. 윤 당선인의 결백을 믿어서라기보다 지금까지 함께해온 사람들한테 왜 상처를 주느냐는 이유겠지.”

Q : 잘못을 비판하면 상처 주는 건가.
A : “이런 반응이 나 역시 의아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공동의 적이 있어 무조건 뭉쳤다 치고, 노무현 정부 때는 이러지 않았다. 결국 권력의 문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권과 시민사회가 권력과 이권을 분점하는 구조이다 보니 시민단체가 본분을 망각해버렸다. 시민활동가들인 자신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해관계를 완벽하게 일치시키고선 자신들만 절대 선(善)이라고 한다. 권력·이권 다 가진 사람들이 핍박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권력을 견제하기는커녕 스스로도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벌어지는 일들이다. 부끄러움을 잊어버렸다. 툭하면 노무현을 소환하는데, 그 사람들은 이미 이상은 잃어버렸고 권력·이권만 남았다. 노무현 정신을 말하지만 실은 검찰에 대한 분노만 남은 게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노무현을 희화화한다.”

Q : 이권은 뭘 말하나.
A : “코링크부터 라임·VIK·신라젠 등 의혹이 불거지며 조범동(조국 조카)·김봉현(라임 의혹 주역) 같은 코스닥시장을 분탕질 치는 세력과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 않나. 재벌 개혁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걸 보면 재벌 개혁한다며 삼성만 때리는 게 미안할 지경이다. 심지어 시민단체를 삼성에 돈 받아내는 창구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부끄럽다.”

Q : 회계 부정 의혹을 정의연과 여권에선 시민단체의 관행이라는데.
A : “그런 게 어딨나. 너무 불쾌하다. 윤 당선인을 옹호하려고 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에 똥칠 당한 느낌이다. 공익법인 기부금을 개인 계좌로 받았다는 것 자체가 당장 문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차명계좌(윤 당선인 개인 계좌를 통한 모금)에 공시 누락 등 부실 덩어리인 정의연 회계자료를 보니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부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Q : 어떻게 가능했을까.
A : “한국 사회에서는 친일 프레임을 가장 무서워한다. 정의연과 그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정대협)가 바로 이 프레임을 방패막이로, 또 정당한 비판자에 대한 입막음으로 휘둘렀기에 가능했을 거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부금 유용 의혹 폭로 이후 회계적 문제를 제기했더니 그쪽 진영에서 곧바로 나까지 친일로 몰더라. 식자층의 알만한 사람들이 어제도 오늘도 계속 그렇게 얘기한다. 지금까진 그게 통했으니까. 아무도 무서워서 건드리지 못했으니까. 정의연의 안성 쉼터 회계평가에서 F를 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속사정은 모르겠다. 하지만 ‘감히’ 정의연에게 F를 준 걸 보면 이런 프레임을 잘 모르는 직원이 원칙대로 처리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경고하면 받아들이고 고치면 되는데 정의연 사람들은 고작 그 정도의 시정조치조차 못 견뎌 한다. 억울하다고 한다.”

Q : 참여연대와 갈라서지 않았다면 김 대표도 친일 프레임에 동조하지 않았을까.
A : “맞다. 조국·윤미향 사태를 거치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참여연대 시절 내가 맡았던 경제금융센터 관련 이슈를 제외하고 사법개혁이나 국회 문제 등은 참여연대 산하 사법개혁센터나 의정감시센터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다. 아예 판단을 맡겨 버렸다.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거니와 전적으로 신뢰했으니까. 내가 쭉 그래왔던 것처럼 조국 사태 땐 경제금융센터에서 제기하는 사모펀드 문제를 다들 경청해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걸 계기로 다른 센터에서 내왔던 주장의 저의까지 의심하게 됐다. 가령 공수처라든가. 이제야 비로소 무조건 믿지 않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줄 아는 근대인이 됐다.”

