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코로나에 묻힌 재정 정책의 근시안적 편향

안동현 서울대교수 2020. 6. 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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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보다 현재 중시하는 '시간 할인'에 '내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되든' 상관 않는 도덕적 해이 겹쳐
안동현 서울대교수

올해 들어 이미 정부는 두 차례 총 23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국가채무비율이 지난해 38.1%에서 41.4%로 상승했다. 여기에 3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3차 추경을 더할 경우 44%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전대미문의 팬데믹이란 비상 상황에서 전시적 재정 확장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없을 것이다.

정작 우려되는 부분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재정 확장이 불가피해지면서 지난 3년 동안 현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이란 명목하에 편성한 비효율적 재정 확장이 같이 묻혀버리는 부분이다. 추가경정예산을 제외한 본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이명박 정부가 5.89%, 박근혜 정부가 4.03%인 데 반해 이번 정부에서는 8.64%로 수직 상승했다. 이러한 재정 확장이 재정 승수효과를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러한 징후는 없다. 작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명목 GDP 순위는 11년 만에 8위에서 10위로 오히려 두 단계 하락했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비율은 전 정권의 36%에서 작년 말 38.1%까지 증가했고 코로나 사태를 제외하더라도 올해 39.8% 그리고 내년에는 42.1%로 증가하게 되어 있었다.

국제 기준으로 활용하는 부채지표는 IMF의 GFS-PDS 기준으로 국가채무(D1)가 아니라 여기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더한 일반정부부채(D2)다. 이 지표의 증가 속도는 더 가파르다. 지난 4월 IMF가 발표한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D2 부채 비율은 2017년 36.7%에서 내년에는 49.2%까지 치솟게 된다. 세 차례의 추경을 반영한다면 이 수치는 내년 50% 중반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어 IMF의 선진국 기준 권고 상한선인 60%에 육박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재정 건전성을 중요시해야 할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히 주목할 점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율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77명으로 1명 아래로 떨어졌고 작년에는 0.92명으로 추가 하락했다. 이 와중에 작년 사상 처음으로 국민 한 명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과 4대 보험을 합한 국민부담금이 1000만원을 넘어섰다. 저출산으로 인해 현재의 국가채무 수준에서도 이러한 부담금은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처럼 빠르게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향후 후세대들의 부담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세대들을 타임머신을 타고 데려와 정책 결정에 참여시킬 수도 없다.

바로 이 부분이 경제학자들이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가장 큰 폐단으로 지목하는 것으로 이를 재정 정책의 근시 편향(fiscal myopia)이라 부른다. 민주주의에서는 집권 기간이 단기간이다 보니 집권 기간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이에 대한 비용은 추후에 발생하는 정책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적 결함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이를 제어할 기제가 마땅치 않다는 부분이다. 유권자들이 합리적이라면 투표를 통해 이러한 근시안적 정책을 제어할 수 있지만 미래에 비해 현재를 더 중시하는 '시간 할인'이란 심리적 현상에다 카를 마르크스를 포함해 경제학자들이 많이 인용하는 루이 15세의 소위 'Apr�]s moi, le d�[luge!(내가 죽은 후에 대홍수가 일어나든 말든!)'로 대표되는 도덕적 해이까지 개입되어 이러한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군비 확장에 따른 재정 적자에 반기를 들었던 하버드대학의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교수를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은 결국 정부 관료와 같은 전문가 집단, 즉 테크노크라트가 강력한 독립성을 확보해 이를 제어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시장경제의 균형(equilibrium)은 모든 시장 참가자의 합리성을 필요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균형에 위치한 수요자와 공급자가 합리적이면 그 균형은 합리적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정책 집행의 키를 쥐고 있는 테크노크라트가 합리적이면 정부 정책의 합리성은 유지된다. 우리 경제가 지금까지 재무 건전성이 양호했던 이유는 정권에 관계없이 ‘나라의 곳간을 지킨다’는 원칙을 사수해왔던 과거 재무부나 기재부 공무원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야 우리 경제가 그만큼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징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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