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김여정 '투트랙' 행보..엄중 국면에 김정은 '내치'만 언급

김정근 기자 2020. 6. 8. 16: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남 및 외교는 김여정이 '직접 관장'하는 듯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8일 밝혔다. 왼쪽 아래 사진에서 회의에 참석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김정근 기자 = 북한이 연일 대남 비난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각기 내치와 외치를 나누어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이 8일 제기된다. 이른바 두 백두혈통이 '투트랙'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인 7일에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회의에 대남 사업을 맡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참석했음에도 김 위원장은 대남 관련 사안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생·인사 등의 내정 문제만을 다뤘다. 대남 적대 국면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당의 주요 회의에 대남 관련 사안 논의가 빠진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 자리에서 대남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 사업과 관련한 실질적인 모든 결정 권한을 쥐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은 최근 김 제1부부장을 '대남 사업 총괄'이라고 공식화한 바 있다.

북한은 지난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를 중심으로 대남 비난 선전을 이어오고 있다. 북한의 통일선전부 역시 지난 5일 그의 지시에 따라 개성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폐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인 국정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당 정치국 회의에서 대남 관련 사안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은 동생의 역할에 더욱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주요 간부들 앞에서 대남 관련 언급을 피한 것은 역설적으로 '대남 사업과 관련해서는 김 제1부부장의 의중을 살펴야 한다'라는 인식을 간부들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지난달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순천린(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일 1면에 보도했다. 사진상 김 위원장의 좌측에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모습도 보인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이를 통해 '내치'는 김 위원장이, '외치'는 김 제1부부장이 맡는 '투 트랙' 행보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면 돌파전' 완수를 위해 내정에 집중하고 김 제1부부장은 대남·외교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역할이 구분되는 것이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3월 대미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럴 경우 북한 입장에서는 나름의 톤 조절이 가능해진다. 만일 김 위원장이 직접 대남 메시지를 내놓을 경우 그것을 뒤집기란 쉽지 않다. 반면 김여정 제1부부장이 실무적인 부분을 처리하고 추후 김 위원장이 중요한 사안을 결정한다면 상황은 유연해진다.

또 일종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충분히 단독으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대북 전단(삐라)'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대북 전단에 대한 '보복'의 첫 조치 역시 남북연락사무소의 '철폐'인데 연락사무소는 정치적 결정만 있어도 언제든지 운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성이 있는 조치라고도 볼 수 있다.

만일 한미합동군사훈련이나 연습처럼 우리 정부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문제 삼았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혹은 김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언급한 개성공업지구의 '철거'나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 차후 재개 혹은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한 조치가 먼저 이루어졌다면 북한의 대응 강도는 다르게 해석됐을 것이다.

김 제1부부장이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문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그가 단순히 김 위원장의 대변인격으로 '말을 전달하는' 수준이 아닌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선에서 대남 사업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북한은 일련의 대남 사업을 장악력이 약화된 통일선전부 대신 '백두혈통'인 김여정 제1부부장을 정면에 내세워 무게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 이는 오히려 대남 사업이 여전히 북한에서 중요한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북한은 김 제1부부장의 담화 이후 연일 각지의 대규모 군중 집회를 조명하며 이번 사안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한창 정면 돌파전 사업에 집중하고 있던 와중에도 주민들을 대거 동원해 대남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처럼 김 제1부부장의 메시지가 남북관계에 큰 타격을 준다고도 볼 수 있지만, 거꾸로 보면 의사결정이 빠른 만큼 상황 전환도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북한이 추가적인 조치로 상황을 악화시킬 경우 상황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날 첫 조치로 공언했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철폐' 수순을 밟듯 정례 업무 개시 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향후 북한의 조치의 강도에 따라 남북관계 전망도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carrot@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