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정용 '스타벅스 가방'을 10만원 주고 사는 사람들, 왜?

남정미 기자 2020. 6.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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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주객전도 된 사은품 열풍
스타벅스에서 음료 17잔을 마시면 증정하는 ‘서머 레디 백’. 분홍 색상은 특히 인기가 높다. 리셀 시장에서 다른 제품보다 20~30% 높은 가격에 팔린다. /스타벅스 코리아

"고객님, 가방 이미 다 나갔습니다."

지난 3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 스타벅스 매장 네 곳을 돌았다. 목적은 '서머 레디백'을 구하는 것. 매장 세 곳은 "오늘은 아예 가방이 안 들어왔다"고 했다. 하필 맨 마지막에 방문한 매장에서 "오늘 가방 16개가 들어오긴 했는데, 9시가 되기 전 이미 동났다"는 답을 들었다. 매장 직원은 "물건이 언제 들어올지는 우리도 모른다"며 "개점 시간에 맞춰 매장을 자주 들르는 게 가장 확률이 높다"고 했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웬 가방?' 하고 묻는다면, 당신의 '스벅 덕력(力)'은 아직 약한 편.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면, 이미 '서머 레디백 대란'에 함께 참여하는 전우일 확률이 높다.

전 세계 스타벅스 중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하는 이벤트가 있다. 크리스마스와 여름 시즌에 음료 17잔을 마시면 증정품을 주는 e-프리퀀시 이벤트다. '서머 레디백'이 그 중 하나. 미국 본사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자체 디자인팀을 두고 있는 곳도 한국뿐이다.

그만큼 한국인의 증정품 사랑이 유별나다는 뜻일까. 디지털 문화심리학자인 건국대 경영학과 이승윤 교수는 "지금의 증정품 열풍은 1+1 제품, 덤 마케팅과는 조금 달리 봐야 한다"고 했다. 종전 덤 마케팅은 금액 혜택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소비자들이 선호했다. 최근에 부는 증정품 열풍은 오히려 '팬덤' 측면에 가깝다.

"사실 전 국민이 스타벅스 증정품 받기에 동참하는 건 아니거든요. 스타벅스 같은 경우 어떤 상품을 내놔도 꾸준하게 팔리는 수량이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팬덤이 공고하기 때문입니다."

특정 회사 로고가 찍힌 사은품을 받으면 대개 '저 로고만 없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달리, 스타벅스 팬들은 오히려 로고가 찍힌 사은품을 통해 '스타벅스의 가치를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유명 기업들이 해마다 연말 '증정품'으로 유명 캐릭터를 섭외(?)하고자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미 해당 캐릭터가 가진 팬덤을 고스란히 제품 판매로 끌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진행된 던킨의 '펭수 리유저블 컵'이 대표적이다. 음료를 주문하면, 펭수를 그린 리유저블 컵(재사용이 가능한 컵)에 음료가 담겨 나온다. 당시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던 시점이었음에도, 판매 첫날 30분 만에 준비한 2만잔이 모두 동났다.

특히 '증정품=저품질'로 통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증정품은 돈을 주고 사도 손색없을 만큼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세계적 노트 브랜드 '몰스킨', 세계 최초 편집숍으로 알려진 '10 코르소 코모' 등과 같이 작업했다.

여기에 '한정판'이란 단어가 더해지면, 마치 마법의 주문과 같아진다. 특정 기간에만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소비자가 압박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증정품이 그렇다. 물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겠다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

스타벅스 증정품의 리셀(resell·재판매) 시세는 평균 7만원. 그중 활용도가 높고 색이 화사한 '서머 레디 백' 핑크 제품은 20~30%가량 웃돈이 붙어 10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리셀 가격이 높다 보니,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는 리셀러가 생겨나고, 제품은 더 희귀해진다.

특히 한국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관심이 많아 유행이 빠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나라에선 남들이 다 갖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남들이 지금 가진 것'을 나도 갖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고 했다.

남성 직장인 김모(38)씨는 지난해 스타벅스 다이어리 3개와 볼펜 1개를 사은품으로 받았다. 약 두 달간 스타벅스 음료를 총 68잔 마신 셈이다. 김씨는 "프리퀀시를 모으려고 방문한 것이 아니라, 원래 스타벅스를 선호한다"며 "디카페인 커피 등 제품군이 다양하고, 콘센트 등이 비치돼 있어 업무 보기 편하다"고 했다. 김씨는 "연말 다이어리 증정 같은 행사는 평소 스타벅스를 많이 방문하는 단골을 알아주는 느낌이라 좋다"고 했다.

직장인 김효정(36)씨도 3년째 연말이면 스타벅스 다이어리 증정 이벤트에 참가한다. 김씨는 "작은 재미이자 나만의 연말 의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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