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에 '불순물'을 섞는가
“단순한 ‘위안부’ 피해자로 생각해선 안 된다.” “특별대우를 안 해줘서 삐진 것이다.” “저쪽 진영에 세뇌가 되신 것 같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정의연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후원금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에 대한 2차 가해가 확산하고 있다.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할머니의 인지능력을 의심하는 ‘치매설’부터 정권 반대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정치공작설’까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의미를 깎아내리는 발언들이 다수 올라왔다.
한 유튜버는 지난 26일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옆에 있던 정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려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장에 보수성향 유튜버가 있었다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이 동영상은 26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정치공작” “치매” “노욕”
피해자 겨냥해 ‘2차 가해’
정치인들이 되레 불붙여
위안부 운동 본질 흐리고
할머니들 발언 어렵게 해
이 할머니가 2012년 비례대표를 신청했고, 윤 의원이 이를 만류하는 녹취록이 지난 27일 공개되자 이 할머니의 비난 여론이 더 커졌다. 회견 동기를 국회의원직을 둘러싼 개인적 분노로 축소하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이러한 녹취록 내용을 공유하며 “본인이 국회의원 되고 싶었는데 남이 먼저 하니 부숴버리려는 것 같다” “구순이 넘은 나이에 노욕이 발동했다” 등의 인신공격성 댓글을 남겼다. 이 할머니의 출신 지역을 언급하며 지역혐오성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권 정치인들이 이러한 2차 가해 발언에 불을 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지난 27일 기자들과 만나 이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윤 의원을 비판한 것을 두고 “(윤씨가 2012년 할머니의 국회의원 출마를 반대해) 할머니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 동기가 됐다. 할머니의 분노는 ‘내가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나를 못 하게 하고 네가 하느냐, 이 배신자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방송인 김어준씨는 이 할머니가 배포한 회견문과 실제 말투가 다르다며 “(회견문 작성에) 7~8명이 협업한 것”이라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민주당과 합당한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도 지난 8일 “할머니가 주변에 계신 분에 의해 조금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고 했다. 정의연 역시 이 할머니의 최초 문제제기 당시 “할머니가 고령으로 기억력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 할머니는 이러한 배후설이나 치매설에 대해 “나는 치매도 바보도 아니다. 백번 천번 얘기해도 나 혼자했다”(CBS <김현정의 뉴스쇼>)고 일축했다.
이 할머니의 인지능력이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발언들은 지난 30년간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 방향을 돌아보자는 요구의 본질을 가린다. 2차 가해성 발언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체적인 말하기를 더욱 어렵게 할 우려도 있다.
한 위안부 연구자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위안부 운동방식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피해자의 주체적인 선택”이라며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을 때도 정대협이라는 조력자가 있었지만 조력자를 배후라고 주장하고 그 발언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듯, 이 할머니의 주장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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