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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베트남판 동북공정'에 맞장구.. 넋나간 문화재청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입력 2020.06.03. 05:01 수정 2020.06.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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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옥에오 문화 특별전'
전남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리는 ‘베트남 옥에오 전’ 포스터. 아래는 1~6세기 번영한 동남아 고대 왕국 부남 영역도.

전남 목포의 국립 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에선 지난 4월부터 '베트남 옥에오 문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옥에오(Oc Eo)는 고대 동남아시아 왕국 부남(扶南·푸난)의 국제무역항. 로마와 페르시아, 인도, 중국, 한반도를 잇는 해상 교역의 중심지였다. 특별전에는 로마와 부남의 동전, 사람 얼굴을 새긴 항아리, 형형색색 유리구슬과 목걸이, 도장 등 베트남에서 들여온 문화유산 202건, 1만2715점이 나왔다.

'일본서기' 흠명 4년(543년)엔 백제 성왕(재위 523~554)이 부남의 재물과 노예를 일본에 보내줬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권오영 서울대 교수는 "백제 유적에서 종종 발견되는 진주·수정·호박 등을 재료로 한 장신구류는 동남아산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유력한 후보로 부남을 거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500년 전 지금의 베트남 땅 남쪽 끝에 있던 고대 도시와 백제가 교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사의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다.

세계 학계는 "부남은 캄보디아史"

문제는 옥에오가 속한 부남이 오늘날 베트남이 아니라 캄보디아에 속하는 고대국가라는 점이다. 1~6세기 번영한 부남은 오늘날의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베트남 남부, 태국, 말레이반도까지 영역을 넓혔다. 옥에오 유적은 1943년 프랑스 고고학자의 발굴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50여 곳이 소개됐다. 동남아시아사 권위자인 유인선(79) 전 서울대 교수는 "옥에오는 현재 베트남 영토이지만, 캄보디아 초창기 부남이란 국가의 항구였기 때문에 '베트남 옥에오 특별전'이라고 쓰면 안 된다"며 "전시 명칭은 '옥에오 문화전'으로 하고 현재 이 지역은 베트남 영토에 속한다는 설명을 다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옥에오 지방이 베트남 영토에 편입된 것은 18세기 이후이기 때문에 옥에오를 베트남사(史)에 속하는 것처럼 쓰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10세기에 들어서면서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중국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했다. 세계적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온라인판도 부남을 캄보디아 초기 역사로 다룬다. 유 교수는 "요즘 나오는 베트남 역사책을 보면 고대 옥에오를 자기 역사인 듯 쓰는 경우가 많다"면서 "베트남을 제외한 세계 학계에선 부남을 캄보디아 역사로 소개한다"고 했다. 베트남은 옥에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리기 위해 추진 중이다.

전시 도록 '옥에오는 베트남 고대 문화'

이번 전시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서울시 산하 한성백제박물관, 재단법인 대한문화재연구원과 베트남 옥에오 문화유적관리위원회가 함께 주최했다. 서울 풍납동 한성백제박물관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같은 전시회를 열었고,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전시를 이어받았다. 전시회 명칭을 '베트남 옥에오 문화'로 정한 데는 베트남 측의 강한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옥에오 문화유적관리위원회는 전시 도록에 '옥에오 문화는 베트남의 3대 고대 문화 중 하나로 베트남의 문화 정체성 보전에 큰 가치가 있는 유적과 유물을 남겨주었다'고 밝혔다. 옥에오가 베트남 역사에 속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옥에오 특별전 영문 명칭도 'Oc Eo: Culture of Vietnam'이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베트남에서 발굴한 옥에오 유물을 전시하는 행사인 데다 유물을 제공한 베트남 입장을 존중하는 뜻에서 전시 명칭을 그렇게 달았다"고 설명한다. 베트남 주장은 부여·고구려·발해가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다는 이유로 자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 공정과 같은 논리다. 우리 정부 기관이 "옥에오는 베트남 역사"라며 '베트남판 동북 공정'에 손들어준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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