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준의 Deep Read >與 과거사 뒤집기는 보수의 정당성 뿌리뽑기.. 역사의 정치적 남용

기자 2020. 6. 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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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정권의 잇단 과거사 뒤집기

광주·KAL사건 무한반복적 재조사로 역사교체 시도… 한명숙 재심·친일유공자 ‘파묘’주장까지

총선 압승 발판 보수 낙인찍기와 정치적 반대자 악마화…‘다수의 폭정’으로 보수세력 고립化 추진

총선에서 압도적 의석을 얻은 여권과 집권세력이 잇달아 과거 사건들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1980)에 대한 확대 조사 방침, KAL기 폭파 사건(1987) 재조명 등에 이어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재심 요구와 현충원 친일 행적 유공자 대상 ‘파묘법’ 제정도 거론되고 있다. 집권세력의 잇단 과거사 뒤집기 시도, 뭘 노리는 걸까.

◇집권세력의 착시

지난 4·15총선 압승 이후 벌어지는 이런 장면들은 데자뷔를 불러일으킨다. 탄핵의 후폭풍과 촛불 민심 속에 권좌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국민통합을 철석같이 약속했다. 하지만 그 뒤 국정과제 1호는 적폐청산이었고, 모든 이슈는 전 정권 비리 털기의 블랙홀 속에 빠졌다. 문제는 적폐청산이라는 코드 안에 들어 있는 정치적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에는 대한민국 구(舊)주류·보수 세력을 친일과 독재, 독점과 부패의 부정적 이미지로 덧칠해 정치적 정당성을 뿌리부터 없애고 다수 국민으로부터 고립시키겠다는 목표가 자리한다.

이 전략은 절반은 성공했다. 구주류 세력에 타격을 주고 보수야당을 지리멸렬하게 만든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상대를 제거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진영 간 적대감은 커졌고, 사회분열이 가속화해 국민통합은 빈말이 됐다. 조국 사태로 적폐청산의 효과도 반감됐다.

총선 압승은 국민이 지난 3년의 실정을 포함한 모든 국정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실 여권이 의석은 많이 얻었지만, 국민 지지를 그만큼 압도적으로 얻은 선거는 아니었다. 여야의 지역구 득표 차는 8%포인트에 불과했다. 비례정당 투표에서는 야당이 1당을 했고, 범여권과 범야권 표를 합산해도 차이가 별로 없다. 소선거구제의 특성으로 의석수가 득표수에 비해 그 격차가 훨씬 벌어진 것인데, 이를 지난 3년 국정에 대해 국민이 흡족해한다거나 절대 의석으로 전횡하도록 권한을 준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총선 민의는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전력을 다하라는 차원에서 집권세력에 힘을 실어준 것이지 ‘적폐청산 시즌2’를 보자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주류교체와 역사교체

이번 총선을 통해 전문가들은 한국의 정치지형이 바뀌었고 주류세력의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수 쪽으로 기울어졌던 정치의식의 운동장이 진보 쪽으로 바뀌어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주류세력 교체의 방편으로 역사교체를 활용하려는 건 여권과 이른바 진보 진영의 오랜 전략이었다. 친일과 독재를 연결하고, 이를 또 재벌과 특권 구조에 연결해 주류세력의 역사적 정당성을 허무는 작업은 끈질기게 이뤄졌다. 이 일에 여당과 정치적 시민단체와 학술단체, 전교조 등의 긴밀한 협력 시스템이 작동했다. 그 차원에서 교과서를 바꾸고 역사교육을 바꾸는 것과 더불어 ‘토착 왜구’ 등 정치적 담론 시장에서 기존 주류세력에 대한 집요한 낙인 찍기를 시도했다.

