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면 판사·검사 눈빛 바뀐다" n번방 재판 단골 목격자들

박태인 2020. 6.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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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재판을 지켜보는 목격자들이 있다. 사진은 신상이 공개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왼쪽)과 공범 강훈(18). [중앙포토]

서울과 춘천, 창원 등 전국 법원을 다니며 성범죄 재판을 기록하는 목격자가 있다. 한때는 '마녀'라는 이름으로, 현재는 트위터에서 'D'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활동가 A씨다. 성폭력 피해자이기도 했던 A씨는 평일엔 n번방 등 성범죄 재판을 방청해 트위터에 기록한다. 주말엔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한다.

지난달 28일 춘천지법에선 제2의 n번방을 만들어 구속기소된 배모씨(대화명 로리대장태범)와 공범 류모씨(대화명 슬픈고양이)의 재판에도 A씨가 있었다. A씨는 이날 검찰이 두 사람에게 중형(5~10년형)을 구형하자 "검찰이 켈리 때와 달리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며 부랴부랴 언론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는 글을 남겼다. 지난해 문형욱(대화명 갓갓)에게 n번방을 물려받은 신모씨(대화명 켈리)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던 춘천지검의 '히스토리'를 아는 A씨라 적을 수 있었던 소회였다.

언론 보도로 A씨의 존재를 알게 된 현직 판사는 "디지털성폭력 등 형사사법절차에 실망을 한 여성들 사이에서 재판을 직접 감시하고 알리려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재판에 대한 사법 불신이 시민들을 법정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n번방 재판을 모니터링하는 활동가 A씨의 트위터. [트위터 캡처]



법원 불신이 재판 방청 불렀나
실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A씨뿐 아니라 n번방과 스쿨미투 재판에 '방청 연대'를 요청하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를 알리기 시작했던 활동가 연대 '프로젝트리셋'과 'eNd(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도 n번방 피고인 재판 방청 연대를 하며 트위터에 공유한다. 이들은 모니터링을 넘어 재판을 받고있는 피고인 중 일부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고 재판부에 엄벌 탄원서도 제출한다. 이 과정에서 'eNd'는 피고인 가족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활동가 A씨는 올해 재판 방청과 관련한 체크리스트 및 수첩 제작과 성범죄 관련 형사사법시스템 교육도 고려 중이다. 대학 언론 중에선 성신여대 자치언론인 '온성신'이 네이버 블로그에 n번방 재판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김영란 양형위원장이 지난 4월 20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참석 위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의 양형기준이 논의됐다. 연합뉴스



활동가 만난 판사들
최근엔 법원에선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판사들의 움직임도 있었다. 젠더법연구회는 지난달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문법관연수에 A씨와 프로젝트리셋 활동가 등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을 진행했다.

활동가들은 1박 2일로 진행된 법관연수의 초청 강연자였던 민유숙 대법관, 고려대 김승섭 교수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전문법관연수에 반(反)성범죄 활동가들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또다른 지방법원의 현직 판사는 "이분들의 모니터링을 통해 공개재판주의가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사건을 오랜 기간 다뤄왔던 검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모니터링에 대해 "법조인은 성범죄를 바라보는 법조인만의 관행적 시각이 있다"며 "일반인의 관점에서 성범죄 재판을 바라보고 전달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감시와 견제'를 통해 검찰과 법원이 더 꼼꼼한 재판을 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n번방 재판을 모니터링하는 활동가 A씨의 트위터. [트위터 캡처]



"지켜보는 눈 많을수록 더 충실한 재판"
가수 정준영과 최종훈의 항소심을 맡았던 재판장은 지난달 선고를 한차례 연기하며 "방청객 중엔 질문하실 분은 없느냐"고 먼저 묻기도 했다. 판사가 먼저 방청객에게 질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재판장이 방청객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단 말이 나왔다.

4월 창원지법에서 성범죄 재판을 방청했던 A씨는 법정을 다녀온 뒤 "재판부는 법정에 많은 방청객이 몰리자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질문을 했고, 검찰은 더 정성스럽게 구형을 했습니다. 지켜보는 눈의 유무에 따라 법정 분위기는 바뀝니다"고 적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지켜보는 눈이 많을 수록 더 충실한 재판이 이뤄진다는 지적을 부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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