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문재인표 화해 상징물 폐기..구석에 몰린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

윤성민 2020. 6. 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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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해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 채널을 완전히 차단·폐기한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2018년 4월 20일 청와대에 설치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을 이용해 당시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실장(가운데)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앞) 등 관계자가 북한 국무위 담당자와 시험통화 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 채널을 차단하고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북한의 조처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묻는 말에 “정부 입장을 오전에 통일부가 밝힌 바 있다. 통일부 발표 내용을 참고해주시기 바란다”고만 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남북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이므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냈다. 지난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대남 비방 이후 청와대가 내놓은 반응은 “대북 삐라(전단)는 참으로 백해무익한 행동”(청와대 핵심 관계자)이 전부다.

청와대가 대북 메시지 관리에 극도로 신중한 까닭에 대해 "남북 대화의 끈이 아예 끊어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호열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취임 4년 차를 맞아 대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는 상황인데, 북한이 대화 채널을 닫으니 청와대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이번에 폐기를 선언한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변화한 남북 관계를 상징하는 성과물로 꼽혀왔다. 남북은 2018년 4월 20일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를 연결하는 남북 정상 간 ‘핫 라인’을 설치하고 시험통화를 마쳤는데, 그로부터 딱 일주일 뒤 4·27 판문점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정상 간 핫 라인이 남북 대화의 첫 단추였다.

북한이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 채널을 완전히 폐기한다고 밝힌 9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있는 개성공단 일대가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 대화 채널이 닫히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 동력도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남북 철도 연결,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개별관광, 이산가족 상봉, 실향민의 고향 방문, 유해 공동 발굴을 나열하며 “이런 기존의 제안들은 모두 유효하다”고 말했지만, 북한은 이런 제안에 대해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있다.

이때만 해도 대화 채널이 열려 있는 상태로, 낙관적 기대도 있었다. 문 대통령도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남북 협력을 위한 남북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의) 메시지는 아직 전혀 없는 상태”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만에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는 메시지를 내면서 사태가 더 나빠진 셈이다.

특히, 북한은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비판은 삼갔었지만 이런 기류도 바뀌고 있다. 그간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대남 비방을 할 때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아직까진 남북 정상 간 신뢰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해왔다.

지난해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북한의 대남 비방은 문 대통령을 향하기 시작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7일 문 대통령을 “남조선 집권자”로 칭하면서 “‘선순환 관계’ 타령을 하는 그 자체가 무지와 무능의 극치”라며 “달나라에서나 통할 ‘달나라 타령’”이라고 썼다.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북미 관계가 함께 좋아지고, 북미 관계가 좋아지면 남북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선순환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2018년 6월)는 등 대북 문제에서 ‘선순환 관계’를 자주 언급했다.

이는 역으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통 큰 선물’을 주지 않는 한 관계 개선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유호열 교수는 “남한 정부가 약속했던 남북 협력 사업이 전혀 진전되지 않다 보니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대화 채널을 닫은 것”이라며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데, 앞으로 남북 협력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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