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품 경관 만든다더니.. 뜬금없는 첨성대

정지섭 기자 2020. 5. 2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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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성당 앞 도시건축전시관
"코로나 극복 희망 전파하겠다" 市 예산 6500만원 들여서 설치
시민들 "왜 저런 흉물을 놔뒀나"
전망 살린다던 취지에도 어긋나
340억 들인 전시관도 사람 없어

지난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맞은편 도시건축전시관 출입구 셔터가 올라갔다. 입장을 기다리고 있던 관람객은 기자 한 사람뿐이었다. 발열 검사를 한 직원은 "지하 1~3층 전시관 중 2층만 관람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지하 2층은 '사람과 사람 사이, 두 팔 간격 거리를 두자'는 안내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내부가 한산했다. 이날 오전 관객은 기자를 포함해 총 11명이었다. 전시관 측이 코로나 감염을 우려해 하루 2시간씩 20명만 총 세 차례 볼 수 있도록 제한하고 사전예약을 받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울시가 국세청 남대문별관(지상 4층)을 허물고 건물터를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며 조성한 공간이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지하 1~3층에 들어선 도시건축전시관(연면적 2998㎡)은 일반인들과 동떨어진 전시 구성과 운영으로 발걸음이 한산하고, 지상 1층 옥상 광장인 '서울마루'(800㎡·242평)는 주변 경관을 고려하지 않은 전시로 잇따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서울 중구 서울시청 맞은편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 경주 첨성대를 모티브로 한 조형물(사진 가운데)이 우뚝 서서 주변 경관을 가리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솟은 첨성대 조형물은 높이가 약 10m로, 시 관계자는 "코로나 극복을 위한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진한 기자

서울시는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 남대문 국세청 별관 철거 및 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4년여 철거 및 공원 조성 공사를 거쳐 작년 봄에 개관했다. 건립에 시 예산 340억원이 투입됐다. 시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대한제국의 역사적 숨결을 회복하겠다"며 "비움을 통해 원래 풍경을 회복해 성공회 성당 등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개관 1년 2개월이 지난 이곳의 현재 모습은 서울시가 밝힌 취지와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는 전시관의 테마를 건축으로 정하고 한국건축가협회에 운영을 위탁했다. 전시 테마가 건축에 치우치다 보니 시민들의 관심사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때로는 아예 동떨어진 전시로 논란도 불렀다. 서울건축도시비엔날레의 한 행사로 작년 10월 열린 '평양다반사' 전시회는 북한 제품을 실제로 전시장에 진열했다. 북한 물건 전시가 건축과 무슨 관계가 있냐는 지적도 나왔다.

전시관 위의 1층 건물 옥상 '서울마루'도 최근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의 조형물은 첨성대 모양을 본떠 지난달 말 전시관 옥상 광장인 '서울마루'에 설치한 설치미술가 한원석씨 작품 '환생(Rebirth)'이다. 전시관 측은 첨성대 조형물이 "코로나 극복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할 것"이라고 했다. 설치에 시 예산 6500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도심 한가운데 우뚝 솟은 뜬금없는 맥락에다 취지에도 공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전문가와 시민들로부터 잇따르고 있다.

이 조형물은 폐자동차에서 떼낸 헤드라이트 1374개를 이어 붙여 만들었다. 높이 9.5m, 최대 너비 5.2m다. 지난 2006년 제작돼 서울 청계천과 을지로, 전남 순천 순천만 정원 등에서 전시되다 최근 이곳으로 옮겨졌다. 다음 달 2일 기획전시 '천년의 빛으로 희망을 비추다'가 개막하면 밤마다 빛을 뿜어낼 계획이다. 전시관 측은 "1300여년간 온전한 첨성대는 코로나에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시민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성공회 주교좌성당 신도 김재형(38)씨는 "저 조형물을 두고 요즘 신도들 사이에서 '왜 성당 앞에 저런 흉물을 갖다 놓았느냐'는 불만이 많다"며 "서울시와 건축 전문가들의 미적 감각을 불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광화문 회사에서 근무하는 박연주(31)씨는 "퇴근길 전시관 너머로 보이는 성공회성당이 운치 있었는데, 첨성대 조형물에 가려서 아쉽다"며 "어떤 의미라는 건지 이해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첨성대 조형물이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건립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이공희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는 "도시건축전시관을 큰돈 들여 땅 밑으로 지은 것은 성공회성당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번 전시는 그런 취지에 정면으로 반(反)한다"고 지적했다.

개관 이후 옥상에서 열린 행사들도 시민 정서와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해 10월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소통하는 풍선지붕'을 설치하면서 옥상 광장에 대형 흰 풍선 수십 개를 띄워놓자 "덕수궁 돌담길·성공회성당 등 주변 경관을 망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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