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빠듯했지만 애정과 자부심..손영미 소장의 11년 전 논문 눈길

박윤경 2020. 6. 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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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평화의 우리집'의 손영미 소장이 세상을 등지면서, 그가 10여년 전 일본군 '위안부' 운동 실무자로서 고민을 담아 발표한 논문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04년부터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운영해온 그는 논문에서 "불안정한 저임금 구조, 만성적인 적자" 속 쉼터를 지켜야 하는 실무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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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 실무자로서
만성적자 시달렸던 고민 등 담겨
이용수 할머니 "여기가 내 집.."
길원옥 할머니 "천국인 것 같아"
쉼터생활 드러낸 인터뷰 내용도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앞에서 손영미 소장의 부고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6일 ‘평화의 우리집’의 손영미 소장이 세상을 등지면서, 그가 10여년 전 일본군 ‘위안부’ 운동 실무자로서 고민을 담아 발표한 논문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04년부터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운영해온 그는 논문에서 “불안정한 저임금 구조, 만성적인 적자” 속 쉼터를 지켜야 하는 실무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8일 손씨가 제1저자로 <한국민족문화>에 발표한 논문 ‘쉼터 생활을 중심으로 본 일본군 위안부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2009)를 보면, 그는 “쉼터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여생을 보내기 위한 마지막 삶의 터전”이고 “피해자들에게는 민간의 지원 단체 이상의 의미”라고 짚었다. 손씨는 2008년 경기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생애사 연구법에 의한 일본군 위안부의 삶 이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는 등 위안부 피해자의 삶에 대한 기록에 전념하는 한편, 길원옥·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4명의 할머니를 가족처럼 돌보며 헌신적으로 일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양징자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 전국행동’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애도를 표하며 “김복동 할머니는 생전에 ‘손 소장은 우리들을 돌보려고 하늘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논문을 보면 손씨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나 시민 기부금이 적던 시기 열악한 환경에서 쉼터를 운영해온 것으로 보인다. 논문에서 공개한 2008년 1~11월 쉼터 회계 내역을 보면, 후원금 등 총수입은 1705만8580원인 데 견줘 인건비, 도시가스비 등 총지출은 2237만2860원으로 530만원가량의 적자가 발생했다. 그는 “불안정한 저임금 구조 속에 쉼터의 실질적인 운영자인 실장에게 안정적인 서비스의 지속을 바라는 것은 거의 희생에 가까운 일”이라고 적었다. 실제로 손씨는 2004년 당시 정대협이 쉼터를 전담할 활동가를 모집할 때 80만원의 월급만 받고 일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페이스북에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손 소장이) 사표를 세번이나 냈지만 14년을 함께해왔다”고 돌이켰다.

이 논문에는 손씨가 2008년 5~9월 이용수 할머니를 심층 인터뷰한 내용도 함께 담겼다. 인터뷰에서 이 할머니는 “난 죽어도 선상님(손영미 소장)이 있는 여기서 죽을 거야. 다른 데는 절대 안 가. 여기가 내 집인데, 아파도 병원 안 가고 여기 있을 거야”라며 쉼터 생활에 애정을 나타냈다. 이 할머니는 또 “처머이(처음)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나올 때는 죽고 싶기도 하고 누구 바라보지도 못하고 이랬는데 그것도 면역이 생기요(생겨요). 많은 사람이 들어주니까 이 사람들한테 내가 있다는 걸 알려야 된다”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사명감도 드러냈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손씨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가슴 아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할머니의 측근은 “여러 면을 고려할 때 할머니께서 조문은 가지 않기로 하셨다”고 말했다.

이제 쉼터에 홀로 남은 길원옥 할머니에게도 손씨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손씨는 경기도 파주에 자신의 집이 있지만 16년 동안 쉼터에서 함께 살다시피 하며 할머니들의 수발을 들었다. 앞서 7일 부음을 듣고 쉼터를 찾은 길 할머니의 가족도 손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다. 논문에서 길 할머니는 “쉼터 오기 전엔 목구넝(목구멍) 하나 생각하고 그냥 일에만 열심히 해서 힘들었는데 쉼터에 오니까 밥 걱정이 있나, 옷 걱정이 있나, 아프니(아프면) 병원에 데려다주고. 뭐 하나도 걱정할 게 없다”며 “쉼터에 오니까 이게 천국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박윤경 강재구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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