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또 배신당할 수 있지만..낭떠러지로 달리는 野 이대론 못봐"

이상훈 입력 2020. 6. 7. 17:36 수정 2020. 6. 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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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셜 리포트 / 김종인은 왜 통합당 비대위 맡았나 ◆

지금 여의도 정가에서 최대 관심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두 명이다. 한 명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다. 유력 대권주자인 그가 과연 당권까지 차지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80)이다.

2012년에 통합당 전전신인 새누리당, 2016년에 민주당 비대위에 뛰어들었던 그가 이제 다시 통합당을 이끌면서 '파괴적 혁신'과 '진취적인 정당'을 외치고 있다. 당연히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왜 통합당 비대위를 맡은 것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지난달 27일 오전 김 위원장을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날 오후에는 국회에서 통합당 전국 조직위원장을 대상으로 비공개 특강을 할 예정이었다. 또 내년 4월 재·보궐선거 때까지 가동되는 통합당 비대위 구성을 마무리 지을 상임전국위원회·전국위원회 회의도 예정돼 있었다. 당시 비대위원장 내정자 신분이었던 그에게 왜 통합당으로 갔는지 물었다.

◆ "당도 탄핵됐는데 인식 못해"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총선 당시부터 이야기했다. 그는 "선거일까지 총괄선대위원장으로 2주 정도 활동했는데, 중간에 그만둘까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황교안 전 대표 발언이었다. 황 전 대표는 당시 '전국 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 주장과 n번방 사건과 관련해 '호기심으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일관된 메시지로도 부족한 판에 엉뚱한 발언으로 선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게 김 위원장 판단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만두지는 않았다.

―왜 생각을 바꾼 건가.

▷(총선 전에) 카페나 병원에 앉아 있으면,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 분들이 있었다. 야당을 살려야 하지 않는가, 책임감을 못 느끼느냐고 하더라. 하루는 길을 가는데 한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다가와 통합당을 그대로 둘 거냐고 말하더라. 그게 기억이 났다.

―책임감을 느꼈다는 건가.

▷나 스스로는 여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여당에 너무 치우쳐 있으니까.

김 위원장이 2016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에서 비대위 대표를 맡았을 때도 '여당에 치우쳐' 있었다. 일본처럼 '보수정당 영속 집권'이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등장한 시절이었다. 김 위원장이 그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민주당에 뛰어들었고 당은 총선에서 제1당이 됐다. 여야 균형을 위해 비대위를 맡았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현재 통합당 상태를 낭떠러지로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에 비유했다. 대통령 탄핵과 함께 당도 탄핵을 당했는데, 지금까지 그걸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 지금은 영남 의원들이 다수인데 위기의식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대선까지 가면 결국에는 떨어져 완전히 끝나버릴 수 있으니 방향을 바꾸고 차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 스스로 '정치가'로 규정

김 위원장은 "앞으로 우리 사회는 3040세대가 주역이다. 이들에게 호소하는 정당이어야 한다"면서 "또 좌냐 우냐, 보수냐 진보냐 같은 과거 생각으론 안 된다"고 말했다. 당 주류를 물갈이한다는 말로 들렸다.

중도를 겨냥한다는 것인지 묻자 "그게 아니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민을 어떻게 편안하게 할지 생각하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당명까지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변화된 것을 보여주려면 이름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 구상은 바로 확인됐다. 9명으로 꾸려진 통합당 비대위에는 30대 비대위원이 3명이나 포함됐다. 또 김 위원장은 당원들을 향해 '보수·우파 타령'을 그만하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두 번의 배신"을 거론했다. 두 번의 비대위 활동이 끝난 뒤 상황을 배신으로 규정한 것이다.

―성과를 낸 뒤 당에서 배신할 수도 있지 않나.

▷아마도 선거 뒤에 (통합당이) 돌변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걸 각오하고 (당 쇄신 작업을) 해보려 한다.

―배신을 각오할 만큼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20대 시절에 할아버지(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께 "왜 정치를 하십니까. 성과도 불분명한 일을 왜 하려고 하시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할아버지는 "숙명이다"고 하셨다. 내가 먼저 뭘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찾아와 도와달라고 한다. 내 나이가 그때 할아버지보다도 많다. 나도 숙명인가 보다 한다.

그는 저서에서 "19대 총선과 대선에서는 정치인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고, 20대 총선에서는 정당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썼다. 그는 "토사구팽이 아니라 토사종(김종인)팽"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정당 비대위를 맡았다. 배신을 각오하고 있다는 예상 밖 설명이 나왔다. 균형자의 삶을 사는 것, 정치 지형의 치우침을 해소하는 것을 그의 숙명으로 봤고, 쇄신이 불발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주변에 본인의 '업(業)'에 관해 관료나 학자가 아닌 '정치가'라고 말하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념을 넘어 정치 균형을 잡는 역할을 스스로의 일로 규정한 셈이다.

