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5·18을 제대로 기억하니?.. 영정속 흐린 사진이 묻는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2020. 5. 3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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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메이투데이'전 3일 서울서 개막

영정 속 얼굴이 해가 바뀔수록 점점 지워졌다. 급기야 사진 속 얼굴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사진의 주인공은 김남석 열사. 1980년 5월 22일 집으로 가져온 총기를 전남도청에 반납하고 오겠다며 나갔다가 실종됐던 그의 주검은 청소차에 실려와 이곳 ‘망월동 묘지’에 묻혔다.

5·18민주화항쟁 40주년 특별전이 ‘메이투데이’라는 큰 타이틀 아래 대만 한국 독일 아르헨티나 등 4개국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되는 가운데 한국전이 3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한다. 사진은 노순택 작가의 사진 작품 ‘망각기계’. 광주비엔날레재단 제공


노순택 작가는 2006~2020년 김남석 열사의 영정을 지속적으로 찍으며 사진이 세월의 풍화 작용 때문에 흐릿해지는 과정을 기록했다. 사진은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것인데 이후에도 계속 같은 장면을 찍어 이번 전시에 내놓았다. ‘망각기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우리는 5·18민주화항쟁 피해자들의 희생정신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라고.

광주의 정신을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민주주의의 봄’ 전시다.

올해는 광주민주화항쟁 40주년인 만큼 국제적인 규모로 열린다. 광주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 광주비엔날레를 출범시킨 광주비엔날레재단이 기획했다. 전시는 대만, 서울, 쾰른,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4곳에서 순차적으로 열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5월 대만 전시만 예정대로 열렸고, 지난달 16일 개막 예정됐던 서울 전시는 오는 3일 ‘지각 개막’한다. ‘메이투데이(MaytoDay)’라는 주제는 같지만 국가별로 큐레이터는 다르다. 9월 초엔 광주에서 총결산 전시를 연다.

서울 전시는 독일 출신 큐레이터 우테 메타 바우어가 맡았다. 바우어는 세계적인 현대미술 제전인 카셀도쿠멘타 등에 참여한 바 있다. 95년 출범 이래 12차례 개최된 광주비엔날레 및 특별전 역대 출품작과 이것을 연장시킨 신작 등 190여점을 선보인다. 오형근, 임민욱 등 5개국의 작가 및 연구자 26명(팀)이 참여했다.

권승찬 작가의 경우 군인과 광주 시민이 전시장에서 마주 보도록 한 퍼포먼스 사진을 선보인다. 그는 “상징적인 공간에 머물고 있는 두 인물을 새롭게 배치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80년 당시의 군인과 시민은 지금도 대치 중에 있음을 암시한다”며 “5·18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환 작가의 ‘유행가: 임을 위한 행진곡(1997-1999)’은 시민활동가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이 유명한 노래를 차용한 설치영상작품이다. 광주시에서 제공받은 폐보도블록과 영상을 조합한 것인데, 보도블록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가사를 한 글자씩 새기고 광주 시민들 머리카락으로 틈새를 메웠다.

멕시코 작가 쿠퍼라티바 크라터 인버티도는 제11회 광주비엔날레(2016)에서 가면무도회와 애니메이션 등 일련의 예술작품을 내놓으며 한국과 멕시코 두 나라의 생채기 난 현대사를 접목시켰다. ‘퍼머넌트 홀리데이, 왜 어떤 이는 떠나고 어떤 이는 남는가’라는 영상 작품은 멕시코 농민 운동인 사파티스타에 감동한 네 명의 유령이 5·18의 마지막 시민회보에 대한 소문을 듣고 광주의 다양한 역사적 장소를 방문한다는 설정이다.

전시는 5·18기념재단 및 5·18광주민주화운동기록관과 협업해 당시 기록 사진이 합쳐지면서 밀도를 높인다. 페퍼포그 앞에서 손을 흔드는 시민군을 찍은 보도사진 등 어떤 터치도 가하지 않은 생생한 보도사진은 40년 전의 뜨거운 현장을 힘 있게 소환한다.

광주 출신 전정호 작가의 판화 작품 ‘시민군’. 광주비엔날레재단 제공


당시 광주 사태를 체험한 지역 판화가들의 작품도 처음 서울 나들이를 했다. 이상호의 ‘죽창가’, 전정호의 ‘시민군’ 등 그 공포스러운 현장을 체험하고 가까이서 전해들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직접적인 분노가 칼끝에 배어있다. 판화전문가 김진하씨가 기획한 이 판화전은 인사동 나무아트(6월 30일까지)에서도 함께 개최된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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