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어지는 북한의 입, 대답없는 한·미 흔들기 [뉴스분석]

이주영 기자 2020. 6. 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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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강경 발언 왜?

[경향신문]

북한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고리로 남북관계 단절까지 언급하는 등 연일 강경한 톤의 입장문을 쏟아내고 있다. “남측이 몹시 피로해할 일판을 준비 중” “갈 데까지 가보자”며 무력시위를 시사하는 등 압박 수위도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 누적된 실망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북한은 특히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최대 성과로 자부하는 남북군사합의와 남북연락사무소의 파기 또는 폐쇄를 강력 시사하고 있다. 2018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 화해 분위기가 2년 반 만에 최대 위기에 놓였다.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비난 담화가 나온 지 하루 만인 지난 5일 밤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 대변인 명의 담화를 낸 것은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대한 일각의 긍정적 해석과 통일부가 내놓은 대책을 반박하고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접경지역 주민 안전을 위해 이미 대북전단 금지 제도화를 검토하고 있었다는 통일부 입장과 김 제1부부장의 담화가 대화 재개 신호라는 해석에 대해 통전부 대변인은 “허튼 나발을 불어대기 전에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제1부부장이 경고한 담화라는 것을 심중히 새기고 내용의 자자구구를 뜯어보고 나서 입방아를 찧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하노이 이후 돌파구 마련 못하자
남측에 불만…“갈 데까지 가보자”
강경 노선 전환 위한 명분 쌓기도
전문가 “미국 대선판 겨냥” 분석

이는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남측이 대북 제재 준수를 강조하는 미국 입장에 눌려 별다른 상황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데 대한 북한의 불만이 누적돼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쁘다”며 금강산의 남측 시설을 모두 철거하라고 지시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판문점선언 등 남북 간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 책임이 남측에 있다는 인식이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7일 문 대통령의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의 선순환’ 기조를 지목하며 “성격과 내용에 있어 판판 다른 북남관계와 조미(북·미)관계를 억지로 연결시켜놓고 ‘선순환관계’ 타령을 하는 그 자체가 무능의 극치”라며 “달나라에서나 통할 ‘달나라타령’”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이 남북관계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연락기능을 중단시켰던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김 제1부부장이 예고한 대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8년 판문점 합의로 문을 연 개성 연락사무소는 남북 인원이 한 건물에 상주하며 상시 연락채널을 구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코로나19 사태로 올 1월부터 운영이 잠정 중단돼 현재는 서울~평양 간 전화선과 팩스선이 소통을 대체하고 있다. 통전부 대변인은 “북남공동연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폐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이어 통전부 대변인 담화 역시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게재하고, 이에 대한 각계의 반응까지 연일 지면에 싣고 있다. 이례적으로 ‘탈북민’이란 단어를 쓰며 이들을 규탄하는 시위와 논평 등 내부 분위기도 전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7일 논평을 통해 “제1부부장 담화와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는 분노에 치를 떠는 우리 인민과 군대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라며 “남조선 당국은 저들이 어떤 파국적인 일을 저질러놓았는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남 강경 기조를 북한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제재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김 위원장이 추진해온 관광산업 등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그 책임을 외부에 돌려 체제 결속을 도모하고, 군사합의 파기 등 추후 강경 노선으로 갈 수 있는 명분을 쌓으려는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의 대남 강경 메시지가 궁극적으로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김 위원장이 친분 유지에 공을 들여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와 인종차별 항의 시위로 정치적 궁지에 몰린 가운데 미국 대선판을 흔들어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논의했던 북한이 남북 간 군사합의를 파기한 뒤 무력시위 수위를 높여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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