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사망케 한 美경찰 가혹행위 배후엔 '공무원 면책' 적폐"

김지혜 입력 2020. 5. 30. 22:31 수정 2020. 5. 3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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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이 비무장 상태인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트위터 캡처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관이 비무장 흑인을 9분 가까이 무릎으로 짓눌러 사망에 이르게 사건이 발생했다. 지나던 시민들이 말렸지만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3분가량이나 지속된 이런 가혹행위의 원인이 미국 수사기관들에 자리잡은 '공무원 면책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경찰관 데릭 쇼빈은 극히 이례적으로 3급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를 받으며 이날 기소됐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찰은 일반 시민이었다면 법의 심판을 받았을 행위를 해도 기소되는 경우가 드물다"며 "경찰은 '공무원 면책권' 원칙에 따라 일정 수준의 법적 보호를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경찰관 쇼빈이 19년 복무 기간에 상습적으로 공권력을 오남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 처분을 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쇼빈은 그동안 용의자를 최소 2번 총으로 쐈으며 그 중 1명은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그는 근태 불량부터 과도한 공권력 행사까지 17차례 고소·고발을 당했으나 1차례의 견책 징계만을 받았다.

WP는 "경찰이 세부내용 공개를 거부해 해당 사건들의 정확한 성격이 파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에서 29일(현지시간) 비무장 흑인의 목을 무릎으로 제압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인들은 연방법에 따라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 공무원을 고소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대법원은 1967년 판결에서 '선의'로 인권을 침해한 공무원들에겐 면책권이 부여된다고 최초로 명시했다. 공무원들이 자신의 소관인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송을 당하는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겠다면서다.

대법원은 2015년 이 원칙에 대한 구체적 해석을 제시했다. 공무원들은 '상식적인 사람이 알만한, 명확히 수립된 법적·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공무 중 행위와 관련해 기소되지 않는다는 게 그 내용이다.

하지만 '명확히 수립된'이라는 개념이 '상식적인 사람이 알만한'이라는 해석을 압도하면서 그동안 경찰들은 과도한 면책권을 누려왔다.

일례로 2013년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선 경찰관들이 불법 도박장 운영 혐의를 받는 피의자 2명의 집을 수색하다가 20만 달러를 넘게 훔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와 관련 법원은 "경찰이 영장을 통해 몰수한 물건을 훔친 행위가 '비합리적 수색과 체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수정헌법 4조를 위반했다고 적시하는 '명확히 수립된 법'이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2004년에는 경찰이 교통위반 딱지 서명을 거부한 임신 7개월 여성을 차량에서 끌어낸 뒤 테이저건(전기충격총)을 1분 안에 3차례나 쐈다. 이같은 일은 피해 여성의 11세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다.

이 여성도 경찰을 고소했지만 법원은 경찰의 행위가 '명확히 수립된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시민자유연합(ACLU) 등 자유주의 성향의 시민단체뿐 아니라 보수 기독교 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세력이 대법원에 공무원 면책권 원칙을 재고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지난 26일부터 시작돼 미국 전역으로 퍼진 경찰 규탄 시위에서도 공무원 면책권이 유색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제도적 장치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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