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100년 걸린 해저케이블, 한국 10년만에 따라잡은 비결

박소연 기자 입력 2020. 6.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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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下)

[편집자주] 해저케이블은 '전선의 꽃'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꽃은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전세계 7조원에 달하는 해저케이블 시장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일본, 한국 등 4개국 업체가 '빅4'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2008년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사업을 수주했다. 바닷 속 극한 환경을 뚫고 세계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사업. 이 유망 사업에서 한국이 어떻게 힘을 길렀는지 집중 점검해본다.

해저케이블 삼국지…앞서가던 日, 따라잡은 韓, 거센 추격 中
"한국전력 사업에 중국 기업 참여를 허락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난데없이 중국 기업 입찰금지 청원이 올라왔다. 한전이 입찰공고를 낼 예정이었던 완도-제주 해저케이블 건설사업에 중국 업체도 참여할 것이란 얘기가 돌면서 국내 전선업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중국은 WTO(세계무역기구) GPA(정부조달협정)에 가입돼 있지 않아 한국 공공조달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한전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중국 업체들을 입찰에 참여시켜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민간의 우려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결국 38만명이 동의한 이 청원에 청와대는 "(중국 기업은) 해저케이블 경쟁입찰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답하며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전력 전선 중에서도 가장 고난도이자 고부가가치라는 해저케이블 사업에서 중국의 급성장한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아시아에서 해저케이블의 경쟁은 한·일 양강구도가 아닌 한·중·일이 새롭게 삼국지를 쓰는 셈이다.

◆내수에 가로막힌 日 vs 공격적 해외진출한 韓

2005년 전후까지도 아시아에서 해저케이블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해저케이블 시장에 뛰어들어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술을 갈고닦았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 규모는 미미해 일본은 사실상 사업 철수 수순을 밟는다. 이 시기 해저케이블 수요는 주로 유럽에서 발생했는데, 지리상 일본은 유럽과 너무 멀어 높은 운송비 탓에 유럽 업체들과 경쟁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 해저케이블 사업은 20년 넘게 큰 투자 없이 내수시장 중심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2005년 이후부터 전 세계 해저케이블 수요가 크게 살아난다. LS전선은 이때 시장 성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2008년 한국 최초로 해저케이블 공장을 착공한다.이후 10년 만에 해저케이블의 세계 강자로 발돋움한다.

LS전선 관계자는 "해저케이블의 기본이 되는 초고압 기술은 이미 30년간 축적돼 있었다"며 "그런데도 이 시장에 더 빨리 진입하지 않았던 것은 글로벌 시장수요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이 크게 열리는 장면을 LS전선은 놓치지 않았다. 최소한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해저케이블 발주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과감한 투자가 이어졌다.

특히 일본이 자체 내수시장에 집중한 것과 달리 한국은 해외시장 공략에 적극 나섰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기도 했지만 첨단 기술로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전략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왔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해저뿐 아니라 전체 전력사업을 내수 중심으로 할 수 있었다"며 "섬나라여서 해저케이블 시장이 워낙 크기도 했고, 기술력도 뒷받침됐기 때문에 굳이 해외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해외로 나가 경쟁하려 하지 않으니 업체들의 생산량은 정체됐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최근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급증으로 전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이 커지자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스미토모 같은 기업들보다 해외 시장에서의 노하우는 한국이 한 수 위라는 평가다.

자국보호주의 업고 성장하는 中

일본보다는 급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중국은 지난 3~4년 간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눈부신 성장을 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아직 기술력이 부족해 100㎞ 이상 장거리 케이블 생산은 못하지만 중국 정부 차원의 기술 투자와 엄청난 내수 시장으로 기술 추격은 시간문제라는 평이다.

