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체인지]③"자기계발이요? 살려고 배웁니다"..직장가에 'IT 열풍'

최동현 기자 2020. 6. 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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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불안에 인강 듣는 직장인 2배 늘었다
직장인 76% "퇴사 불안 느낀다".."비숙련 직종일수록 불안감↑"

[편집자주]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을 몰고 온 코로나19는 일상은 물론 산업 구조까지 뒤바꿔놨다. 이름도 생소했던 '언택트'(비대면)는 단숨에 시장을 주름잡는 화두가 됐고, 오프라인 유통채널은 위기를 맞았다. 사상 최악의 '고용절벽'은 계약직부터 덮쳤다. '무인로봇'이 단순노동을 대체하자 직장인들은 앞다퉈 IT 공부를 시작했다. 정부는 비대면과 디지털을 앞세운 '한국판 뉴딜'을 새 지평으로 선언했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보통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자기계발이요? 먹고 살려고 하는 거죠"

직장인 A씨는 4월부터 회사가 아닌 동네 카페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아침 일찍 자리를 잡은 그는 노트북을 켜고 책을 펼쳤다. 온통 복잡한 함수와 수식으로 가득한 책 이름은 '파이썬'(Python). 프로그래밍 입문서다.

A씨는 잘 나가는 6년차 광고기획자였다. 국내외 현장을 누비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다. 학생 시절부터 전시회와 행사장을 돌며 '광고인'의 꿈을 키웠다는 A씨였지만, 코로나19와 함께 커리어도 완전히 멈췄다. 일감이 뚝 끊기자 회사는 4월 초 문을 닫고 전 직원이 기약 없는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코로나19는 A씨의 인생까지 흔들었다. A씨는 "광고판에 다시 돌아가긴 힘들 것 같다"며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로 진로를 바꾸고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개인의 삶을 흔들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부터 위기감을 느낀 현직자까지 앞다퉈 새로운 직무 공부에 나서고 있다. 5일 직장가에 부는 '재교육 열풍'을 들여다봤다.

◇"코딩 배우러 왔어요"…IT 성인 수강생 두 달 새 121%↑

직장인 평생교육 전문기업 휴넷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월 이후 온라인 학습을 시작한 수강생은 매달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월 22만8000여명 수준이었던 휴넷 온라인 학습자는 4월 50만6000여명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3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52.6%, 전월 대비 188.4% 급증했다. 4월 역시 지난해보다 129%, 전월보다는 117.9% 더 늘었다.

주목할 점은 수강생의 연령대다. 링크드인(LinkedIn)의 국내 유일 파트너사인 멀티캠퍼스가 글로벌 학습 플랫폼 '링크드인러닝'의 수강생 연령을 분석한 결과, 26~30세가 38%로 가장 많았다. 이어 Δ31~35세(33%) Δ46~50세(13%) Δ21~25세(4%)가 뒤를 이었다. 수강생의 70% 이상이 사회 초년생 세대(26~35세)에 집중된 셈이다.

직장인들은 '데이터사이언스', '코딩' 등이나 'PPT', '인포그래픽' 등 직무역량 관련 강좌에 몰렸다. 지난달 11일부터 17일까지 멀티캠퍼스의 상위 인기 강좌는 1, 2위 각각 데이터사이언스, 파이썬이 차지했다. 휴넷의 3월 교육상품 구매 건수도 전월 대비 135.8% 급증했다. 휴넷 관계자는 "포토샵, 인포그래픽, PPT 등 업무능력을 높일 수 있는 실무형 강의가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B씨는 "앞으로 IT부서와 협업할 일이 많아질 것 같아 미리 직무역량을 높이려고 공부를 시작했다"며 "요즘은 디지털을 모르면 업무를 따라가기 벅찬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중견회사에 다니는 C씨는 아예 '빅데이터 전문가'로 직종을 바꿀 생각이다. 그는 "가뜩이나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코딩 같은 '개발자'의 몸값이 뛰고 있었는데, 언택트 추세 때문에 'IT 강세'가 더 빨라질 것"이라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유망한 직종으로 옮겨 전문성을 키울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무급휴직, 해고 등 비자발적 실직을 겪고 '인생 2막'을 찾아 나선 이들도 있다. 의류 판매직에 종사했다는 김모씨(33)는 5년 만에 다시 '수험생'이 됐다. 오전에는 파이썬, 코딩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영어책을 편다. 김씨는 "공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까 고민했지만, 전망이 밝은 직종을 택하기로 했다"며 "전문가 과정까지 밟은 뒤 IT 개발직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직장인 76.4% "퇴사 불안 느껴"…'직업 이동' 빨라진다

직장인들이 '늦깎이 공부'에 나선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다시 책을 펼치게 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코로나19는 일상뿐만 아니라 '고용 시장'까지 뒤흔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47만6000명 감소했다. 외환위기(IMF) 시절이었던 1999년 2월(-65만8000명)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실업자 현황은 '사상 최악' 수준이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통계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는 207만6346만명으로 집계됐다.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규모다. 특히 원치 않게 일자리를 잃은 '비자발적 실직자'는 104만472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70.1%나 늘었다.

실업대란은 고스란히 '고용 불안'으로 번졌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4월28일부터 5월3일까지 직장인 2385명을 대상으로 '퇴사 불안감 현황'을 설문한 결과, 76.4%가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퇴사에 대한 불안감은 여성 77.4%, 남성 74.9%로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높았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 직장인이 78.6%로 가장 높았다. 이어 Δ외국계기업(72.3%) Δ대기업(71.7%) Δ공기업(64.7%)이 뒤를 이었다.

퇴사 불안감을 느끼는 직종은 '판매·서비스업'이 81%로 가장 높았다. 이어 Δ기획·마케팅·홍보직(80.9%) Δ인사·재무·총무직(80.9%) Δ영업직(76.5%) 등이 뒤따랐다.

반면 IT·연구개발직, 전문직, 의료·보건직 등 상대적이 '숙련도'가 높은 직종일수록 퇴사에 대한 불안감이 낮게 나타났다. 직장인과 실업자들이 앞다퉈 IT나 직무역량 공부에 나선 이유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직업 이동'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승호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물류센터 작업자가 로봇으로 대체되거나, 대형마트 계산원 대신 무인결제기가 들어서는 등 '자동화' 현상은 급격히 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냉정하게 말한다면 '사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업종은 제거한다'는 원칙이 미래 직업의 가이드라인"이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단순노동은 빠르게 사라지고, 오직 사람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고숙련 직종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교육업계 관계자도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성인 수강생은 대부분 자기계발이나 취미를 위해 새로운 공부를 했지만, 최근에는 도태되지 않으려는 절박함으로 학원을 찾고 있다"며 "직업 트렌드의 전환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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