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우 라이브] 김용희 "내가 죽어야만 이 사건 끝나겠다는 생각 많이 해..퇴직일 날 죽음 각오하기도"

KBS 2020. 6. 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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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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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해봤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철탑 위’
-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일단 지켜보는 수 밖에
-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해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피해 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고 싶어

■ 프로그램명 : KBS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 코너명 : <훅 인터뷰>
■ 방송시간 : 6월 4일 (목) 17:25~17:45 KBS1R FM 97.3 MHz
■ 출연자 :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주진우: 달걀으로 바위치기다. 지는 싸움이다. 삼성한테는 이긴 사람이 없다. 언론에서는 보도조차 꺼렸습니다.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번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마음으로 망루에 올랐습니다. 355일을 고공에서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다가 이제야, 이제야 내려왔습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삼성과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노동자 김용희 씨의 355일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용희 씨.

◆김용희: 반갑습니다.

◇주진우: 선생님 어디세요?

◆김용희: 여기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수많은 해고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해고자 복직투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방에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을 순회방문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지금 구미입니다.

◇주진우: 선생님 지금 병원에 계셔야지 왜 돌아다니고 계세요. 병원에 계셔야지.

◆김용희: 우선 지금 하루하루 피 말리는 투쟁들을 하고 있어서 제가 25년, 26년 동안 싸우면서 투쟁하면서 그분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차마 병원에 누워있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해서.

◇주진우: 몸은 괜찮으세요?

◆김용희: 몸이.. 걷는 것에 많이 안 좋죠.

◇주진우: 뭐 소화도 쉽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김용희: 혈액순환이라든가 소화기 계통이 상당히 안 좋습니다.

◇주진우: 그런데 지금 다른 현장을 다니고 계십니다. 선생님 시간을 되돌려서 삼성항공에서 일하시다가 노조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때부터 김용희의 삶은 고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용희: 그렇죠. 참 표현하지 못할 만큼 힘들었죠.

◇주진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김용희: 경남 지역에서 노동조합 설립 준비추진위원장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고단한 제 일생의 삶이 시작된 거죠.

◇주진우: 처음에는 삼성에서 회유하고 그랬죠. 야, 좀 이렇게 해줄 테니까 잘하자, 이렇게.

◆김용희: 참 지나고 보니까 여러 가지 회한스러운 일이 참 많습니다.

◇주진우: 처음에는 삼성에서 회유해서 노조를 막으려다가 김용희 선생님께서 뜻을 굽히지 않으니까 테러도 하고 납치도 했다고 주장하셨어요. 어떤 일이 있었어요?

◆김용희: 전에 회유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좋지 못한 굴곡들이 있었는데 지난번 삼성과 합의를 하면서 과거의 행적까지 그런 잘못까지 자기네들이 인정하고 사과했기 때문에 합의 이후에는 그런 부분을 언급을 안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좀 정리가 된 부분이거든요.

◇주진우: 알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제 이야기 않기로 하셨군요. 알겠습니다. 철탑 위에. 그런데 철탑에 왜 올라가야 해요. 거기 가서 왜 또 단식까지 하셨어야 했어요?

◆김용희: 문재인 대통령이 제 해고 무혐의 소송 2심을 맡았었거든요.

◇주진우: 2심 변호사셨죠.

◆김용희: 그랬죠. 참 결정적인 증거 서류 공증서를 빠뜨리고 패소를 했어요.

◇주진우: 문재인 대통령이요? 문재인 변호사가.

◆김용희: 네, 문재인 변호사가. 성실의무 위반이죠.

◇주진우: 그래요?

◆김용희: 그래서 저도 재판에 출석 한 번 안 했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패소하고 나서 제가 문재인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이 공증서가 빠뜨려서 아마도 패소한 것 같다. 그러니 자기네들 잘못을 인정하고 대법원에 상고 무료로 해주겠다.”고 해서 저는 그때 의심을 했습니다. 어떻게 의뢰인이 출석 한 번 하지 않고 그다음에 공증서류를 빠뜨릴 수가 있을까. 또 조치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직접 그 자료를 공증서를 제출하고 재판부에. 그래서 대법원에서 한 15일 정도 후면 이제 판결이 되는데 회사에서 복직시켜주겠다 해서 러시아로 유배 아닌 유배를 갔죠.

◇주진우: 그래서 재판은 멈추고 러시아로 가셨군요.

◆김용희: 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 저번에 대선 때 광화문에서 만났었어요. “과거에 이런 부분 때문에 제가 아직도 해고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니 당시에 빠뜨렸던 부분들 사과하고 삼성에 좀 하루빨리 이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복직해달라.” 복직시켜달라고 요구했는데 민정수석실에서 딱 한 번 만나고 흐지부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앞에서 119일 단식투쟁을 했죠.