실제 중국 해저케이블 업체들은 정부조달협정(GPA)에 가입하지 않고 자국 해저케이블 프로젝트에는 오직 자국산 제품만 쓰며 기술 노하우를 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중국 업체는 명함도 못 내밀었는데 이제 ZTT 같은 업체가 20만볼트 해저케이블을 생산하니 격세지감"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해저케이블을 국가 차원의 미래사업으로 육성한다. 이미 설비투자 금액은 한국은 물론 유럽 업체들까지 뛰어넘었다. 중국 업체들의 해외수주 경험이 거의 없지만 최근 실적을 쌓기 위해 해외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저가공세를 편다면 한국과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글로벌 해저케이블 사업은 한·중·일 3국의 격전지로 돌변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그린뉴딜 사업에 해저케이블도 포함되는데 자칫 이 사업들이 해외 기업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며 "전 세계 전선업계가 자국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추세인 만큼 한국 정부도 자국 기업 보호와 해외 진출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해저케이블 불모지' LS전선의 '글로벌 톱4' 10년 비결
통신·전력망 관련 업계에서 해저케이블은 '전선의 꽃'으로 불린다. 예측 불가능한 바다 속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초고압 안전성 등 첨단 기술력을 집약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해저케이블 기술은 유럽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넥상스(프랑스)나 프리즈미안(이탈리아), ABB(스웨덴) 같은 업체들이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의 80% 이상을 싹쓸이했다. 제주-해남 간 101㎞ 구간의 180kV(킬로볼트)급 초고압 해저케이블도 프랑스 넥상스가 설치했다.

2008년까지만 해도 한국 전선업계는 유럽 업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안방을 내줘야 하는 신세였다. 기술력은 물론 보수능력도 부족해 국내 공사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발주 사업인데도 토종 전선업체들은 입찰조차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그 정도로 한국은 해저케이블 사업의 후진국이었다"고 말했다.

해저케이블 불모지 韓 10년 만에 글로벌 'TOP4'로 우뚝

그러나 이런 상황의 대반전은 2009년에 찾아왔다. 당시 LS전선이 3300억 규모의 진도-제주 122㎞짜리 해저케이블 사업을 따낸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해저케이블 '국산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 같은 한국의 성장은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다. ABB 같은 내로라하는 유럽 업체와 기술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일본 업체까지 참여한 입찰에서 기술과 가격, 성능 보증 평가를 모두 통과한 업체는 한국 LS전선이 유일했다. 이후 사업 노하우를 쌓은 LS전선은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의 판도를 뒤바꿨다. 넥상스와 프리즈미안, 스미토모, LS전선이 나란히 어깨를 겨루는 '4파전' 체제를 만든 것이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해저케이블 '빅4'라는 사실은 이제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유럽 업체들의 100년 해저케이블 역사를 단 10년 만에 따라잡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강력한 내구성을 갖춘 제품 생산에 집중한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해저케이블은 한 번 설치하면 최소 30년 이상 사용해야 한다. 이 사용연한을 충족시키는 업체는 전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한국은 이 내구성에 누구보다 집중했다.

100km 이상 장거리 생산능력을 키운 것도 한국의 빠른 성장 비결이다. 5G(5세대 통신) 인프라 구축 같은 국가 간 통신망 연결은 100㎞가 넘는 해저케이블을 생산·설치할 수 있어야 한다. LS전선은 이 부문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10㎞짜리 단거리 해저케이블로는 유럽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중국 업체에게 쉽게 따라잡힌다는 선제적 판단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100㎞ 이상 장거리 해저케이블을 생산하는 업체는 LS전선이 유일하다. LS전선은 최근 강원도 동해 해저케이블 2공장 건설을 마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LS전선 관계자는 "2공장 가동으로 생산능력이 종전보다 2.5배 늘어났다"며 "한 번에 수 십 ㎞의 해저케이블도 생산 가능하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 최초로 美 해저케이블 수출

2011년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에 해저케이블을 수출한 것도 한국 LS전선의 성과다. 뉴욕주 동부 롱아일랜드와 캡트리 아일랜드간 전력공급 사업을 LS전선이 맡았다.

당시 한국 업체로는 이례적으로 공사부터 준공시험까지 일괄 수주했다. 해저케이블 사업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거둔 굵직한 성과다.

미국에서 시공능력을 인정받은 LS전선은 해저케이블의 원조인 유럽도 뚫었다. 지난달에는 네덜란드 해상풍력단지 2곳(총 210㎞)을 연결하는 1342억원 규모 신규 사업도 따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해저케이블 시장은 이 기술의 원조답게 까다로운 품질 심사와 엄격한 공사관리로 정평이 나 있다"며 "납기일과 운송, 납품 실적 측면에서 쟁쟁한 유럽 업체들을 제치고 한국업체가 사업을 수주한 것은 해저케이블 시공능력을 유럽조차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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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이정혁 기자 utopi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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