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불안한 '슈퍼 여당' 독주..민주주의 어디로

2020. 6. 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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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6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됐다.

21대 국회의 가장 큰 특징은 두말할 나위 없이 슈퍼 여당의 존재다. 슈퍼 여당의 막강함은 다음을 보면 금방 체감할 수 있다.

“현재 여야 의석은 단순 과반이 아니라 절대 과반이다. 국회를 책임지고 운영하라는 국민의 뜻이다.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갖고 야당과 협상할 일이 아니다. 절대 과반 정당인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全席)을 갖고 책임 있게 운영하는 것이 민주 원리에 맞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말하는 ‘민주 원리’란 무엇일까.

이번 총선 모든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얻은 득표율은 전체 유권자 대비 32.6%였다. 미래통합당 득표 비율은 전체 유권자 대비 27.57%다. 이 득표율은 66.2%라는 투표율 내에서 각 정당이 획득한 득표수의 비율이 아니다. 전체 유권자 대비기 때문에 양당 간 득표 격차는 약 6% 정도다. 표로 환산하면 약 260만표 정도 차이다. 이 차이가 163석 대 84석으로 구현됐다.

이렇듯 ‘과대 대표’된 의석을 토대로 ‘민주 원리’를 주장하면 곤란하다. 지역구에서 통합당 후보를 찍은 1185만명 정도 유권자는 ‘민주 원리’라는 이름으로 무시당해도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f

물론 민주당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21대 국회는 잘못된 관행으로 얼룩진,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는 20대 국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언급을 보면, ‘잘못된 관행의 개선’에 오히려 초점이 맞춰져 있다. 17대 이후부터 줄곧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왔던 ‘잘못된 관행’을 바꾸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정리해서 보면, 상임위원장 전부를 가져가겠다는 것은, 원 구성 협상에 앞서 상대방 기를 꺾으려는 ‘수사적 표현’이다. 결국 법사위원장은 반드시 차지하겠다는 의지의 간접적 표현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의석의 과반 이상을 획득했으니 상임위원장을 전부 차지하겠다고 나온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153석을, 통합민주당(민주당 전신)은 81석을 획득했다. 당시 주호영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협상 필요 없이 과반 의석 당이 전(全) 상임위원장을 다 맡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총선 다음 해인 2009년 한나라당은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 발의를 시도하기도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이런 주장을 하면서 드는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은 1석이라도 많은 정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한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다. 미국은 그렇게 해도 별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정당구조가 우리와 상이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당구조는 이른바 원내 정당이다. 원내 정당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의원 개개인의 독립성이다. 의원이 자신의 생각대로 투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공화당 의원이 민주당 주장에 찬성하는 투표도 할 수 있다. 이런 체제 아래서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특정 정당이 독식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르다. 요사이 주목받는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 사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금태섭 전 의원은 공수처법 표결 과정에서 기권했다. 이뿐 아니라 조국 사태 당시에도 ‘일반적인’ 민주당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 결과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가장 낮은 수준인 ‘경고’를 받았지만, 어쨌든 당론과 다른 투표를 했다고 징계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슈퍼 여당의 현실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 위상보다 당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국회에서 여당이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하면, 거대 여당이 원하는 것은 모두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때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국정에서 완전히 소외될 터다. 이런 정치적 ‘소외’는 정치·사회적 양극화로 연결되고 결국 심한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한다. 이런 이유에서 특정 정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것은 한국 정치 발전에 긍정적이지 못하다. 또한 상임위원장 독식 시도를 상대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건강하지 않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나라 국회에서 ‘관례’ 혹은 ‘관습’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존중되는가다. 관례나 관습을 존중하지 않는 국회의 품격은 더욱 떨어지게 마련이다. 관례나 관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외국 의회 권위와 품격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법사위원장이 야당 몫이라는 것은, 야당이 견제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관습 혹은 관례다. 국회법에 적혀 있지 않다고 마음대로 관례를 깨뜨리면,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와중에 거대 여당인 민주당과 정의당 그리고 범여권인 열린민주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소집할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열린민주당이 지난 6월 2일 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통합당을 사실상 배제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힐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민주주의 원칙과 가치에 대한 부분이다. 법적으로 따지면, 지금 이른바 범여권이 단독으로 국회를 소집하는 것에 문제는 없다. 정해진 날짜에 국회를 열자는 것이라 오히려 법을 지키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민주적 원칙과 가치에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주의를 수(數)의 정치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나 민주적 가치의 표현은 아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가치 혹은 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민주주의 가치와 원칙은 소수 의견을 다수라는 이름 아래 묵살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선거법 개정도 이론적으로는 소수 의견을 제도에 반영하자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다. 현실에서 이런 명분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어쨌든 당시 민주당 주장은 그랬다.

그런데 지금 이들 행위를 보면 그런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것 같다.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고, 수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거대 여당이 21대 국회를 운영하면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와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다수결 이름 아래 여당이 추진하는 모든 것이 이뤄질 수도 있다. 소수 야당이 취할 수 있는 길은 극한투쟁밖에 없다. 지금처럼 거대 여당이 숫자로 밀어붙이면, 소수 제1야당은 정치력을 발휘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소수당이 기댈 곳이라고는 여론 지지밖에 없다. 슈퍼 여당이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근간인 민주적 가치와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슈퍼 여당이 아닌, 소수 야당을 동등한 파트너로 생각하는 그런 슈퍼 여당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2호 (2020.06.10~06.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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