집권 3년 동안 과거사 이슈는 문재인 정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여기서 ‘역사의 정치적 남용’(political abuse of history)이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물론 과거사 가운데 왜곡되거나 가려진 부분, 억울한 피해자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히고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권력이 관여해 피해를 준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밝힐 공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고귀한 의무를 정치적 이익과 엮어 활용하려 할 때 ‘역사의 정치적 남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정치적 남용

무엇보다 우려되는 부작용은 ‘반복적 원점 회귀’다. KAL 858기 폭파사건 재조사 문제가 그렇다. 1987년 11월 발생한 KAL기 폭파사건은 수차례 수사와 조사를 거쳤다. 혹시라도 권위주의 정권의 공작에 의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제기된 이 사안은 여러 번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정밀 조사를 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국정원 진실조사위원회가 면밀하게 조사했지만,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이 사안을 또 조사해야 한다면 권력의 정치적 선입견에 맞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무한반복적 재조사는 응당 무리함과 과도함을 부른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조사와 사법적 단죄, 그리고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은 김영삼 정권에서 이뤄졌고 진상 규명과 정당한 예우를 하려는 노력은 여야를 넘어 지속돼 왔다. 일부 인사의 5·18 폄하가 빌미가 돼 그동안 이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정립하려는 합리적 보수세력의 정당한 노력마저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야당 스스로 깊은 반성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5·18을 폄훼하면 형사처벌하겠다는 건 과도한 일이다. 옳은 의견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준칙이다. 부적절한 언사에 대해서는 여론의 준엄한 비판을 받게 하는 것이 순리이지 입을 틀어막겠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건드리는 과도한 일이다.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인사 대상 파묘법을 제정하겠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과도하다.

과거 사건의 재조명과 재조사는 사법적 단죄와 연결돼 있다. 높은 수준의 사법부 독립성은 ‘역사의 정치적 남용’을 막는 보루이다. 그런데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민을 중심에 둔 좋은 재판을 실현하자”고 발언했다. 이는 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이 아니라 여론재판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마침 여권에서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재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 이런 발언이 나온 것도 공교롭다. 행정과 입법을 장악한 정권이 사법부를 더욱 종속시켜 과거 판례까지 뒤집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집권세력의 이중 잣대도 문제다. 여권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야당 흠집 내기에는 집요하지만, 자기 진영의 흑역사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대법원에서 진보 성향 대법관까지 만장일치로 판결한 한명숙 사건은 다시 들추면서 위안부 할머니를 수십 년간 정치적·사적으로 이용한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은 감싸는 태도가 그렇다. 우리 편에 대한 관용과 상대에 대한 불관용이 어느덧 집권세력의 관행이 돼 가고 있다.

◇과거냐 미래냐

‘역사의 정치적 남용’을 경계하는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역사나 진리를 독점하려는 발상은 알렉시스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한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발생의 근저에는 정치적 반대자를 악마화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런 사고 아래에서는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기도, 국민통합을 이루기도 어렵다.

국정은 의제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딴판이 된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가 새로운 국정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이 전환기적 시점에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는 데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다면 국정 핵심 이슈는 응당 과거가 아니라 미래여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과거에 매달리는 협소한 정치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국 정치의 긍정적 변화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 세줄 요약

집권세력의 착시 : 총선 압승은 국민이 3년의 실정을 포함한 모든 국정을 정당화해준 것이라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불러. 총선 민의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집권세력에 힘을 실어준 것인데 여권은 과거사 뒤집기를 통해 ‘적폐청산 시즌2’로 나아가는 중.

과거사 뒤집기의 목적 : 집권 3년 기간에 과거사 이슈는 문재인 정권의 트레이드마크였음. 집권세력은 ‘토착 왜구론’ 등 정치적 담론으로 구 주류세력에 대한 집요한 낙인 찍기와 국민적 고립화를 시도함. 여권은 적폐청산 연장에서 역사교체 작업을 벌이고 있어.

역사의 정치적 남용 : 5·18민주화운동과 KAL기 폭파 사건 재조사, 한명숙 사건 재심 요구와 현충원 친일 행적 유공자 대상 ‘파묘법’ 제정 등이 이런 맥락에서 진행됨. 사법부의 정치화 등을 통해 집권세력에 의한 ‘역사의 정치적 남용’이 일어나는 것.

■ 용어 설명

‘국정과제 1호’와 관련, 여권은 한때 일자리 창출, 검찰개혁 등을 내걸었음. 하지만 대통령 산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017년 7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적폐청산’을 1호 국정과제라고 공식화함.

‘주류세력 교체’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전 대담집에서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주류세력 교체”라고 하면서 쓰이기 시작함. 역사교체, 시대교체, 경제교체 등의 의미를 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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