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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코로나에 패션은 사치? 세계의 재봉틀이 멈췄다

한경진 기자 입력 2020.05.31. 20:20 수정 2020.06.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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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코르소 코모' 뉴욕 매장 접고 '레나운' '제이 크루' 등 파산신청

'톰 포드·몽클레르' 등 해외 명품 선글라스 수입 업체 브라이언앤데이비드는 지난 3월 법원에 회생 신청서를 제출했다. 국내 면세점·백화점에 매장 69곳을 둔 이 회사는 코로나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자 매출이 95% 이상 급감했다. 골프웨어 '피가로'를 운영하는 너트클럽, 핸드백 'AK앤클라인'을 만드는 성창인터패션도 코로나 직후 회생법원 문을 두드렸다.

미국 콜스 백화점은 지난 3월 코로나 쇼크로 전국 매장을 임시 폐쇄하면서 한세실업·한솔섬유·세아상역 등 국내 의류 제조 업체 10여곳에 의뢰한 1000억원대 3~6월 주문을 취소했다. 이에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미국의류신발협회(AAFA), 미국패션산업협회(USFA) 등에 청원문을 보내며 "콜스의 일방적 주문 취소로 한국 직물 공장의 경제적 피해가 극심하다"며 호소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국내외 할 것 없이 섬유·패션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소비 위축으로 유통 업체가 쓰러지고, 제품 생산이 중단되면서 패션 산업의 글로벌 밸류 체인이 연쇄 붕괴하고 있다. 세계 패션 공급망의 '중간축'인 우리나라 섬유·패션 업체들도 내수 위축과 수출 감소의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리고 있다.

패션 기업 실적 추락

사람들의 '집콕 생활'로 불요불급(不要不急)한 패션 소비가 줄면서 최근 패션 브랜드들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한 국내 상장 패션·섬유 업체 중 80%가 매출이 감소했다. 연 매출 1조원대 4대 패션 기업도 일제히 실적이 추락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1분기 영업이익은 -31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1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9% 감소했다. LF는 130억원으로 50.2%, 한섬은 293억원으로 11.5% 줄었다.

패션 브랜드들은 대형 매장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잇달아 철수하고 있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이랜드월드의 캐주얼 브랜드 '후아유' 매장은 31일 개점 8년 만에 문을 닫았다. 지난 3월에는 2006년부터 명동을 지켜 온 대형 편집숍 에이랜드가 영업을 종료했다. 해외 상황도 비슷하다. 명품 편집숍 '10 코르소 코모'가 미국 뉴욕 맨해튼 시포트 지역에 열었던 2600㎡(약 787평)대 매장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18개월 만에 폐점했다. 파산 신청 브랜드도 속출하고 있다. 일본 의류 업체 레나운은 지난달 중순 도쿄지법에 파산 신청을 했다. 1902년 창업한 이 회사는 캐주얼 브랜드 '아놀드 파마' 등으로 한때 '일본 국민 의류 기업'으로 통했지만, 이제는 일본 상장 기업 중에 코로나 영향으로 도산한 첫 사례가 됐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가 즐겨 입던 미국 브랜드 '제이 크루', 비틀스 멤버 링고스타가 모델이었던 '존 바바토스'도 지난달 파산 신청에 나섰다.

세계의 재봉틀 멈췄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패션·섬유 수출액(7억6000만달러)은 전년 동기 대비 35.3% 급감했다. 미국·유럽의 주요 패션 매장이 지난 3~4월 줄줄이 휴업에 나서고, 신규 주문을 취소하면서 아시아·중남미 의류 공장이 멈춰선 까닭이 컸다.

한국 의류 협력 업체(벤더)들은 미국·유럽 거래처에서 주문을 받아 중국·베트남에서 원단을 공수하고, 베트남·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아이티·과테말라 등지에서 옷을 만들어 납품한다. 한 의류 ODM(제조자 개발생산 방식)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해외 대형 거래처가 잇따라 주문을 취소하고 대금 결제를 늦추면서 원단·부자재·생산비를 떠안은 일부 국내 벤더사가 수백억원대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급기야 한솔섬유는 최근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풍인무역·신원 등도 해외 사업·수출 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구조 조정에 나섰다. 신성통상은 최근 직원 55명을 내보내고, 인도네시아 사업부를 없앴다.

문제는 다음 시즌(계절)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패션은 계절과 유행을 놓쳐버리면 상품 가치가 급락하고 재고 처분이 어렵다. 미국 캐주얼 브랜드 ‘갭·바나나리퍼블릭·올드네이비’를 판매하는 갭Inc.는 오는 여름·가을 신상품 주문을 모두 취소한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C&A’(독일) ‘ASOS·프라이마크’(영국) ‘월마트·어반아웃피터스’(미국) 등 글로벌 대형 유통상들의 주문 취소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새 트렌드를 제시하는 세계 4대 패션쇼 일정도 중단된 상태다.

외신들은 세계 2위 의류 수출국인 방글라데시의 경우 코로나로 미국·유럽 패션 업체의 30억달러(약 3조7500억원) 상당 의류 주문이 취소되면서 의류 산업 종사자의 절반에 가까운 200만여명이 실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코로나 사태는 글로벌 패션 기업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며 “올해 패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약 30%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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