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아닌 비서진에 많은 돈 줬다" 전언..재조사 요구 커질듯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회유·압박 등 무리수를 뒀다는 증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미 제기된 위증 교사 의혹에 더해 별건수사 압박, 증언 회유 등이 있었다는 주장까지 이어지고 있어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여론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인물로 지목된 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한 전 총리 비서진에게 '많은 돈'을 줬다"고 했다는 증언도 이어지면서 두 사람 간의 관계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전 총리가 일관되게 결백 입장을 굽히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이 진행 중인 진상조사 범위를 '증언 조작' 이상으로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아직은 모두 한 씨의 말을 전하는 수준인 데다, 사법부의 판단을 뒤집을만한 뚜렷한 증거도 없어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전면 재조사나 재심을 거론하기는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 검찰 수사 관행 도마에…계속되는 회유·압박 의혹
7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에 문제점을 제기한 한씨의 동료 재소자는 총 4명이다.
법정에서 "한씨가 한 전 총리에게 직접 돈을 줬다고 한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A씨는 당시 검찰이 거짓을 종용했다며 지난달 법무부에 진정을 넣었다.
B씨,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K씨 등 두 명은 검찰의 '별건 수사' 압박을 주장하고 있고 C씨는 검찰이 참고인 조사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자신을 검찰청 건물 뒷문으로 출입시키는 등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한 전 총리 사건 당시 검찰 수사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인복·이상훈·김용덕·박보영·김소영 대법관은 '한씨가 한 전 총리에게 직접 돈을 줬다'고 한 검찰 진술서는 절차를 지키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다며 한 전 총리의 '9억원 수수' 사실을 모두 인정한 다수 의견에 반대했다.
한 씨가 70회 이상 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지만 이 중 60회가 넘는 부분에 대해 어떤 조사를 받고 진술을 했는지 자료가 없어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한만호가 허위나 과장 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일단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자 진술이 번복되지 않도록 부적절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최근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그 많은 과정은 검찰의 기획대로 끌고 가기 위해 말을 맞추는 과정이었다는 의혹이 있다"며 진상 조사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검찰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수감자를 설득하고 가석방 등 혜택을 주는 속칭 '빨대'를 활용한 수사 관행 의혹도 불거졌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검찰에 유리한 증언을 했던 C씨 역시 서울구치소 내에서 이미 유명했던 검찰의 '빨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K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C가 검사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건 구치소 내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며 "교도관들도 C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줬다"고 말했다.
K씨와 B씨는 C씨에게서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증언을 협조할 것을 수차례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검찰의 강압 수사 의혹은 속칭 '빨대'를 통해 유리한 증언을 확보한 검찰이 다른 재소자에게 같은 증언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불거졌을 것으로 재소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절대 회유해서 증언을 시킨 사실이 없다"며 이런 의혹을 조목조목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의혹 중 상당 부분이 중복된 데다 '부적절한 수사'를 의심한 당시 대법원 판결문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어 진상 조사 여론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위증 교사 진정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 배당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 재심과 무관한 사건 전반 진상조사 요구 커질 듯
한씨의 동료를 통해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제3자의 전언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을 무조건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은 한씨 동료 재소자의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번 사건과 무관한 전과 사실까지 내세우며 이들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재소자의 증언이 한 전 총리의 유죄 판결 근거로 인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 결과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핵심 증인인 한씨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당장 판결을 뒤집을만한 뚜렷한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판부의 판단이 한씨의 진술을 제외하면 대부분 접견기록, 회계장부 등 간접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등도 한 전 총리의 유죄 판결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가 일관되게 결백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의혹이 불거진 이상 재심 여부와 무관한 진상조사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 관행을 타깃으로 진행 중인 진상조사 범위를 사건 전반에 걸친 의혹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검찰 개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한 전 총리 사건 이슈까지 의혹을 키우면서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분위기다.
때마침 유예기간을 두고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 효력을 제한하도록 한 조항을 이르면 8월 개정법과 함께 바로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에 있어 검찰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ro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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