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어진 자기장, 지구인 삶의 변화 부른다

이정호 기자 입력 2020. 5. 3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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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스웜 위성’이 탐지한 지구 자기장의 모습. 남미와 아프리카에 걸친 대서양 주변에서 자기장이 특히 옅어졌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지금은 불모의 행성인 화성도 한때는 표면의 20%가 바다로 덮여 있었다. 바다가 있다고 해서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액체 상태의 물은 생명체 탄생을 쉽게 만드는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약 40억년 전, 화성에선 바다가 완전히 말라버렸다. 비슷한 시점에 화성 주변을 감싸던 대기도 대부분 사라졌다. 어쩌면 제2의 지구가 됐을지도 모를 화성이 돌무더기만 굴러다니는 행성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기장의 상실이었다.

자기장이 사라지자 강한 바람에 우산이 날아가듯 태양풍에 의해 화성의 대기가 날아갔고, 생태계 전체가 사실상 소멸했다. 태양풍을 방어하려면 행성 내부에서 액체 상태의 철이 빠른 속도로 회전해 자기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화성에선 이 작용이 멈춰버렸다.

지구가 생명의 행성이 된 건
지각 밑 액체 핵이 자기장 형성
대기·바다 유지 생명도 번창
대서양 주변 자기장 이상현상
“북극·남극 자리 바꾸는 조짐”

지구가 생명의 행성이 된 것은 화성과 같은 일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의 껍데기에 해당하는 지각 아래 3000㎞ 지점에 있는 액체 핵이 소용돌이치면서 형성하는 자기장 때문에 대기와 바다가 유지되고 생명도 번창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지구 자기장에 이상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2013년부터 지구 자기장을 관측하고 있는 ‘스웜(Swarm) 위성’의 분석 결과를 통해 대서양 주변 특정 영역에서 자기장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년 동안 지구의 자기장은 전 세계적으로 9%가 약해졌는데, 특히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남미 칠레 사이를 아우르는 대서양과 대륙에서 자기장 강도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과학계에서 ‘남대서양 이상현상(South Atlantic Anomaly)’으로 부르는 자기장 손상은 구체적인 수치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ESA에 따르면 1970년부터 50년 동안 남대서양 이상현상 지역의 자기장 강도는 2만2000nT(나노테슬라)까지 하락했다. 측정된 수치를 보면 남극이나 북극 주변처럼 자기장이 강한 곳은 자기장 세기가 6만nT가 훌쩍 넘는다. 지구 대부분 지역은 3만nT를 상회한다. 대서양 특정 지역에만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듯 자기장 구멍이 뚫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기장이 극단적으로 얇아진 곳이 5년 전부터 한 개 더 생겼다는 점이다. 원래 존재하던 자기장 구멍 곁인 아프리카 남서부 하늘에서 두 번째 자기장 손상 지역이 나타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과학계에선 지구 자기장을 일으키는 북극과 남극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조짐이 아닌지 분석하고 있다. 극이 바뀌는 과정에서 특정 지역의 자기장이 약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 반전’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지구에선 평균 25만년에 한 번씩 극이 서로 바뀌었다. 자기장의 남쪽과 북쪽이 바뀐다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 나타나는 남대서양 상공의 구멍은 정상적인 범위의 현상이라고 ESA는 밝혔다. 과학계 분석에 따르면 극 방향이 마지막으로 완전히 뒤바뀐 건 78만년 전이다. 지금 북극과 남극이 바뀐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78만년 전 마지막으로 극 반전
극 바뀔 때 자기장 급속 약화
통신 두절·대정전 등 일으켜
전기 의존 문명 걱정거리로
“자기장 관측 위성 있어 다행”

유럽우주국(ESA)이 2013년 발사한 ‘스웜(Swarm) 위성’. 3대가 동시에 움직이며 지구 자기장의 변화 상황을 측정한다. ESA 제공



남극과 북극이 바뀐다면 우리 삶에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주비행사들에게 ‘남대서양 이상현상’ 상공은 두려운 곳으로 꼽힌다. 최근 과학매체 ‘라이브 사이언스’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지구 저궤도 위성들이 이 지역 상공에서 통신 두절을 자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5년 ISS를 지휘했던 미국 우주비행사인 테리 버츠는 BBC에 “이 지역은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곳”이라고 말했다.

인간을 비롯해 지상에 사는 생물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극이 뒤바뀌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자기장의 90%가량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과학계는 보고 있지만, 적어도 대량 멸종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구에서 비교적 극의 반전이 꾸준히 일어났지만 생태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증거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도 있다. 2018년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논문을 발표한 호주 연구진은 중국의 한 동굴에서 자라는 석순 안의 자성 광물을 분석해 9만8000년 전에 20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자극의 위치가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는 인류가 구석기 시대를 이어가던 때였다. 어쨌든 인류를 비롯한 생태계는 유지됐다.

하지만 100여년 전부터 인류 문명이 전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건 걱정스러운 점이다. 지구 자기장이 약해진 틈을 타 태양풍이 지상까지 파고들 경우 전기 공급망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큰 태양 폭풍이 있었던 1989년 캐나다 퀘벡에서 대정전이 생겼고, 1859년에는 전 세계 전신망이 마비됐다. 전자기술에 기초한 문명이 앞으로 더 발달할 미래 사회에선 극 반전으로 인한 자기장 약화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위르켄 마츠카 독일지질학연구소 연구원은 “남대서양 이상현상이 최근 몇 년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관측할 위성이 지구 궤도에 떠 있는 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을 집중 분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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