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판 구하라'라 불리는 숨진 소방관 생모의 항변

천금주 기자 2020. 6. 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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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32년간 자녀를 돌보지 않은 한 소방관의 생모가 딸이 순직하자 1억원에 이르는 유족급여를 받은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전북판 구하라’ 로 불리는 소방관의 아버지와 언니는 분노해 생모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생모는 “전 남편이 막아 딸들을 만날 수 없었을 뿐 방치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해 대중들을 더욱 공분시켰다.

전북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해 1월 수도권 한 소방서에서 일하던 A씨(당시 32)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시작됐다. 구조과정에서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던 A씨는 충동조절 어려움과 인지기능 저하에 시달렸다. 그는 휴직 후 지속적인 치료에도 근무 중 목격한 사고 장면이 반복해 떠오르는 증상으로 증세가 더 악화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공무원재해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아버지 B씨(63)가 청구한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생모인 C씨(65)에게도 이런 결정을 알렸고 C씨는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둘째 딸 퇴직금의 일부를 합쳐 약 8000만원을 받아갔다. 아울러 사망 때까지 매달 유족연금 91만원도 받을 예정이며 이미 수개월분은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알게 된 B씨와 그의 첫째 딸은 “장례식장 조차 오지 않았던 사람이 뻔뻔하게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며 양육비 1억8950만원을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제기했다. 미성년자인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 모두 부양 의무가 있고 부모의 자녀 양육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과거의 양육비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삼았다.

B씨는 생모인 C씨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며 이혼 시점을 기준으로 자녀 1명당 성년이 된 해까지 매달 50만원씩 내라고 청구했다. B씨와 C씨는 1983년 1월 결혼한 뒤 1988년 3월 협의 이혼했다. 이후 32년간 두 자녀를 홀로 키웠다. 이혼 당시 아이들의 나이는 5살, 2살이었다.

생모 C씨는 양육비 청구 소송이 부당하다며 반박했다. C씨는 법원에 낸 답변서를 통해 “당시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을 방치한 사실이 없고 전남편이 집에서 쫓아내다시피 해 나와 아이들의 물리적 접촉을 막았다”며 “아이들이 엄마를 찾을 때면 전 남편이 ‘엄마를 왜 찾느냐’며 두 딸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이혼 후 친모로서 누구보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었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이를 시기하는 전남편이 딸들에게 해를 가할 것을 우려해 만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고 한 C씨는 “대신 친정어머니로 하여금 두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 옆에 집을 얻어 살며 딸들의 안위를 살피도록 했다. 딸들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으며 큰딸이 갖게 된 적개심은 전남편의 험담에 의해 심어진 잘못된 인식 탓”이라고 주장했다.

C씨는 이혼 후 두 딸 앞으로 매달 1만원씩 수년간 든 청약통장 사본과 현직 목사로서 지역주민을 위해 선행을 베푼 주변인의 탄원서를 근거 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B씨의 큰 딸은 생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법정에서 “생모는 동생이 떠난 뒤 단 한번도 어디에 안치됐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생모라는 사람은 목사라는 직업을 앞세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다”고 반박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해당 사건이 ‘전북판 구하라’가 재현된 사건이라며 ‘구하라법’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가수 구하라가 숨진 뒤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생모가 갑자기 나타나 유산을 받겠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한 얘기다. ‘구하라법’은 가족을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제한적 경우에만 유산 상속 결격 사유를 인정하는 형행 민법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를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됐다. 한편 해당 사건의 선고는 다음 달 10일 변론을 끝으로 오는 7월 이뤄질 예정이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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