◇주진우: 그러다가 철탑으로 강남역 삼성 앞에 철탑으로 올라가신 건가요?

◆김용희: 네. 제가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국회 뭐 입법, 사법, 행정.

◇주진우: 다 쫓아갔는데.

◆김용희: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고 귀담아주지도 않고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이제 선택한 것이 철탑 위였죠.

◇주진우: 거기 올라가셔서 밥은 어떻게 드셨어요?

◆김용희: 처음에는 제가 단식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밥을 먹게 되면 대소변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거를 저의 프라이버시도 있고 저도 동기들한테 그걸 맡긴다는 게 대단히 마음이 편치 않아서 차라리 그러면 15일 정도 올라가 있으면 삼성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겠나. 강남역 사거리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차량이 많이 다니는 곳인데. 그래서 저는 15일 계획하고 올라갔었거든요.

◇주진우: 그래서 아예 그냥 용변 처리가 불편하니까 아예 안 먹겠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단식하신 거예요?

◆김용희: 그렇죠. 제가 단식을 너무 많이 해서 정말 단식은 두려움의.. 어떻게 보면 대상이었죠.

◇주진우: 그렇죠.

◆김용희: 할 생각을 못했는데 또 막상 닥치니까 이걸 동기들한테, 그들 삶도 참 팍팍할 건데 나까지 또 올라가서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은 55일까지 갔네요. 병원에 이제 쓰러지기 직전에. 왜냐하면 제가 단식 끊을 수밖에 없는 게 계속 진행을 하다가 의식을 잃게 되면 119 소방차에 의해서 병원에 실려갈 거 아니겠어요?

◇주진우: 그럼요.

◆김용희: 그러면 두 번 다시 올라가지 못하죠.

◇주진우: 선생님 말만 들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한 보름 정도 거기에서 버티면 될 줄 알았는데 올라갔을 때 삼성 측에서 문제를 풀자, 어떻게 하자, 해결하자 이런 이야기 안 했습니까?

◆김용희: 전혀 이야기 안 했어요.

◇주진우: 안 했어요? 언제까지 안 했습니까?

◆김용희: 그게 한 11월 11일경까지 갔었나요.

◇주진우: 6월에 올라가셨는데.

◆김용희: 2019년, 그렇습니다.

◇주진우: 그런데 11월까지는 이야기를 안 했어요?

◆김용희: 네. 간간히 협상에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너무나 우리 요구사항과 동떨어진 그런 부분이 나와서 거부를 했었죠.

◇주진우: 저도 저기 강남역 지날 때마다 김용희 선생님 보고 좀 건강하셔야 할 텐데 하고 항상 보고 미안해하고 건강하셨어야 할 텐데 하고 기도하고 그랬습니다.

◆김용희: 감사합니다.

◇주진우: 저기 철탑에 선생님 계시는 동안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날 그 사과는 어떻게 보셨어요?

◆김용희: 참 이게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런 부분들이 다 감안해서 합의에 도달했거든요.

◇주진우: 이런 이야기를 안 하는 걸로.

◆김용희: 상당히 좀 조심스럽네요.

◇주진우: 그러면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오늘 청구됐는데 여기까지 합의하지 않으셨을 거 아니에요. 이 이야기는 조금만 해주세요.

◆김용희: 글쎄요, 아직 법원의 판단이 있기 때문에 청구는 됐지만 지켜보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주진우: 그렇죠. 법원의 관문이 높아요. 선생님, 선생님은 삼성이 선생님의 그동안 25년 동안 선생님의 삶 그리고 선생님의 의지를 이렇게 괴롭힌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잘 합의가 됐으면 한다는 생각이 저는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에 대한 합의는 잘 끝났습니까, 삼성하고?

◆김용희: 네.

◇주진우: 아예 끝났습니까? 잘 끝났습니까?

◆김용희: 네.

◇주진우: 다른 부분이요. 그러면 주변에서 같이 싸우던 노동자들이나 아니면 다른 사업장에도 많은 해고 노동자들이 지금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김용희: 그렇습니다.

◇주진우: 그런데 그분들에는 전향적인 의지나 합의 내용 있습니까?

◆김용희: 아직 그 부분까지는 제가 지금 지역 순회 방문 투쟁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그 내용까지는 전달받지 못하고 있고. 좀 안타깝죠. 삼성의 어떤 해고자가 저 혼자만이 아니고 지금 여러 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머지 해고자 분들도 왜냐하면 그분들이 노조 설립하는 과정에서 노조활동 과정에서 발생된 일이기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도 그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사과하고 노조 관련해서 잘못된 부분 인정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 거기에 대한 어떤 배상이 실천되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한 시라도 빠르게 해고 노동자들이 명예회복 하고 보상이 이루어져서 남은 삶을 가장으로서 또 아빠로서 행복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주진우: 선생님 망루에 올라갔을 때 극단적일 때 거기 가서도 곡기를 끊으셨어요. 하루이틀이 아니라 수십일 동안. 극단적으로 야, 내가 죽어야만 이 사건이 끝나겠구나 이런 생각 많이 했을 텐데.

