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정진기(政診器)] '절대 과반' 앞세운 민주당의 오만과 '내로남불'

허주열 2020. 5. 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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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 번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연승을 한 더불어민주당은 59%의 의석으로 국회의장직에 이어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갖겠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운데)와 김태년 원내대표(왼쪽) 등 당 지도부가 지난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 호텔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상임위원장직 싹쓸이' 예고, 민주당의 오만한 민낯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또다시 시작됐다. 21대 총선 직후 "국민에게 기대 이상의 성원을 받았다"(이해찬 대표), "국민 앞에 조금이라도 오만이나 미숙, 성급함이나 혼란상을 드러내면 안 된다"(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고 하더니 두 달도 채 안 돼 태도를 싹 바꾼 모양새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지난 27일 21대 국회 원 구성과 관련해 "'절대 과반' 의석을 가진 정당인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갖고 책임 있게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다"며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야당과 협상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국민의 뜻"이라고도 했다.

절대 과반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정치적 용어다. 이번 총선에서 전체 300석 중 180석(59%)을 획득한 정당이 자신들을 선택하지 않은 41%의 국민을 무시하고, 다수결의 힘을 앞세워 국회를 뜻대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의회 독재적 발상'이다. 당장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국회를 없애라고 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와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가 자신의 제자들과 공동 집필한 '민주주의는 만능인가'라는 책에선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수결은 사실 민주주의와 특별한 상관이 없다"고 설명한다. 다수결은 의견이 갈리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결정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고, 다수결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 방법이 없는 경우에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또한 이 책에선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가 아니고, 모든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렇게 믿는 사람 중에는 다수결을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하거나 오용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실제 다수의 힘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킨 잘못된 역사적 사례는 넘쳐난다. 독일 나치가 정권을 잡아 운영하는 방법이 그랬고, 공산국가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으로도 다수결이 사용되고 있다.

결국 오용과 악용의 위험성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할 대상이 다수결이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는 '여야 협치'가 기본이다. 민주당의 주장은 앞선 13~20대 국회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직을 배분해온 관례에도 어긋난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 27일 21대 국회 원 구성과 관련해 "'절대 과반' 의석을 가진 정당인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갖고 책임 있게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고,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남윤호 기자

이와 관련 윤 사무총장은 "13대 이후 지금까지 여야 간 의석 비율에 따라 상임위위원장직을 나눠 갖는 게 관행화된 것은 과반 정당이 없기 때문"이라며 "12대까지는 다수 지배 국회였다"고 했다.

민주화 세력을 자부하는 민주당이 민주화 이전인 1985년 권위주의 정부 시절(12대 국회)로 시간을 되돌리겠다는 궤변이다. 특히 18대 국회에선 과반을 차지한 새누리당이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갖겠다고 하자 당시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의회 독재를 꿈꾸는 것인가. 다수당이 상임위를 독식했던 것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이었던 12대 국회까지였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 스스로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했던 총선 때의 59% 득표를 '국회를 장악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도 아전인수격 행태다. 시사인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180석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절반이 넘는 55%로 나타났다(적절하다 32%). 특히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3040대에서도 이번 총선 결과가 '과도하다'는 답변이 '적절하다'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27일 민주당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이 강연한 내용에 포함돼 민주당 의원들도 알고 있다. 불리한 자료는 외면하고 유리한 수치만 내세우는 왜곡의 전형적 모습이다.

정권을 잡은 후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쓰레기·유령·꼼수정당"이라고 맹비난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들도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을 만들어 선거에 임했다.

이외에도 최근 윤미향 민주당 당선인 논란, 지난해 조국 사태, 김경수 경남지사의 1심 판결에 대한 사법부 공격 등 수차례 자신들이 과거 비판했던 행위를 한 자들을 자신들의 편이라는 이유로 감싸는 일을 반복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실수가 아닌 고의다. 지금의 민주당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십 년 가는 권력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이라는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오만과 내로남불 행태 지속의 끝이 좋을 리 없다. 자충수를 계속 둘수록 민주당이 쥔 유한한 권력의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으면 한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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