Q : 정의연 회계는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
A : “개인계좌를 통한 모금, 다시 말해 차명계좌 문제다. 영세한 시민단체에서 개인 명의 계좌로 기부금 받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윤 당선인을 옹호하는 회계사가 몇몇 있다. 법인 계좌가 압류돼 있거나 하는 예외 상황이 아니라면 법인이 개인 계좌로 기부금 받는 건 있을 수 없다. 세법상 일회적이냐 반복적이냐도 중요한 문제다. 윤 당선인은 할머니들 장례 치를 때마다, 해외 나갈 때마다 개인 계좌를 활용했다. 정의연 정관에 있는 사업을 하면서 왜 개인 계좌를 수시로 쓰나. 단발성으로 개인 계좌 쓰는 영세한 시민단체와 비교할 일이 아니다. 이건 마치 포장마차와 강남의 대형 성형외과를 나란히 놓고 포장마차도 신용카드 안 받는데 왜 성형외과에서 카드 안 받는 걸 비난하느냐고 하는 것과 똑같다. 백번 양보해 모금함 놓고 현금 받고 개인 통장 쓰는 게 정당성을 가지려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Q : 통제라니. 그리고 똑같은 회계사인데 왜 판단이 다른가.
A : “윤 당선인과 정의연을 문제 삼으니 나더러 공익법인 회계는 잘 모르는 비전문가라고 공격하더라. 과거 참여연대뿐 아니라 지금도 크고 작은 시민단체 15개나 맡고 있는데 말이다. 난 이 단체들에게 정권 바뀌어 어느 의원실에서 보조금 받은 내역 달라고 할 수 있으니 투명하게 운영하라고 겁을 준다. 통제란 별 게 아니다. 엑셀 파일에다 통장 기입하듯 매일 들고 나는 돈을 빼먹지 않고 일계표를 쓰는 거다. 1명이 하루 20~30분만 쓰면 된다. 일계표 하나로 아무도 돈 빼돌릴 수 없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Q : 투명한 회계 처리가 그렇게 어렵나.
A : “정의연은 20억짜리 토지건물에 금융자산 20억, 매년 기부금 20억, 정부 보조금 5억원을 받는 단체다. 웬만한 시민단체는 다 합해 연 5000만원 넘기도 쉽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큰 규모다. 이런 단체가 영세한 탓에 공시 누락하는 등 회계를 투명하게 처리 못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2018년 통합했다던 정대협·정의연 법인이 각각 따로 존재하며 심지어 보조금을 따로 챙기기도 한 것 역시 정상적이지 않다. 정대협은 돈이 오가는 창구로만 존재한 게 아닌가 싶다. 정의연 입장에서 보면 실체도 없는 조직과 내부거래를 한 셈이다. 이번에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누구라도 또다시 돈 문제를 만들 수 있다.”

Q : 시민사회단체 전반의 문제 아닌가.
A : “윤미향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시민단체가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한 시민단체에서 수천만 원의 횡령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시민사회 쪽 원로 한 사람이 실태조사를 부탁하더라. 시민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면 정의연 사태가 불거지자마자 원로 중 누군가가 나를 불러 그때처럼 실사부터 부탁했을 거다. 그런데 이번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조사를 요청해야 하는 분들이 엉뚱하게 ‘윤 당선인이 결백하다’고 보증을 서버렸다. 사태 초기에 ‘다 해명됐다’고 하는 걸 보고 뜨악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회계사·변호사 투입해서 살펴보면 된다. 그런 기본적인 일도 안 하지 않았나. 딸 유학자금만 해도 그렇다. 잘 아는 교수 부부가 외동딸 유학 자금 마련하느라 대출까지 받더라. 부부 합산 연봉이 5000만원이라는 윤 당선인 부부의 유학 자금 출처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공직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소명할 의무가 있다. 시민사회 쪽에는 지금이라도 모르면 최소한 보증을 서진 말라고 말하고 싶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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