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와 램프증후군[서초동 36.5]

배성준 부장 2020. 6. 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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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많은 사건들이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모여 듭니다. 365일, 법조타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인간의 체온인 36.5도의 온기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심리학 용어 중에 램프 증후군(Lamp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내듯 수시로 걱정을 불러내서 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는 현상 혹은 사서 걱정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두고 벌써부터 걱정의 시선을 거둘 수가 없으니 어쩌면 램프 증후군, 과잉 근심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나 최강욱 열린 민주당 대표 등의 입에서 공수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예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떠오른다.

거악 척결을 내걸었던 중수부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공직자 등을 수사하면서 검찰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큰 변곡점을 맞았고 정권의 의중을 따른 수사로 전직 대통령의 목숨까지 앗아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중수부는 전 정권에 대한 표적수사 의혹은 물론 정치검찰이란 오명과 정권의 시녀라는 비판 속에 결국 2013년 설립 3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역점 과제로 검찰개혁을 추진했다. 공수처 설치에 사활을 걸었으며 패스트트랙까지 거쳐 공수처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현재 초대 공수처장의 인선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조직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범여권은 수사대상을 고르고 줄을 세우고 있다.

여권이 강력하게 수사대상으로 꼽는 것은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다. 증인들이 검찰 강압과 회유로 거짓진술을 했기 때문에 재수사가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방송 인터뷰를 통해 “첫 단추를 잘못 꿴 것과 같다”, “검찰의 잘못된 수사방법을 뿌리 뽑고 제도개혁을 위해 정밀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 사건은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났다. 재심을 위해서는 무죄의 증거가 새롭게 제출되거나 검사들이 직무와 관련해 죄를 범해 유죄가 확정 돼야 한다. 하지만 문제로 지적된 증인들의 진술은 법정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판결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재심은 사실상 어렵다. 사법 안정성을 깨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여권은 회유 의혹을 근거로 재조사 착수와 동시에 공수처 행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진이 어려운 재심보다는 공수처 수사를 통해 사건을 다시 풀어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편 최강욱 대표 등 범여권은 윤석열 총장 장모 사건과 관련해 윤 총장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 총장이나 그 가족은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의 비리수사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수사를 진행하면서 여권의 강한 질타를 받았던 윤 총장이기에 장모 의혹을 앞세워 공수처 수사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표적수사’로 비춰진다.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여당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범여권이 정치적인 색채가 짙은 사건을 골라 의혹만으로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거론하는 것은 자칫 ‘하명수사’로 오해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출범도 하기 전에 수사 대상을 줄 세우고 확정짓고자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권이 공수처를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로 정적 제거의 수단이자 정권유지의 방패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바라기는, 앞서 언급한 램프 증후군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장자(莊子)의 지락(至樂)편을 보면 노나라 임금과 바닷새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바닷새가 노나라 교외에 내려앉았는데 임금이 이 새를 사랑하여 친히 종묘 안으로 데려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 음악을 들려주면서 온갖 고기를 내었으나 새는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술 한 모금 먹지 않다가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노나라 임금의 잘못은 새를 새답게 대하고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돌아보자. 여권이 왜 공수처를 원했던 것인지, 검찰의 무엇을 개혁하려 했던 것인지, 공수처를 공수처 답게 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편적 정서를 가진 국민에게 공수처 설치를 인정받으려면 정권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제라도 깊이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부디 기억해주길 바란다. 거악을 척결하며 많은 공을 세웠던 중수부가 어떤 이유로 사라졌는지를…

배성준 부장(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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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준 부장 spab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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