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성 난항 속..'공수교대' 정치가 달라져야 하는 까닭은

성한용 2020. 5. 3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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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24
21대 원구성 협상 난항..18대 때와 닮은꼴
2008년 주호영 원내수석 "과반 의석 정당이 상임위원장 다 맡도록"
2020년 주호영 원내대표 "상임위원장 다 가져갈 거면 국회 없애야"
2008년 서갑원 원내수석 "힘으로 밀어붙이는 국회 운영 안 된다"
2020년 윤호중 사무총장 "절대다수 정당이 책임 모두 지는 원칙"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교섭단체 양당 원내대표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청와대 사진기자단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은 정치에서 많이 쓰는 말입니다. 똑같은 행위라도 자신의 행위는 미화하고 상대의 행위는 비난하는 일이 잦기 때문입니다.

야구 용어인 공수교대도 정치에서 많이 쓰는 말입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 여당과 야당이 뒤바뀌면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공격과 수비의 역할도 하루아침에 바뀌기 때문입니다.

1997년 정권교체 이후 10년 주기로 여야가 바뀌면서 내로남불과 공수교대는 우리나라 정치의 일상이 된 것 같습니다.

21대 국회 원구성 협상이 난항입니다.

국회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박병석 의원, 부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김상희 의원과 미래통합당의 정진석 의원으로 내정된 상태지만, 의장단 선출을 위한 국회 본회의는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래통합당의 주호영 원내대표가 상임위원장 배분까지 다 마무리되어야 의장단 선출 본회의 소집에 응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말인 30일 <와이티엔> 이승배 기자가 원 구성과 관련해 재미있는 보도를 하나 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공수 바뀐 국회...과거엔 주호영이 "우리가 다 가져야" [앵커] 21대 국회 원 구성을 두고 민주당과 통합당 사이의 기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77석이라는 절대 과반을 가진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회를 모두 가져가겠다고 하자 통합당이 과거 독재 시절로 돌아가자는 거냐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과거 상황과 거의 똑같습니다. 단지, 선 자리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승배 기자입니다. [기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에 치러진 총선 결과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153석을 거머쥐며 여유 있게 과반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81석에 그치면서 참패했습니다. 현재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인 당시 한나라당 주호영 원내수석은 원 구성 협상에서 미국 얘기를 꺼내며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주호영 / 당시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지난 2008년 7월) : 과반 의석 당이 전 상임위원장이 다 맡도록 하면 협상 필요 없이 그냥….] [서갑원 / 당시 통합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지난 2008년 7월) : 그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국회 운영입니다.] [주호영 / 당시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지난 2008년 7월) : 지난번에 미국 민주당이 1석 많아서 전 상임위원장을 다 (가지고 갔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앞세워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가져가겠다고 하자 대통령 비서실장인 당시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또 이렇게 반발했습니다. [노영민 / 당시 민주당 대변인(2009년 12월) : 이제 그나마 몇 되지도 않는 야당 몫의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해서 의회 독재를 꿈꾸는 것입니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이명박 정부가 궁지에 몰리면서 밀어붙이지 못한 점도 있지만 상임위원회 구성은 8월 말에나 이뤄졌습니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공수가 바뀌었습니다. 민주당은 177석이라는 절대 과반의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며 상임위원장 자리 모두를 가져와야 한다고 공개 선언했고, 통합당은 민주당이 독재 시절로 돌아가려 한다며 이럴 거면 아예 국회를 없애라고 반발했습니다. 12년 전과 닮은꼴입니다. [윤호중 /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 : 절대다수 정당이 탄생했기 때문에 그렇게 상임위원장 자리 나누지 않고 책임을 모두 지는 이런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오늘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주호영 /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 모든 상임위원장 다 가져갈 거면 의원도 다 가져가지. 지금 다 가져가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판단해 보십시오. 차라리 국회를 없애야지.]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사수하고 싶은 상위위원회는 법사위와 예결위입니다. 통합당도 선뜻 내줄 의사가 없어 이번 상임위 구성도 순조롭게 이뤄지진 않을 전망입니다. YTN 이승배입니다. 어떻습니까? 18대 국회에서 여당의 원내수석부대표로 원구성 협상 실무를 맡았던 주호영 의원이 12년 뒤 야당의 원내대표가 되어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야당에서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입장이 정반대로 바뀐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21대 원구성 협상의 최대 쟁점은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입니다. 법사위는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모든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해야 합니다. 법사위의 중요성은 2012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크게 달라졌습니다. 2012년 이전에는 국회의장이 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법사위원장의 권한이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이후에는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면 국회의장 단독으로 직권상정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따라서 법사위원장을 차지한 정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2012년 19대 국회 법사위원장은 전반기 박영선, 후반기 이상민 의원이었습니다. 2016년 20대 국회 법사위원장은 전반기 권성동, 후반기 여상규 의원이었습니다. 19대 박영선 이상민 의원은 야당이었지만, 20대 전반기 권성동 의원은 여당이었습니다. 20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에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장을 맡으면서 법사위원장은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몫이 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사위원장이 무조건 ‘야당 몫’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법대로 해서 모든 위원장 자리를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이 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주요 위원장 자리를 가져오기 위한 협박용 발언이라고 봐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는 의석 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 배분을 하되 현재 야당이 차지하고 있는 법사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 중요한 위원장 자리를 가져오겠다는 것입니다.