배신의 위험을 안고 통합당에서 무엇을 할지에 관해 김 위원장은 구체적인 설명 대신 "당 안에서 반발이 거셀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발 역시 각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대위 첫 회의가 있었던 지난 1일 "통합당이 진취적인 정당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지난 총선 당시 공천관리위원이었던 한 인사는 "지역구 의원 84명 중 초선이 절반 가까이 되고 몇몇 개혁적인 의원이 주목받고 있기는 하다"면서 "그러나 재선 이상에서는 여전히 과거 생각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내년 재·보선 뒤에 비대위가 종료되고 김 위원장이 떠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당 내부 반발을 넘어설 '수단'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위기의식이다. 정치권에는 유력 대선주자가 뒷받침하지 않는 비대위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잘못 분석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유력 대선주자가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면서 "패배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있으면 사람들이 숨도 죽이고 달라진다. 통합당은 2년 뒤 대선에서 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 패배 위기감이 센 채찍 될 것

또 다른 수단은 '명분 있는 침묵'이다. 2012년 총선 뒤 새누리당에 경제민주화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에게 의원총회에서 경제민주화를 재의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뤄졌다. 김 위원장은 제주도 여행을 가버렸고 전화 연락도 받지 않았다. 무언의 경고였다. 당시 의총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박 후보에게 약속을 받아내고 당 분위기를 다잡는 계기가 됐다. 이번 비대위 구성 과정도 그랬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를 맡는 조건으로 전당대회가 열리는 8월까지 4개월이 아닌 내년 4월 재·보선까지 활동 기간을 요구했는데 이는 당헌·당규 개정 사안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말 통합당 상임전국위가 불발되면서 개정이 무산됐다. 이에 김 위원장은 침묵에 들어갔다. 그사이 새로 출범한 원내대표 지도부가 설득과 의견 수렴에 나섰다. 결국 무산 한 달 만에 요구대로 1년6개월짜리 비대위가 출범했다.

한편 김 위원장에 대해 견제하는 목소리가 통합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 7일 3선인 장제원 통합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 비대위원장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칠 것이 아니라, 대선후보군들이 함께 뛸 운동장과 마이크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시합에 뛸 선수들을 돋보이게 하는 비대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앞서 전날에도 "제가 본 김 비대위원장의 일주일은 화려한 잔치에 먹을 것 없었고 지지층에는 상처를, 상대 진영에는 먹잇감을 준 일주일이었다"고 비판하며 "독점하고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마이크를 나눠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유승민·원희룡 손 들었지만…金 "대권주자 지금 안보여"
당 일각 "경선룰 국민경선으로…젊은 경제전문가에게 길 열어야"

미래통합당이 위기라고 말할 때 근거 중 하나는 유력 대선주자의 부재다. 대선 잠룡으로 꼽히는 인물은 많지만 지지율 모두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30%를 웃도는 유력 주자를 보유한 더불어민주당과는 확연히 다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통합당은 체질적으로 '대통령 당'이다. 대통령이 소속돼 있거나, 강력한 대통령 후보가 있을 땐 잘 굴러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기에 처한다"면서 "그런데 이제는 없다. 그래서 위기이고 혼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권주자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통합당 안에 대권주자가 보이나.

▷지금으로서는 없다. 안 보인다.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가 이미 출마 의사를 밝혔는데.

▷몇 사람이 손을 들고 있지만 안 보인다. 대권주자가 없으니 당이 위기인 거다.

-출마 의사를 밝힌 정치인 중엔 홍준표 전 대표도 있다.

▷거긴 통합당에 속해 있지도 않은데.

김 위원장은 이제는 40대 경제전문가가 통합당의 대권주자로 나서야 한다고 기회 때마다 강조했다. 지금은 40대인 1970년대 초반 출생이 2년 뒤면 50대 초반 나이가 되고 이 정도 나이의 지도자를 원하는 게 국민의 생각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다만 김 위원장은 "사람이 없다면 1960년대 후반 출생까지 확장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내가 40대라고 하니까 너무 경직되게 해석들을 한다"고 말했다.

지금 당내에서 보이지 않는 대권주자가 앞으로는 나타날 수 있을까. '경제'가 계기가 될 거란 설명을 내놨다. 문재인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잘될 만한 게 없고 특히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거라고 봤다.

김 위원장은 "다음 대선까지 경제가 큰 이슈가 되고 경제전문가인 지도자를 국민이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를 이해하고 경제난을 해결할 젊은 지도자가 그가 찾는 대권주자다.

그러나 새로운 인물이 대선후보가 되기에는 현실적인 난관이 있다. 바로 통합당의 대선 경선룰이다. 대의원·당원인 선거인단 투표가 50%, 여론조사가 50% 반영돼 대선후보가 결정된다. 또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가 한 번에 발표된다.

과거 통합당 쇄신 작업에 참여했던 한 중진(지난 총선에서 낙선)은 "100% 여론으로 뽑는 국민 경선(오픈프라이머리)으로 하거나 최소한 여론 반영 비율을 지금보다 높여야 새로운 인물이 들어올 수 있다"면서 "지금 룰대로라면 결국 당원을 장악한 기존 인물이 뽑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선 경선 결과를 지역별로 따로따로 공개하면 마치 토너먼트 형태가 돼 주목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신화'를 만들었던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 참여·지역별 순회경선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총선 공관위원이었던 한 전직 의원은 "단순히 여론조사 비율을 늘려봐야 일반 국민의 참여가 저조하면 결국 당내 다수인 영남권 당원 뜻대로 후보가 뽑힐 것"이라면서 "그래선 대선 승리가 또다시 요원해진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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