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갑은 '테슬라'가 아니야..공급 부족이 만든 갑·을 역전

이수기 2020. 6. 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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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삼성SDI가 독일 자동차 업체인 폴크스바겐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물량을 당초 계획했던 20GWh에서 5GWh로 줄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2018년 당시 폴크스바겐이 세계 최초로 전기차 전용 플랫폼(MEB)을 공개하고, 대규모 발주를 냈던 물량 중 일부다. 최초의 플랫폼 방식 대규모 발주였던 만큼 당시엔 이 물량을 따내기 위한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저가수주가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코발트와 리튬, 니켈 등의 가격이 폭등해 공급량을 줄이게 된 것이다. 보도대로라면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물량을 줄이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다른 곳에 더 괜찮은 값을 받고 파는 게 이득이라서다. 이와 관련 삼성SDI 관계자는 4일 "현재까지도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시장상황인건 맞다"며 "다만 고객사와 관련한 언급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테슬라가 지난 10월 24일 7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중국 상하이 공장의 전경. [시나닷컴 마이크로로블로그 테슬라 계정=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테슬라를 비롯한 전기차 업계가 연일 호황이다.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구매를 줄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공해 발생 우려가 적은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커진 탓이다. 이는 주가로도 확인된다. 테슬라의 주가는 882.96 달러(3일 종가 기준)다. 지난해 6월 초 193.6 달러(6월 4일 종가 기준)에 머물던 주가가 한 해 사이 4.6배나 뛰어올랐다.

하지만 전기차 인기의 실제 수혜자는 자동차 업체가 아니라 이들에게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들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있어서다. 배터리 업체와 갑ㆍ을 관계가 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과거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을 거래처로 확보하기 위해 배터리 업체 간 출혈경쟁까지 벌어졌던 상황과는 정반대가 됐다.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실제 자동차 업체들에 배터리의 안정적 공급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전기차를 만들어 팔고 싶어도, 배터리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생산 라인 자체가 멈춰 서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영국 재규어의 전기차 라인(I-Pace)이 배터리 공급 부족으로 생산을 일시 중단했고, 아우디의 전기차 생산라인(e-tron) 역시 공장 가동에 일부 차질을 빚었었다. 포르셰 전기차 역시 미국 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배터리 공급이 여의치 않아 생산 물량이 충분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조사 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오는 2023년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량은 776GWh인 반면, 수요량은 916GWh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배터리 업체들의 입김이 커지면서 독일 폴크스바겐 등 일부 업체들은 배터리 업체에 목을 매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삼성SDI가 공급 물량을 줄이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올해 초 독일에선 LG화학이 폴크스바겐에 배터리 공급을 줄이겠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폴크스바겐 구매 담당자는 한국으로 출장을 와 대부분의 시간을 LG화학을 설득하는데 할애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황이 배터리 업체들에 마냥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일단 중국 업체들의 반격이 거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타격을 입었던 중국 CATL이 테슬라와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중국 BYD도 배터리 사업과 전기차 사업을 분사해 배터리 사업의 외연을 본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테슬라와 관계가 삐걱거리는 일본 파나소닉도 일본 도요타와 손을 잡고 세력 확장에 나섰다.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자동차 업체들 역시 현재와 같은 상황을 바꿔보려 투자를 늘리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최근 11억 유로(약 1조5000억원)를 들여 중국 배터리 업체인 궈쉬안의 지분 26%를 인수했다. 독일 다임러 역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파라시스에 4억8000만 달러(약 5846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테슬라 상하이 공장도 기존 거래처인 파나소닉 대신 LG화학과 중국 CATL에서 배터리를 들여오는 등 공급선 다변화 노력이 한창이다. 아우디도 삼성SDI와 CATL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원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유사 이래로 갑ㆍ을이 바뀌는 식으로 비즈니스 구조가 역전이 되는 일은 드물다”며 “2025년 이후에는 절대 공급량이 현재보다 훨씬 늘어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배터리 업체들이 '갑의 위치'를 유지하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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