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30년 운동사'..위안부 '피해자 중심주의'를 다시 보다

CBS노컷뉴스 차민지 기자 2020. 5. 3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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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씨 폭로 후 '피해자 중심주의' 화두로
피해자 중심주의 재정립 해야 할 시점
'피해자는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 전제
보편가치 설정하되, 피해자 개인 성역화는 경계해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지난 7일에 이어 지난 25일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3)씨는 두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그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격정적인 폭로를 쏟아냈다. "지난 30년 동안 이용당했다"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그간 위안부 운동의 중심축이었던 정의연에 일대 파란을 가져왔다.

"피해자를 지지하고 대변한다" 정의연은 이같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걸고 활동해 온 단체이기에 피해자를 통해 흘러나온 메시지가 가져온 충격은 더 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지향점 차이가 격화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위안부 운동과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전제는 피해자는 단일하지 않다는 것"

(사진=연합뉴스)
지난 30년간, 위안부 운동은 정대협과 정의연으로 이어진 시민단체가 주축이 됐다.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은 1991년 고(故) 김학순씨의 최초 피해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시켰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어느새 '위안부 피해자=정의연'처럼 인식돼버렸다는 점이다.전문가들은 지금의 사태가 이와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성공회대 김동춘 사회과학부 교수는 "피해자는 가해자의 사과와 보상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복원하려고 하고, 시민단체와 활동가는 피해자의 문제를 통해 사회 전체의 문제까지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목표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위안부 운동의 특수성상, 할머니와 정의연을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면, 접점과 다른 점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문제에 진심으로 응답하려고 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대협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발해 정의연으로 출범하는 등 외연을 넓히고, 운동 범위도 전쟁범죄와 여성 인권 등 보편가치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충분히 동의를 구하지 못해 갈등이 격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이신철 소장은 "예를 들어 김복동 할머니는 확장된 정의연의 활동과 방향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면, 이용수 할머니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며 독자적인 활동을 원하셨던 거고, 심미자 할머니는 '이 또한 싫다'하셨던 거다"며 "피해자는 단일하지 않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대협 양미강 전 사무총장은 "위안부 운동을 피해자만의 운동으로 볼 것인지, 피해자와 더불어 하는 운동으로 볼 것인지 합의가 되지 않은 것"이라며 "미분화된 상태로 같이 흘러온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일본 정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 문제가 맞물려 돌아간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 중심주의의 의미를 좀 더 다각적으로 살펴볼 때가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재정립 해야"…보편가치 설정 필요·성역화 경계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안부 운동'과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새로운 가치 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에 등록된 240명의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 할머니가 17명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 절박성은 더 크다. '위안부 없는 위안부 운동'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신철 소장은 "분절된 피해자가 있는데 어떤 때는 이 할머니의 말을 집중적으로, 어떤 때는 저 할머니의 말을 집중적으로 따르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며 "기준을 설정해 두고 보편적 가치에 따라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컨대,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사과라는 전제 아래 전시 성폭력과 국가폭력과 제국주의 문제에서 접근해야 하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다만 아직 개념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이고, 피해자의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오독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공회대 강성현 열림교양학부 교수는 "피해자가 해 온 말들의 역사가 있는데 맥락을 무시하고 어떤 때는 신빙성이 없다, 어떤 때는 좋은 말씀을 하셨다고 평가하는 것은 결코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피해자를 성역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그는 "피해 생존자들도 욕망이 생기는 다양한 주체"라면서 "그게 시민사회 운동과 같이 갈 수도 있고 티격태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것이 갈등 관계라면, 인정하고 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며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양현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피해자 중심주의가 '피해자가 말하면 이를 따른다'는 날 것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다만, 피해자들의 요청과 피해자들의 필요를 잘 수렴해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조치를 짜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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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차민지 기자] chach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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