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의 경제 돌직구] 폰지 사기에 가까운 '재난재정 선순환론'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 2020. 6. 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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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성'보다 위험한 재난재정 선순환론의 도박과 선동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경제지식네트워크 대표

경제 실패를 확장 재정으로 덮어온 문재인 대통령이 "전시(戰時) 재정 편성"을 독려했다. 그러자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역 화폐와 기본 소득을 통한 소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확대된 소득 주도 성장(소주성)으로 화답했다.

자유시장경제 기반을 훼손한 '경제 민주화'의 기수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는 "불평등, 비민주를 해결해야 한다"며 좌클릭을 예고했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원희룡 제주지사도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지키자는 말만 해선 기득권을 편드는 정당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 또한 '개혁적 보수'를 기치로 들고 대권 도전을 선언해, 자유시장경제는 정치적으로 기피 단어로 전락한 듯하다.

'전시 재정'은 경제 선순환 이룰까?

문 대통령은 "위기 국면에선 충분한 재정 투입을 통해 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재정 투자 선순환론을 들고 나왔다. 대통령의 경제 선순환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득 주도 성장론 또한 임금 인상이 소비를 진작하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만든다고 강변해 왔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 재정'은 소주성과 달리 재정 건전성의 선순환을 이룰 것인가? 문제는 정부가 바이러스를 빙자해 대폭적 복지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일부 국가밖에 없는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를 기정사실화했다. 기본소득제 논의도 범람하고 있다.

복지는 그 사회가 벌어들이는 부의 일부를 저축해서 제공된다. 스위스가 1인당 국민총소득 3만달러에 진입한 1987년에 우리나라는 3480달러에 불과했다. 그해 두 나라 국민이 소득을 같은 비율로 저축했다고 할 때 우리는 스위스의 10분의 1에 불과한 금액을 적립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부터 50년간 1인당 국민 소득의 10%를 매년 적립해서 5%의 수익률로 쌓아 왔다면 우리 국민의 적립 금액은 1인당 약 24만달러, OECD 선진국은 평균 62만달러로 우리의 2.6배가 된다. 룩셈부르크는 114만달러로 우리의 4.8배, 스위스도 102만달러로 4.3배, 현재 소득 수준이 우리보다 낮은 이스라엘도 우리의 1.9배인 45만달러다. 우리의 소득 수준이 과거에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그래픽=김현국

즉 복지에 대한 우리나라의 지불 능력은 현재 OECD 국가의 2.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과거에 가난해서 충분히 부를 적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복지를 크게 확대한다면 그 비용은 오로지 미래 세대의 몫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와 저출산 정도가 OECD 국가 중 가장 가파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경제활동 인구 대비 피부양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는 점도 큰 문제다. 2017년에는 경제활동인구 100명이 36.7명을 부양했지만, 2065년에는 117.8명을 부양해야 한다. 즉 미래 세대는 늘어난 복지를 감당할 능력이 사실상 없다.

재정 적자는 국가 부채 증가 주요 요인

정부의 근거 없는 낙관론과는 달리 한 번 늘어난 재정이 다시 건전해지는 '선순환'은 판타지 소설에 불과하다. 2000년 초에 강력한 '하르츠 개혁'으로 경제를 개선한 독일을 제외하고 모든 나라에서 GDP 대비 부채 비율이 급속히 확대됐다. 이탈리아는 부채 비율이 지난해 135%에서 금년 160%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가 부채 비율을 늘리지 않기 위해선 연평균 2% 고성장하고, 정부 재정 적자를 GDP의 1.5% 이하로 통제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0.4%의 저성장에 그치고, 낮은 신용 등급 때문에 높은 이자로 세수의 상당 부분을 이자를 상환하는 데 써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현재 세계경제는 인류 역사에 좀처럼 없었던 양적완화로 통화량과 재정 적자가 풍선처럼 커지고 있다. 기축 화폐 국가인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경제 대국은 부채가 높아져도 국가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통화 팽창과 적자 확대의 부정적 영향에 그대로 노출된다. 영국 중앙은행 연구에 따르면 양적완화로 풍부해진 금융권 자금이 통화량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추거나 자산 버블을 만들어 낸다. 이 연구는 양적완화로 투입된 자금의 8%만 실물경제로 흘러갈 뿐이라고 했다. 양적완화로 일본과 EU는 이미 수년 전부터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맞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5%로 낮춰서 더 내릴 수 있는 여력이 소진되고 있다.

통화량 급증은 자산 가격 급등을 먼저 가져오고 큰돈을 빌린 부자들에게 이자를 낮춰주는 혜택이 있다. 반면 일반 국민에게 고용 확대 혜택은 매우 느리고 제한적이며, 통화량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소득을 감소시켜 부의 격차를 확대한다. 늘어난 재정으로 정부의 세수에서 이자 비용 비율이 커지면 성장과 분배가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유럽중앙은행 연구에선 정부의 재정 적자가 국가 부채 증가의 주요 원인이고, 부채 비율 70~80%부터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고 했다. 역대 정부가 건전 재정 원칙을 소중히 지켜온 것은 지정학적 위험과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재정 증가가 성장과 분배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소주성의 선순환론보다 더 위험하고, 라임 사모펀드 사기와 다를 바 없는 재난 재정 선순환론의 도박과 선동이 시작됐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씌우는 다단계 폰지 사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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