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살벌한 아파트'에 뭔 일이..'주민 분리' 검토

허남설 기자 2020. 6. 10. 0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차인대표 자격 놓고 2년 갈등..고소·고발 60여건 '악순환'
서울시·SH '이례적 분리' 시도..당사자 동의 받기 쉽잖을 듯

[경향신문]

치킨 게임 지난 3월 서울 중구 신당동 약수하이츠아파트 임대단지에 임차인대표 측이 무더기로 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주민 제공

서울 중구 신당동 약수하이츠아파트 단지에는 684가구가 사는 임대 아파트 세 동이 있다. 8일 찾은 이 단지 놀이터 한구석엔 얼마 전까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가구와 가재도구들이 비닐에 덮인 채 잔뜩 쌓여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주민 간 소송에서 진 ㄱ씨(77) 집에서 나온 물건들이다. 얼마 전까지는 ‘손해배상청구 물품’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고 했다.

올해 초엔 단지 안에 붉고 노란 현수막 10여개가 내걸렸다. ‘임차인 대표회의 및 추진위원회 주민대표 일동’ 명의의 이 현수막에는 일부 주민들을 ‘항거일당’이라고 부르며 ‘강제이주’와 ‘징벌적 손해배상’을 경고했다. “항거일당은 싸그리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패가망신시키겠다” “한 건당 500만원씩 추가 배상 청구” “우리가 내쫓아주겠다” “5명은 반드시 강제이주시킨다” “3월 안에 이주 신청하라” 등 거친 말들이 난무했다. 대체 이 단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박기재 서울시의원과 서울시, 중구청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단지에선 2018년부터 주민 갈등이 불거져 돌파구가 좀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한쪽은 임차인대표회의 선거가 불공정했고 이들이 주민 공유공간을 무단 점유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다른 쪽은 허위로 비방한다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는 형국이다. 처음엔 현수막을 내걸고 아파트 입구에서 집회를 하는 정도였지만 나중엔 주민끼리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경찰이 출동한 적도 여러번이다.

‘주민 상벌위원회’가 생겨 몇몇 주민을 경로당 같은 공유시설에서 ‘퇴출’할 정도로 공동체는 거의 붕괴 상태에 가깝다. 주민들은 여전히 서로 “데모(시위) 주동자” “아파트 독재”라고 비난한다. 한 관계자는 “구청 직원, 시·구의원 등이 중재를 해보려고 자리도 여러번 마련했지만 모이면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졌다”고 전했다.

문제는 주민들이 각종 민원과 송사를 주고받는 ‘악순환’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한쪽이 서울시나 중구,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민원을 제기하면 다른 쪽은 무더기 고소·고발로 대응한다. 소송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경향신문이 이날 파악한 소송 건수만 해도 ㄱ씨를 비롯한 주민 3~4명을 대상으로 60여건에 이른다. 대부분 현 임차인대표 ㄴ씨 측이 폭행, 명예훼손, 모욕, 업무방해, 무고 등 혐의로 제기한 것들이다. 실제 수백만원대 벌금형을 선고받는 사례도 나오면서 갈등을 풀기가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ㄴ씨는 통화에서 “허위 민원을 자꾸 제기하기 때문에 소송 이외엔 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관계기관들은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임차인대표회의 구성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선거도 다시 하게 하고 SH공사와 함께 감사도 진행했다”며 “중재가 가능한 선을 넘어섰다. (소송 등은) 개인 간의 문제라서 더 이상 관여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시와 SH공사는 ‘주민 분리’ 대책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가구를 아예 근처 다른 아파트로 옮겨 대립하는 주민들을 떼어놓자는 것이다. 이웃 갈등을 이유로 이주대책을 강구하는 건 이례적이다.

다만 서울시 관계자는 “당사자 동의를 받아야 이주할 수 있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