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기업인에 대한 시각 바꿔야 경제 산다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2020. 5. 30.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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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범죄자처럼 다뤄 투자 의욕과 사기 역대 최저.. 이런데도 경제 잘되면 기적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2011년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대통령을 수행하여 일본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첫날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서 후쿠시마 원산지 음식이 많이 나왔는데, 일본 TV는 이를 방영하면서 후쿠시마 식재료가 안전하다는 홍보에 열을 올렸다.

다음 날 일본 경단련이 주최하는 오찬 세미나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후쿠시마산 음식이 없었다. 옆에 앉은 간부에게 "총리 만찬에서는 후쿠시마 음식이 많던데 여기는 왜 없냐"고 물었더니 그 간부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총리가 그런 정치적 쇼만 하지 기업에 도움 되는 일은 아무것도 안 한다. 한국 기업들이 부럽다. 우리도 한국 이명박 대통령처럼 기업을 잘 아는 총리가 나와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노기업인의 목소리에는 전혀 기운이 없었다.

꿈은 절실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침울했던 일본이 2012년 말 아베 총리가 들어서면서 180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법인세를 낮추고, 미국을 설득해서 엔화를 절하시켰으며, 규제 개혁을 줄줄이 추진했다. 기업들은 신바람이 났고 경제는 구인을 걱정할 정도로 살아났으며 주식시장도 두 배 이상 뛰었다.

같은 시기 한국 역시 180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다만, 일본과는 방향이 정반대였다. 2012년 총선부터 경제 민주화가 정치 테마로 재등장하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반기업 정책들이 양산되면서 기업 경영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데다 기업인을 범죄자처럼 다루는 행태로 인해 투자 의욕과 사기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대한항공,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수십 차례 압수 수색을 당하고, 많은 기업 인재가 처벌을 받았는데 이런 나라 경제가 잘된다면 기적이다. 선진 국가 중에 기업인이 이렇게 수난을 겪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전 세계가 자국 기업을 키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왜 유독 우리만 기업을 이렇게 옭아맬까. 그것은 정권 실세들의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 그동안 이들의 발언을 보면 그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지난 2017년 고위 당국자는 경총에 대해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 "대기업의 반칙, 특권, 부패로 서민 경제가 무너지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질책을 했고, 최근 대권 후보 도지사는 법인세 인하 건의에 대해 "처참한 상황을 이용해 한몫 챙기겠다는 경총, 정말 실망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어느 고위 정책 담당자는 국회에서 "왜 여당이 기업 걱정하느냐?"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기업인은 양극화의 주범으로 '악(惡)'이라는 반기업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성장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이익 추구를 위해 모진 짓을 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양극화의 책임을 이들에게만 씌우는 것은 오류가 있다. 양극화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산업혁명 이후 인류 역사는 양극화와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나라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지만 다 실패했다. 사회주의를 도입한 나라는 경제 자체가 무너졌고, 중국처럼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시켜 보았더니 경제는 성장했을지 몰라도 양극화는 세계 최악이다. 남미 국가들은 국가자본주의 미명하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복지 예산을 마구 풀다가 국가가 부도났다. 결국 아직까지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판명된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기업을 때린다고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기업인 중 사회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시민단체에는 더 파렴치한 인간도 많지 않은가. 그것이 세상사인데 유독 기업인만 악으로 규정하고 반기업 정책을 펼치면 정권은 인기를 끌지 몰라도 국가 경제는 멍든다.

지금 세계는 해외에 있는 자국 기업을 불러들이기 위해 세금 깎아주고, 이전 비용 대주고, 기업 환경 개선에 여념이 없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참 난감하다. 이제는 일본 기업을 부러워할 상황이 되었다. 여권의 총선 압승 이후 반기업 정책이 강화될 전망이어서 더욱 그렇다. “해외에서는 굶어 죽게 생겼고, 국내에서는 맞아 죽게 생겼다”는 어느 기업인의 하소연이 엄살만은 아닌 듯하다. 지금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기업이 돈을 못 벌면 누가 일자리와 부채를 감당하겠는가. 경제를 살리려면 위정자들이 기업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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