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언택트라는 환상 / 신진욱

2020. 6. 2. 16: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코로나라는 악령이 어느 날 인간의 몸에 잠입하여 그와 ‘콘택트’하는 모든 인간의 몸으로 퍼져갔다. 무서워진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언택트’라는 신에게 간구했다. 그러나 곧 인간들은 악령의 강한 힘에 절망에 빠졌다. 언택트의 신은 무력했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력은, 매일매일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과 ‘콘택트’해야 하는 인간의 노동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악령을 이길 힘은 콘택트의 세계에 있었던 것이다.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비대면 생활방식이 답이라는 생각으로 온라인 주문만 믿었는데 이제 그것도 맘 놓고 못 하겠다고들 한다. 그럼 대안은 대형마트일까? 아니면 재래시장? 그러나 어디서 구매하든, 모든 상품은 재료 생산자, 가공·완성 노동자, 물류센터와 운송·배달 노동자를 거친다. ‘언택트’의 시대에도 이 사회는 ‘콘택트’하며 노동하는 인간 없이 작동할 수 없다. 세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첫번째 예가 ‘근로시간 특례’ 업종이다. 공중의 편익을 위해 법이 정한 한도를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특별히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업종으로, 보건업, 노선버스를 제외한 육상운송업, 수상·항공운송업, 기타 운송서비스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보건의료노동자, 택배노동자, 화물차 운전사 등이 그 종사자인데, 코로나 사태로 이들의 근로시간과 강도가 과도해져서 극도의 과로와 스트레스, 감염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또 다른 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 이들은 노동시간과 방법이 사용자의 특수한 지시·감독에 구속되지 않는 등 자영인의 외양을 띠지만 사용자와의 계약에 종속되어 열악한 환경에서 고강도 노동을 한다. 배달노동자, 대리운전기사,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방문판매원 등 다양한 직종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 중 일부는 비대면 시대에 실직의 위험에 처하지만, 배달노동자 등 다른 경우는 그 역할과 노동량이 더 커진다.

마지막 예가 그동안 여러 번 집단감염이 발생한 ‘물류센터’다. 완성 상품이 거쳐 가는 이곳은, 디지털 과학기술이 선도한다는 신세계에서도 물질적 상품과 육체적 노동이 여전히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여기서 회사 로고도, 조끼도 없는 단기 사원, 부품처럼 사용된다는 일일계약 알바직,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겐 일터가 곧 코로나다.

이처럼 디지털 비대면에서 답을 찾는 이 시대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필수적인 대면 노동으로 돌아가고 있고 그 사슬의 맨 끝에서 당신은 하나의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한다. 그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장시간, 고강도, 저임금이라는 노동착취 3종 세트의 고통 속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 일정한 소득, 인간적인 노동환경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감염의 불안에서 자유로운 시간은 오지 않는다.

생활방역 지침은 피곤하면 출근하지 않고 쉬기를 권하고 있다. 정부는 산업현장에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 유지 등 방역지침을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않고서는 방역은 성공할 수 없다. 명백한 위험에 대비한 산업안전지침도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비한 방역지침이 지켜질 리 만무하다. 기침이 나고 미열, 인후통이 있더라도 쉴 수가 없다. 감염은 잠재적인 위험이지만, 실직과 배고픔, 밀린 월세, 신용불량은 즉각적이고 확실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대단한 이념이나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자본주의 가치사슬을 실제 노동으로 이어주고 있는 인간사슬의 모든 이가 살아남을 수 있게 보살펴야 한다. 그 인간사슬의 어느 한 지점에서 발생하는 감염은 다음 사슬, 또 그다음 사슬로 이어지는 위험사슬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의 세계로 연결된 모든 타인의 생존이 곧 나의 생존의 조건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위험한 미지의 타인과 연결되지 않으려는 신경증 덕분에 우리는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깨닫고 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글로벌 가치사슬을 디지털화하고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는 유의 비즈니스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이제껏 언택트해왔던 인간 소외의 현장에, 이제껏 서로의 삶을 알지 못했던 타인의 삶에 ‘콘택트’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철학과 가치, 근본원리에 대한 성찰의 문제인 것이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