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이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 이유

입력 2020. 6. 3. 05:06 수정 2020. 6. 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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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을 말하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
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운동의 분열 기다려온 이들 관심은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 아닌 한미일 동맹
지난달27일 낮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26일 별세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추모하는 꽃과 영정이 놓여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일제 말기에 자행된 전쟁 범죄 중에서도 ‘위안소’ 운영은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난징 대학살이나 마닐라 대학살, 미국이나 영국 출신의 연합군 포로 학대 등이 대개 하나의 특정 국가나 몇 국가의 시민을 상대로 한 행위였다면, 식민지 내지 피점령 지대에서 저질러진 강제적 성착취 피해자들은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다. 절반 정도는 조선인이라고 보는 게 통설이지만 그 밖에 중국인에서 네덜란드인과 오스트레일리아인까지, 그야말로 만국의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행각이었다. 전시 성폭력 자체는 대부분의 전쟁에 수반되었지만, 근대적 군대가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감금형 성착취는 아무래도 일본군 이외에는 근현대사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만큼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는 특별하다.

동시에 ‘경제 대국’ 일본의 세계적 위상은 1990년대 이후 ‘위안부 문제’의 국제적 부각으로 ‘위축’됐다. ‘위안부 문제’가 세계 보편적인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본을 지금도 안보·군사 차원에서 일종의 보호령처럼 ‘관리’하고 있는 미국의 하원마저도, 2007년에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을 정도였다. 일본은 여전히 유럽의 여론을 대단히 중시하는데, 유럽연합 의회도 같은 2007년에 비슷한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 유럽에서도 ‘전시 일본’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성노예 문제’가 떠오를 정도로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 이후 젠더 감수성의 고양이라는 국제적 대세를 타고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의 집권 우익으로서는 아주 크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일본의 집권 우익을 이 정도로 긴장시킨 여러 운동단체 중에서 정대협·정의연의 국제적 활약은 가장 두드러졌다. 운동 초기에 정대협 활동가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종종 ‘우리 민족의 순결한 딸’로, 민족주의적 방식으로 재현시키려 했을 때, 일본의 집권층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미 주류가 되어버린 일부 ‘페미니스트’ 학자들을 포함하여 제도권 지식인들을 동원해 여성들의 주체성을 ‘민족’에 종속시키고 ‘순결’을 강조하는 한국 민족주의를 적당히 비판하면 될 일이었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운동의 치명적 약점을 정확히 파헤쳐 공략하는 대응 전략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한국 운동가들의 담론은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들은 가부장적 어감이 강한 ‘민족의 딸’이 아닌 보편적 ‘여성’의 인권에 초점을 맞추었고 나아가 모든 일본군 피해자와의 국제 연대를 모색했다. 더 나아가서는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의 성폭력 문제 등 자국의 범죄를 문제로 삼을 만큼 탈민족주의적·보편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이 운동은 ‘위안부 문제’를 지금처럼 세계의 주요 인권 문제로 국제적으로 각인시키고 일본 우익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한국 민족주의’를 비판하기는 매우 쉽지만, 보편주의적·인권적 문제 제기에 대한 대응 전략을 그들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 각처 소녀상 건립을 집요하게 방해하면서 그저 때를 기다렸다. 이번처럼 운동의 내부 분열이 그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는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결국 그 순간이 왔다. 물론 이 분열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운동의 지도자들이 져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부터 기다려야 하지만, ‘위안부’ 피해 당사자와의 동등한 소통의 부족부터 운동 사회 내에서의 패권적 태도, 조직의 미숙한 운영까지 이미 명확히 드러난 문제들이다. 앞으로는 이 문제들을 화두 삼아 시민단체들이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투명한 운동의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과연 시민운동 지도자들의 정치권 입문이 운동에 도움이 될지도 집중적 성찰의 대상에 올라야 할 것이다. 운동의 명망가 한 사람이 제도권 정치인이 되는 순간, 운동 전체가 정쟁에 휘말릴 위험성이 생긴다. 차라리 외부에서 정치권을 압박해서 피해 당사자들의 인권 회복을 요구하는 것이 더 나은 운동 전략이었을 것이다.

운동가들은 이렇게 공격을 받을 만한 약점들을 드러냈지만, 지금의 공격들은 결코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정의연을 마녀사냥 하듯 공격하는 보수 언론들은 일본의 집권 우익과 이념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여러모로 가까운 만큼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그들도, 그들을 은근히 지원하는 일본 보수 언론들도 원하는 것은 눈엣가시였던 운동세력들이 제거되어 ‘과거 문제’에 대한 ‘부담’ 없이 중국이나 북한을 겨냥하는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는 것이다. 마녀사냥 주도 세력의 진정한 의도가 여성 인권이나 평화와 먼 만큼, 지금 집중포화를 당하는 운동세력들이 내부 문제를 안고 있다 해도 그들을 응원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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