13대 이후 국회 법사위원장 13대 이치호 (민정 ) 김중권 (민자 ) 14대 현경대 (민자 ) 박희태 (민자 ) 15대 강재섭 (신한국 ) 목요상 (한나라 ) 변정일 (한나라 ) 16대 박헌기 (한나라 ) 함석재 (한나라 ) 김기춘 (한나라 ) 17대 최연희 (한나라 ) 안상수 (한나라 ) 최병국 (한나라 ) 18대 유선호 (민주 ) 우윤근 (민주 ) 19대 박영선 (민주 ) 이상민 (새정치 ) 20대 권성동 (새누리 ) 여상규 (자유한국 ) 이런 요구의 근거는 13대와 14대 국회입니다.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국회에서 상임위원장 자리를 야당에 배분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13대 여소야대 국회부터입니다. 민정당 7, 평민당 4, 통일민주당 3, 신민주공화당 2의 비율로 배분했습니다. 주요 상임위원회인 법사위 위원장은 물론 민정당 몫(이치호 의원)이었습니다. 그 뒤 1990년 초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서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습니다. 1990년 13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에서 민자당은 모든 상임위원장을 다시 여당이 독차지하려고 했지만, 유일 야당이었던 평민당의 강한 반대로 13 대 4로 배분했습니다. 법사위는 물론 민자당(김중권 의원)이 맡았습니다. 14대 국회 전반기와 후반기에도 야당에 상임위원장 자리를 배분했지만, 법사위원장은 여당 몫(현경대 박희태 의원)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여당에서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반면에 미래통합당은 전혀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집권 여당의 독주를 방지하기 위해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명분입니다. 이 대목도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법사위원장 자리가 야당으로 넘어간 것은 1997년 12월 정권교체 이후였습니다.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부터 대통령이 소속한 여당과 원내 다수 정당이 달라지면서 그때까지의 관행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요상 전 법사위원장
일단 국회의장은 표 대결 끝에 자민련 박준규 의원이 선출됐습니다. 이어진 원구성 협상에서 운영위원장은 여당 원내총무 한화갑 의원이, 법사위원장은 원내 1당으로 야당 소속이었던 목요상 의원이 나누어 맡았습니다. ‘야당 법사위원장’이 탄생한 것입니다. 목요상 의원에 이어 변정일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했습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1당으로 승리한 한나라당은 ‘원내 1당’을 명분으로 내세워 법사위원장 자리를 계속 차지했습니다. 박헌기 함석재 김기춘 의원이었습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는데도 법사위원장은 전후반기 모두 야당인 한나라당이 가져갔습니다. 이번에는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한 견제 장치’라는 명분이었습니다. 전반기는 최연희 안상수 의원, 후반기는 안상수 최병국 의원이었습니다.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은 한나라당의 압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야당인 통합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궁지에 몰렸던 정부 여당이 원구성을 마무리 짓기 위해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반기는 유선호 의원, 후반기는 우윤근 의원이 했습니다. ‘야당 몫 법사위원장’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19대 국회까지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미래통합당의 주장에도 어쨌든 일리가 있습니다. 이번 21대 국회 원구성 협상은 어떻게 될까요? 더불어민주당에서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려는 이유는 법사위원회가 가진 체계·자구 심사권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동시에 펴고 있습니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이 없어진다면 여당이 법사위원장 자리에 큰 미련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통합당은 물론 반대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에 대해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일찌감치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호영 의원은 초선 의원이었던 2006년 1월 이런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한 적이 있습니다.
제21대 국회 미래통합당 첫 원내대표에 선출된 주호영 의원이 5월 8일 국회에서 열린 2020년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 선출을 위한 당선자총회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제사법위원회는 소관 기관에 대한 고유 업무와 법률안, 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 기능을 갖고 있음. 그러나 제17대 국회 개원 이후 법률안 발의가 폭증함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가 고유의 소관 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법률안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고, 체계·자구 심사의 부실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음. 또한 법제사법위원회가 모든 법률안을 심사함에 따라 사실상 다른 상임위원회의 권한 위에 존재하는 ‘위원회 중의 위원회’라는 비판 등 법제사법위원회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 논란이 많았음. 이에 법제사법위원회는 고유의 사법·행정 등을 소관으로 하는 사법위원회로 기능하도록 하고, 법률안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은 별도의 상설특별위원회가 담당하도록 하려는 것임. 주호영 의원이 대표 발의했던 법안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없애고 별도의 상설특위를 설치하자는 제안입니다. 따라서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아야 한다는 현재의 주장과 직접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없애고 별도의 상설특별위원회를 설치하되 위원장을 여당이 맡겠다고 제안하면 주호영 원내대표가 어떻게 대응할지 좀 궁금합니다. 여당과 야당의 주장을 절충해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그대로 두되 일정한 시일 안에 체계·자구 심사를 반드시 마치도록 강제하고, 법사위원장을 지금처럼 야당이 맡는 방안은 어떨까요? 정치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는 내로남불과 공수교대도 있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새옹지마(塞翁之馬)도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늘어난 의석만큼 국정에 대한 책임이 커졌습니다. 야당 시절의 서러움을 기억해야 합니다. 양보는 여당이 하는 것입니다. 미래통합당은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에 몰두하다가 몰락한 최근 3년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무리하게 버티다가 자칫하면 상임위원장 독식이라는 여당의 협박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창조적 발상으로 타협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정치인들이 가진 가장 뛰어난 능력입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입니다. 21대 원구성 협상의 신속한 마무리를 기대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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