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은 운동권 물주"..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

한영익 입력 2020. 6. 10. 05:00 수정 2020. 7. 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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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비·홍보비·장학금 등 명목
진보진영 단체끼리 자금 품앗이
민언련, 월 수천만원 지급처 안적어
"관행이라지만 회계 검증 불가능"
현 정부서 늘어난 국가보조금
진보 진영 유입된 뒤 돌고 돌아
진중권 "운동권블록 생존력 비결"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정의연·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후신) 논란으로 진보 진영 내부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의연은 내부 소식지 디자인을 윤미향(전 정의연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남편 회사(수원시민신문)에 발주했고, 정의연이 관련된 ‘김복동 장학금’의 상당액은 진보계열 시민단체 활동가 자녀가 받게끔 했다. 재벌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처럼 "시민단체가 아니라 일감연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미향 의원이 대표로 있는 비영리단체인 ‘김복동의 희망’은 이미 관련 논란에 휩싸였다. 김복동의 희망이 국세청에 신고한 ‘2019년 기부금지출 명세서(국내사업)’를 보면 1억3204만원의 총 지출 가운데 상당액이 진보계열 단체나 인사들에게 지급됐다. 1억원의 장학금은 대부분 정의연 이사와 진보 시민단체 활동가 자녀들에게 지급됐고,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해 1월 별세한 뒤엔 아예 ‘국내 시민ㆍ사회단체 활동가의 대학생 자녀’로 한정한 장학금을 추가로 만들었다. “김 할머니가 평소에도 쌍용차 노동자들, 사드 반대 시민 등 사회구조적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관심이 많아 그 뜻을 받든 것”이라는 게 정의연 해명이다. 나머지 사업비도 한국여성단체연합 연대사업(200만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홍보사업(500만원) 등으로 쓰였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서 “정의연이 NL 운동권의 물주 역할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운동 조직들이 이룬 경제블록, 이것이 그들의 집요한 생존력의 비결일지 모른다”며 “적어도 활동가들이 생계 때문에 운동을 떠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시민단체 실상은

진보시민단체 기부금, 진보진영으로 재유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다른 시민단체 역시 국세청 공시를 보면 진영 내 자본 재유입의 흔적이 나타났다. ‘전태일재단’이 국세청에 신고한 ‘2019년 기부금지출 명세서’를 보면 ‘대표 지급처’ 상당수가 같은 진영 내 단체나 업체였다. 지난해 7월에는 노동자 지원 명목으로 이주노동희망센터(외 40건) 등에 4124만월, 11월에는 전태일 추도식을 위해 부산 지하철노조(외 43건) 등에 4085만원을 지급한 거로 돼 있다. 6월 50주기 사업을 위해서는 명필름(외 39건) 등에 9047만원을 줬다고 신고했다. 4월 어울림한마당 사업 역시 지역 비영리민간단체(NGO)가 운영하는 도시락업체(외 45건) 등에 3319만원을 지출했다. 해당 도시락업체는 4ㆍ15 총선 직전 ‘세월호참사 6주기, 기억ㆍ책임ㆍ약속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경기도 거리 곳곳에 걸고 인증샷을 SNS에 올렸다.

우회적 형태도 있었다.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는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에 2차례 비용을 지출했다. 6월에는 ‘일상의실천 외 96건 9047만원’, 12월에는 ‘일상의실천 외 102건 1억5100만원’을 지급한 거로 돼 있다. 해당 스튜디오는 지난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세월호 참사 관련 작품을 전시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시위용품 전문 판매 업체 '연대와전진'을 대표지급처로 기재했다. '연대와전진'은 금속노조 조끼, 민중가요 음반, 장기투쟁용 얼굴 가리게, 깃발, 깃대 등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으로 2007년 문을 열었다. 당시 진보 언론에서 “수익금 전액을 장기투쟁사업장 노조 조합원들의 생계비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라며 ‘장기투쟁 생계지원단’으로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업체 홈페이지에는 민주노총·전농·전태일재단·이주노동희망센터 등의 배너광고가 걸려있다.


지급처도 불투명

시민단체 '우리겨레하나되기'가 국세청에 신고한 2019년 기부금 지출 명세서. 지급처 기재가 되지 않았다. [사진 국세청]

더 근본적인 문제는 회계자료 부실이다. 앞서 언급된 김복동의 희망, 전태일재단, 여성민우회 등은 월별로 대표지급처 한 곳만 적시했을 뿐, 나머지 수십건은 대표지급처와 합쳐 총액만 적었다. 상세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경율 회계사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제대로 된 검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회계가 부실하기 때문에 시민단체가 지금 비판받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엉터리 회계를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건 그야말로 웃기는 얘기다. 적어도 100만원 이상 지급한 내역은 개별적으로 지급처를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국세청 공시에는 대표지급처를 아예 한 곳도 적지 않은 곳도 많았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는 지난해 국세청에 매달 8000만원~1억4700만원가량의 기부금을 지출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지급처는 한 곳도 적지 않고, 지급목적도 ‘대북지원 및 운영’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썼다. 1월 지급내역을 보면 ‘대북지원 및 운영 1건 9433만원’이라고 신고한 식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역시 월 수천만원의 기부금을 지출했다고 쓰면서 지급처 상호는 한 건도 기재하지 않았다. 김복동의 희망에서 연대사업 명목으로 200만원 받은 것으로 돼 있는 한국여성단체연합도 마찬가지였다. 1월 지출 내역을 보면 ‘목적사업비 외 22건 4182만원’으로만 기재했다.


행안부 "국가정책 상승 사업 우선 지원"
문재인 정부 들어 시민단체 출신 인사의 제도권 편입과 함께 국가보조금도 증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곳이 정의연이다. 정의연은 2016년 1600만원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이후 1억5000만원(2017년)→4억3000만원(2018년)→7억4708만원(2019년)으로 증가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2020년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설명회'에서 지원사업 수혜 단체를 선정할 때 “국가정책에 대해 보완ㆍ상승 효과를 가지는 사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관련 예산은 행안부에서 공고한 것만 72억원(225개 사업)으로 사업당 평균 3200만원가량이다. 이와 관련 보수 성향 단체인 ‘블루유니온’은 2014년부터 매년 3000만원 이상 국고 보조를 받았지만 2018년 공모에서 탈락했다. 반면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이끄는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는 ‘민주시민교육’ 등 사업에 지난해(3900만원)와 올해(3400만원) 모두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20대 국회에서 통합당 행안위 간사를 지낸 이채익 의원은 “정권 교체 이후 보조금 지급 시민단체가 진보 성향으로 절반 이상 교체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알려왔습니다
본지는 지난 6월 10일자에 『“정의연은 운동권 물주”…재벌 뺨치는 그들만의 일감 몰아주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의기억연대는 “여러 업체로부터 견적을 받아 적법하게 신문 디자인 업체를 선정했고, 김복동 장학금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지정된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한영익·박해리·김기정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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