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청구에 '이재용=삼성' 제왕적 사고 받아쓰는 언론

정철운 기자 2020. 6. 6. 14: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평]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에 "삼성 위기 온다" "검찰이 잘못했다" "이재용이 뭘 그렇게 잘못했나" 이재용 사보 자처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검찰이 지난 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및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 감사법) 위반 혐의다.

몇몇 언론은 또다시 '이재용 구하기'에 나섰다. 크게 △이재용 구속되면 삼성 위기 온다 △검찰이 잘못했다 △이재용이 그렇게 잘못한 거 없다는 식의 프레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2017년 초 경영 승계를 위해 박근혜·최서원(최순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되던 무렵 나왔던 프레임과 판박이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이 높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조작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사기 의혹도 이재용을 위한 의도적 분식회계였다. 사실이라면 자본시장의 질서를 흔드는 중대 범죄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최종 수혜자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행위를 보고 받은 미래전략실 문건을 다수 확보했다. '이재용 부회장님 보고 필'이라고 적힌 문건으로 합병 현안을 보고 받고, 삼성 계열사가 주가 부양 등 시세조종에 나설 때 '주가관리 보고'도 계속 받았던 것이 드러난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앞선 두 차례 검찰 조사에서 '임직원이 알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구속영장청구 소식이 알려지자, 당장 '삼성 위기' 프레임이 등장했다. 연합뉴스는 4일 오후 '삼성, 검찰 역습에 참담…경영 차질 빚나 초비상'이란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연합뉴스는 "이 부회장의 구속이 이뤄질 경우 삼성의 미래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됐다. 앞서 2017년 이재용 부회장이 법정 구속이 결정됐을 때도 글로벌 경영 차질 등 후유증이 상당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이재용 구속 당시에도 2020년 연합뉴스 기사처럼 당장 삼성이 망할 것 같은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한동안 계속 올랐다. 삼성전자는 그해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80억 달러 규모의 하만 인수도 마무리했다. 그해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이 부회장에 대한 유죄 판결이 삼성전자의 신용등급(AA-·안정적)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연이은 검찰 소환 조사 속에서도 미중 무역분쟁 등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현실에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왔다. 지난달 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과거 잘못과 단절하는 '뉴삼성'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이후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논의하는 등 경영 보폭을 넓혀가는 중이었다. 지난달 중순엔 코로나19를 뚫고 중국 시안의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며 이 부회장의 부재가 삼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5일자 이재용 관련 기사모음. 디자인=안혜나 기자.

5일자 보수 종합일간지도 연합뉴스와 유사했다. 중앙일보는 익명의 전경련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 속에서 삼성의 대규모 투자 결정은 이 부회장의 판단 없이 하기 어렵다. 구속을 전제로 수사한다면 부정적 영향이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한국의 기업경영은 총수의 빠른 의사결정, 해외 네트워크가 큰 몫을 하고 있는게 현실"이라며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돼 온 삼성의 리더십 공백은 국가적인 경기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보도는 재벌 총수의 '제왕적 사고'를 그대로 반영한 왜곡 보도로 볼 수 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과거에도 삼성을 비롯한 다른 총수들이 감옥에 다녀왔지만 그룹의 위기가 없었다. 임원과 전문경영인이 있어 경영적 공백은 없다. 이재용이 구속되면 삼성에 위기가 온다는 프레임은 이재용과 삼성을 일체화시킨 제왕적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재용이 감옥에 있을 때도 삼성은 아무 문제 없었다. 심지어 대규모 투자 결정은 옥중에서도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위와 같은 보도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연결해 경제범죄 형량을 깎아주려는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김종보 변호사는 "이재용이 없어서 경영 공백이 생길 회사라면 망하는 게 맞다. 그 정도로 망할 만큼 삼성은 허술한 회사가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없어도 수많은 유능한 직원들이 삼성을 사랑하고 삼성을 지킬 것이다. 절대 안 망한다"고 강조했다.

영장청구 과정에서 검찰이 잘못했다는 프레임도 눈에 띄었다. 검찰보다 삼성이 '더 높은 권력'이라는 걸 확인할 수 대목이다. 앞서 삼성이 지난 2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한 뒤 곧바로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게 문제라는 것인데, 검찰은 지난 1일 영장청구방침을 확정했다는 입장이다. 이번 주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지난주부터 주진우 기자가 본인 유튜브에 주장할 만큼 공개적으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학계·시민단체·법조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와 기소의 정당성을 판단 받는 제도로, 재벌 총수의 소집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일보는 "수사 심의까지 신청한 상황에서 구속영장 청구가 검찰권의 정당한 행사냐는 격앙된 반응도 었다"며 삼성 내부 분위기를 보도했고, 한국경제는 "심의위 탄생 2년 만에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것"이라며 검찰을 비판했다.

하지만 선후 관계를 따져보면 삼성이 구속영장 청구를 예상하고 심의위 소집을 신청했을 수 있다. 이와 관련 한겨레는 "검찰 입장에선 영장청구와 기소 시점을 뒤로 미루기 위한 전략으로 판단해 삼성의 여론전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어 "오는 7월 검찰 인사를 앞둔 상황이라 구속영장 청구와 기소가 지연될 경우 수사 자체가 흔들릴 위험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맥락은 한겨레 정도를 제외하면 쉽게 찾기 어려웠고, 일방적인 검찰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매일경제는 5일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검찰 스스로 도입한 제도를 무시한 채 구속영장을 강행해 검찰이 내부 절차조차 스스로 어긴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는 같은 날 사설에서 "검찰이 스스로 만든 제도를 외면하고 영장청구부터 서두른 것은 수사 성과에 자신이 없어 객관적 판단을 피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이 부회장이 심의위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봉쇄당했다"고 주장하며 이재용을 피해자로 묘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인 모습. ⓒ연합뉴스

심지어 조선일보는 이재용 부회장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 신문은 5일자 사설에서 "경영권을 지켜야 하는 이 부회장은 주식을 팔아서 현금화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익을 봤다 해도 실현 불가능한 문서상의 이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주가조작으로 이익을 봐도 팔 수 없으니 실제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민변 김종보 변호사는 "주식을 보유한 그 자체가 엄청난 이익이다. 처분할 수 없다는 건 조선일보의 희망일 뿐이다. 삼성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 자체야말로, 숫자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의 이익이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삼성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4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 압수수색은 30차례에 가깝고, 삼성 관계자 소환 조사는 수백 차례에 달한다"며 "한 기업과 기업인이 이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사례는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버텨내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표적 수사라는 것. 그러나 수사가 길어진 배경과 관련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쪽에서는 삼성의 각종 증거인멸시도가 신속한 수사를 어렵게 했다는 비판이 있다. 민변 김종보 변호사의 경우 "오히려 이재용 부회장을 봐주기 수사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수사가 오래 걸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재용 옹호' 프레임은 언론의 오래된 습관이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 중이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017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무렵인 그해 1월10일부터 1월17일까지 7일간 12개 중앙일간지의 이재용 부회장 관련 사설 32건 중 24건(75%)이 검찰에 비판적이고 이재용에게 우호적이었다. 그해 2월18일 창사 79년 만의 삼성 총수 구속사태가 벌어지자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이 필요해서 기업들을 부른 것이지 기업들이 청탁을 위해 박 대통령을 만나려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단정하며 이 부회장을 감쌌다. 최대 광고주에 대한 언론의 '과잉 충성'이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