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요구에 화답한 정부..전단살포 금지까지는 험로
최고존엄 '김정은' 직접 대변하고 호위하는 김여정
비속어 동원 거친 담화, 핵심은 '전단 살포 금지법'
4시간 뒤 정부 즉각 화답 "법·제도 방안 이미 검토"
입법 과정 논란 클 듯 '표현의 자유' vs '접경주민 안전'
정부, 입법 전까지 경찰동원 전단살포 최대한 차단
탈북단체 6.25 70주년 대북전단 살포 추가 계획
김여정 제1부부장은 “(전단살포가) 방치된다면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며, 개성공단 완전철거,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까지 거론했다.
◇김여정 담화, 노동신문에 게재된 이유는?
김여정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올 들어 세 번째 담화인데, 대내외적으로 여러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의 과거 담화처럼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도 보는 노동신문에 게재했다는 점이 먼저 눈에 띈다.
노동신문은 이날 ‘남조선 당국의 묵인 하에 탈북자 쓰레기들이 반공화국적대행위 감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사태의 엄중성을 경고하는 담화를 발표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라는 제목의 담화 전문을 게재했다.
여기에는 대남 경고의 효과를 배가시키려는 뜻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의 위상과 활약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군 부대 시찰 등 주요 현지지도를 빠짐없이 수행하고 있는 김 제1부부장이 자신의 이름과 직책 명의로 된 대남 담화를 북한 주민들 앞에 보인다는 것은 권력 관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전단 살포에 대해 "문제는 최고 존엄까지 건드리며 핵문제를 걸고 무엄하게 놀아댄 것"이라고 말하는 등 김 위원장을 대변하고 호위하는 모습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2인자 입지 공고화를 위한 행보와 관련된 것으로 관측된다.
탈북주민들이 보낸 대북전단에는 '7기 4차 당 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김여정 담화의 핵심 ‘전단살포금지법’ 요구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각종 비속어를 남발하며 우리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전단 살포를 하는 탈북주민들을 ‘똥개’ ‘인간추물’ 등에 비유하는가 하면, 우리 정부를 겨냥해서도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 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며 비속어가 섞인 비난을 가했다.
김 제1부부장이 이런 거친 표현을 동원해 위협성 경고를 했으나, 사실 담화의 핵심은 “(대북전달 살포를)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는 발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여정이 한미군사훈련, 전략자산의 한반도 반입중단에 이어 이번에 대북 전단 살포중단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추가한 것”이라며,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우리 정부의 돌파 의지와 역량을 계속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홍걸 더불어 민주당 의원도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최측근인 김여정 제1 부부장이 과연 대북전단 정도의 작은 일 때문에 직접 나섰을까요?”라고 반문을 한 뒤, “이번 담화는 협박이라기보다는 우리 측에게 '당신들이 성의를 보여주면 우리도 다시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정부, 김여정 담화에 즉각 화답 ‘제도개선 방안 이미 검토 중’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공개 브리핑을 자청해 “대북전단 살포는 중단되어야한다”며, “법률안 제정 등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방안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가 아니라더라도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부터 이를 법률을 통해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 2조 1항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향후 법률안의 형태에 대해 여상기 대변인은“정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앞으로 국회의 협조를 구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입법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단금지법 입법 과정에 논란도 예상, ‘표현의 자유’ vs ‘접경주민 생명·안전 중요’
일단 이 문제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상충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입법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보수 진영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침해를 우려하면서 위헌 가능성을 제기할 수도 있다.
다만 통일부 당국자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면서, 탈북민이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한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2016년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었다.
당시 재판부는 “대북전단 살포로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급박한 위협에 놓이고, 이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볼 수 있다”면서 전단살포 제지가 적법하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합의가 있는 상황에서 전단 살포 문제를 접경지역의 평화로운 이용이란 측면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라며, “구체적인 입법의 내용과 형식, 시점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이런 방향의 입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탈북단체 대북전단 살포 추가 계획 ‘뜨거운 쟁점’ 예상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입법 추진과 함께 그 전까지는 전단 살포를 최대한 막기 위해 경찰을 동원하는 방식을 활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전단 살포에 나서는 탈북단체들과 최대한 소통해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며, “현장상황을 보면서 경찰 등 유관부서와 협의해 적절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을 적극 동원한다고 해도 탈북단체들이 비공개로 사전예고 없이 전단을 살포하는 경우는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달 31일 문제의 대북전단을 날린 자유북한운동연합은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추가로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이미 밝힌 만큼 앞으로 이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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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학일 기자] kh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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