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떠난 새 : 독립한 '피해자'의 목소리

2020. 5. 2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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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을 말하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
②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
피해자에서 '문제해결 주체'로
이용수 할머니의 이번 증언은
여성 운동사에서 중요한 사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세월 자신이 감내했던 고통을 드러내며 시민사회와 정부에 던진 메시지는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할머니의 호소를 계기로 <한겨레>는 우리가 무엇을 성찰해야 하고, 남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가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는지 모색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 사무단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이 두번째 글을 보내왔다. 이달 들어 두차례에 걸쳐 이뤄진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공개증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심연에서 처음 끌어올린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만큼 이용수 할머니의 이번 증언을 여성 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우리는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때 그들이 증언하는 ‘피해 사실’과 비극적 삶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이들의 ‘아픔’과 이를 극복해낸 ‘용기’를 기려왔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었지만, 문제 해결의 주체는 지원단체나 정부였고,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들은 수동적 존재였다. 이번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결이 크게 다르다. 정의기억연대(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후신)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던 기존의 운동 방식을 비판하며, 스스로 위안부 문제를 정의하고, 운동 방향을 정하려는 주체적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든 아니든 그가 우리 앞에 주체로서 서겠다고 결심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정대협·정의연을 중심으로 이어진 운동이 ‘피해 당사자’ 이용수와 얼마만큼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실제 얼마만큼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기여했는지 되새겨볼 기회이기도 하다. 이용수 할머니는 그동안 정신대, 성노예라는 규정을 피하고 “저는 이용수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공개 증언에선 격앙된 목소리로 나는 (근로)정신대가 아니고,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라고 자신을 규정하며, 여성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있어서 위안부 피해는 여전히 “더럽고, 듣기 싫고, 부끄럽고 미안한” 현재진행형의 피해일 뿐이다. 지난 30년 운동이 피해자들에게 위안부 피해는 부끄럽고 더러운 일이 아니며,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미안한 일이 아니라고 위로해왔으나, 그 위로는 아직 그에겐 도달하지 못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이 필요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것이 절실한 이유는 그 스스로 25일 회견에서 밝혔듯 그래야만 자신이 “위안부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용수 할머니는 매우 흥미로운 발언을 쏟아낸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나라입니다. 이 학생들이 알아야, 뭐 때문에 사죄, 배상을 해야 할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서로 왕래하면서 친해지면서 서로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외치는 “사죄하라, 배상하라”는 그저 반일구호로만 들리는 ‘수요시위’로써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 교류를 정대협·정의연이 안 해온 것은 아니나, 1441회까지 이어져온 수요시위에서 도드라진 목소리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었다. 이용수 할머니도 이 주장의 정당성엔 공감하지만, 이 주장을 더 이상 수요시위와 같은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하자고 운동 방침의 커다란 전환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또 일본이 쉽게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을 것임을 경험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 아닐까. 정의연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기존의 운동 방식을 비판하며, 스스로 위안부 문제를 정의하고, 운동 방향을 정하려는 주체적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과는 달리 지원단체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해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원을 갔고, 국회의원이 되려고도 했다. 그러나 공적 지위는 얻지 못했다. 지난 30년의 운동은 이용수 할머니에게 인권운동가라는 ‘바람직한’ 피해자로 남아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용수 할머니는 그 ‘바람직한’ 피해자에게 주어진 최고 권위가 김복동 센터로 수렴되는 걸 봤다. 자신의 역사가 어떻게 기억될지에 대한 초조함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에 큰 충격을 받는 것은 그가 쏟아낸 언어의 처절함 때문이었다. 그는 위안부 운동을 자신과 함께해왔던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이 자신이 얻지 못한 공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을 운동에 대한 ‘배신’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본인이 지원받는 피해자로 있는 한 트럼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 어떤 위대한 정치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그리고 오랜 동지였던 윤미향 전 이사장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더럽고, 부끄러운” 위안부로서의 시간을 보낸 이용수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젊은 일본 학생들에게 어렵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의 결론은 정대협·정의연이 해온 노력은 이어가면서, 일본이 책임을 지고 배상을 할 때까지 자신의 역사를 바로 알리는 “한·일 청소년 교육”을 하는 것으로 일본과 ‘화해’를 하자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는 피해 당사자 본인이 당장의 ‘역사 정의’를 유예하더라도 진정한 ‘역사 정의’로 가는 화해의 길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혜인 연구위원
이용수 할머니가 제안한 ‘화해’의 방법에 대해, 일본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해볼 필요가 있다. 올해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들을 보면, 독도 기술은 악화된 반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내용이 이전에 비해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강제성’을 띠고 있다는 점도 기술됐다. 근본적 변화는 아니지만, 이런 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화 실현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피해자 자신의 역사를 소유하고 기록하려는 이용수 할머니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우리의 공공의 역사와 “대화”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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