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사기꾼들 전성시대

박국희 사회부 기자 2020. 6. 2.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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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희 사회부 기자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는 7000억원대 다단계 금융 사기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인물이다. 피해자만 3만명이다. 이씨는 최근 MBC와 옥중 인터뷰를 하고 "저희는 사기 집단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상은 못 줘도 모욕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MBC는 사기꾼 대변인이냐"며 항의 회견을 열었다.

이씨를 취재하려던 채널A 기자에게 이씨 친구라는 '제보자X' 지모씨가 접근했다. 여권 지지자인 그는 기자에게 "검찰과 교감이 되느냐"부터 물었다. 기자가 검사와의 친분을 과시하자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검·언 유착'이라며 MBC에 제보했다. 사기·횡령 전과 5범인 지씨는 현재 출국금지 상태에서 다른 사기 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의 전력을 문제 삼자 친여 매체들은 "왜 메신저를 공격하느냐"고 했다.

정작 이 매체들은 5년 전 끝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9억원 수수 사건 증인들을 '사기꾼' '약쟁이'라며 공격했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고(故)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자, 검찰은 한씨의 감방 동료 두 명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한씨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말한 걸 들었다. 진술 번복 계획도 함께 논의했다"고 증언했고, 재판부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친여 매체들은 "사기 전과자와 마약 사범 말을 어떻게 믿느냐"며 이들이 검찰에 매수돼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씨의 다른 감방 동료를 인터뷰했다. 그 역시 각종 사기·횡령 전과로 징역 20년 이상 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인 자다. 그는 "'사기꾼'과 '약쟁이'는 검찰에 매수됐고, 나는 검찰 거래에 응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양심선언'을 했다. 사기꾼들의 엇갈리는 말을 놓고 진실을 가려야 하는 형국이다. 무고죄와 보이스피싱 전과자인 '약쟁이'도 옥중 인터뷰에 나서 "사실은 검찰이 허위 증언을 시켰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은 "모두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며 반발했다.

이들 말대로 검찰이 허위 증언을 시켰다면 큰 문제다. 여권도 이를 빌미로 한 전 총리 유죄판결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은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한 전 총리 무죄를 주장하려면, 사기 전과자들 말 대신 한씨가 준 1억원짜리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의 아파트 전세금으로 쓰인 기록 등 결정적인 유죄 증거를 반박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친여 매체들은 정권과 불편한 관계인 '윤석열 검찰'을 흔들기 위해 교도소 취재 경쟁에 나선 느낌이다. '제보자X'를 인터뷰한 어느 매체는 사기 피해자는 생각 않고 그를 "정의롭다"고까지 했다. 이들이 사기 전과자의 현란한 말들을 여과 없이 전달하면 집권 세력이 동조한다. 사기꾼들 전성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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