◆김용희: 여러 번 했죠. 제가 7월 10일이 작년 퇴임일이었거든요. 그래서 1달 전에 올라갔습니다. 생각은 15일이면 끝나겠지라고 올라갔지만 1달이 갈 거라고는 정말 상상조차도 못했습니다.

◇주진우: 355일이 갈 거라고는 또 생각도 못했을 거 아니에요.

◆김용희: 그렇죠. 그런데 막상 작년 퇴임일이 지나니까 역시 삼성은 제가 대항하기에는 맞서기에는 힘들겠다 싶어서 퇴직일 날 죽음을 각오했었죠. 많은 동지들이 연대하는 곳에서 또 깊이 생각해 보니까 통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동지들이 말렸고 제가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거든요.

◇주진우: 어떻게요?

◆김용희: 정년 7월 10일 이후에는 제 삶의 의미를 두지 않겠다. 그래서 많이들 염려하고 걱정하고 남은 동지들이 얼마나 또 내 죽음 뒤에서 많이들 힘들어하고 슬퍼할까. 그래서 또 이를 악물고 버텨보자. 그러다 보니까 355일까지 갔네요.

◇주진우: 선생님 가족들은 잘 계십니까?

◆김용희: 네. 제 아들이 둘이고 집사람이, 아내한테 한없이 미안하죠.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오직 남편의 말만 믿고 따라온다는 것이 그것도 한두 해도 아니고.

◇주진우: 25년이에요, 25년.

◆김용희: 그렇죠. 모든 청춘을 다 바친 거 아닙니까? 그래도 끝이 보인다고 어떤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좀 버틸 건데 그렇지 않습니까? 주변에서들 많이 그런 이야기하죠. 정말 달걀 가지고 바위치기라는 식으로. 아내인들 왜 그런 생각을 안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주진우: 아버님은요? 아버님도 사라졌다면서요? 노조 활동 하면 보지 말자 이렇게 하고 유언장 쓰시고 사라지셨다고. 아버님은 찾으셨어요?

◆김용희: 못 찾았습니다.

◇주진우: 아직이요?

◆김용희: 네.

◇주진우: 선생님, 저기 아무튼 선생님도 그렇고 가족분들한테 정말 잘해야겠네요. 잘하셔야겠네.

◆김용희: 정말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제 아내, 자녀들한테 빚진 거 다 갚겠습니다.

◇주진우: 선생님, 이런 거는 만약이라는 거는 없는데 만약 내 시계를 내 인생의 시계를 돌린다면 언제로 돌아가겠어요?

◆김용희: 우리 아이들이 1학년, 2학년 때 제가 해고됐거든요. 그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주진우: 그러면 노조는 안 만드실 거예요?

◆김용희: 그때 모르겠어요. 그때는 이제 삼성의 어떤 문화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제 다시 돌려준다고 하면 좀 이제 신중하게 그리고 해고자 생활이 아니라 좀 더 잘 대응해서 회사와 원만하게 풀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도 가져봅니다.

◇주진우: 아무튼 25년 청춘이 다 갔네요.

◆김용희: 32살에 해고되어서 제가 62세니까 또 어떻게 보면 제가 창원에서 노조 노동운동 하면서 많은 동지들이 죽었어요. 투신 자살하고. 그래서 제가 어려울 때 그 동지들 생각하면 그래도 또 감사하고 살아있는 것이 축복이죠.

◇주진우: 그 생각에 지금껏 버티셨고 그 생각에 지금도 지방 가시고 돌아다니시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선생님 아무튼 몸이 성할 수가 없어요. 몸이 건강할 수가 없으니까 몸부터 챙기세요.

◆김용희: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진우: 선생님, 김용희 선생님. 이제 앞으로 어떻게 어떤 일 하실 거예요? 앞으로 남은 과제는 뭡니까? 김용희한테, 인간 김용희한테.

◆김용희: 저한테 과제는 여전히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있는 힘 없는 사회적 약자, 민중을 위해서 항상 그 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찾아가면서 같이 하고 싶습니다.

◇주진우: 그전에 가족분들하고 시간도 보내시고요.

◆김용희: 그러겠습니다.

◇주진우: 맛있는 것 좀 같이 드시고요. 선생님 저희가 한번 스튜디오로 모시겠습니다. 일단 건강 챙기시고요.

◆김용희: 네.

◇주진우: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용희: 고맙습니다.

◇주진우: 지금까지 삼성 해고노동자로 25년간 살아오신 김용희 씨와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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