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쿠바 친구들
[경향신문]
클럽 하면 젊은이들 춤추고 노는 곳으로만 안다. 사람이 모이면 그게 자동으로 클럽 활동. 더운 날 누군 죽어라 밥벌이 땜에 곤죽이 되어 사는데 핑핑 놀고먹는 치들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부아가 난다고 ‘부에나’인가. 하지만 인간이 줄곧 침울하게 살 필요는 없다. 춤도 추고 술도 마시며 사는 게 인생이다. 이른 더위에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생각나서 음반을 틀어놓고 편지를 쓰고 있는데, 엉덩이가 나도 모르게 들썩거리게 된다.
헤밍웨이는 럼과 라임과 설탕을 갈아 녹인 칵테일 다이키리, 톡 쏘는 향의 애플민트를 섞은 칵테일 모히토를 매일 야채주스를 마시듯 즐겨 했다. 선선한 아침바람을 쐬며 <노인과 바다>를 집필하고, 저녁이면 해변 어느 쿠반 재즈밴드가 있는 클럽에서 술친구들을 찾았다. 어부들 눈에 하릴없는 백수로 보일 이 영감에 대해선 부아가 날 일이 없었던 게, 술값 계산을 종종 해주는 골든벨의 센스. 거기다 음악가들에게 팁을 쥐여주고는 했으며 자택 파티에 초대했다.
쿠바엔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노예상인에 의해 집합되었다. 돼지우리 쿨리에 싣고 왔다고 해서 이들을 ‘쿨리’라 부른다. 아프리카 노예들만 배에서 죽어나간 게 아니었다. 중국인 노예들도 아바나에 도착하면 알몸으로 신체 검진을 받았다. 여기엔 우리 한국인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흑인 노예에 이어 차별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노래와 춤으로 견디며 지내다가 혁명이 터지자 흑인과 쿨리와 혼혈인들은 어깨를 겯고 동참했다.
쿠바엔 단골로 드나들던 술집, 음반사, 연락처를 나눈 친구들이 여럿이다. 내게 살사를 가르쳐준 여인과 최상의 모히토를 마는 비법을 전수해준 친구들. “두 송이의 치자꽃을 당신께 드려요. 해질 녘 한 송이라도 시들면 당신 마음이 떠났음을 꽃들도 눈치챈 거겠지요. 부디 내 특별한 입맞춤의 사랑을 기억해줘요.” 간곡한 사랑의 발라드를 기억한다. 미국에 없는 사랑과 연민이 작고 가난한 섬나라 쿠바엔 있다. 돈과 무력이 지배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임의진 목사·시인 shodan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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